Q. 신부님, 시댁 식구들이 용서가 안 돼요. 지난 추석 때는 참는다고 참았지만 결국 남편한테 다 쏟아내고 말았네요. 벌써 결혼한 지 30여 년이 되었지만 갈수록 화가 나고 서운한 마음만 생깁니다. 우리 식구들한테 못했던 시댁 식구들이 잘 되지 못하면 ‘꼴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도 내가 신자인데 참아야지.’ 싶으면서도 또 그렇게 삭히고 삭히는 제 자신이 바보 같기도 합니다. 정말 아무리 객관적으로,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안 됩니다. 남편은 워낙 착한 사람이라 늘 당하기만 합니다. 특히 시댁 형님들을 보면 ‘어떻게 사람들이 저렇게 이기적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항상 부모님께 조금이라도 더 잘 하려는 남편은 분하지도 않나 봅니다. 시어른들은 우리 부부가 해드리는 것은 다 받으시면서 정작 자녀들에게 무언가 주실 때면 우리 부부는 뒷전입니다. 일은 늘 우리 부부가 다하는데 사랑은 다른 형제들이 받습니다. 부모님의 등골을 쏙쏙 빼먹고 있는데 그래도 시어른들은 맏이라고, 딸이라고 그렇게 남편만 빼놓고 잘 해주십니다. 하나하나 말하자면 너무 많아서, 그냥 이렇게 답답하고 분하고 그러면서 남편이 밉고 또 바보 같은 제 자신이 떠올라서 두서없이 글을 쓰면서 마음을 달래봅니다.
A. 지난 시간 정말 고생하셨어요. 결혼하신 지 30여 년 동안 새로운 사람들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만나서 좀 더 잘 하려고, 잘 살아보려고 견디며 참고 삭히고 얼마나 애를 쓰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정말 고생하셨어요. 그리고 정말 잘 하셨고 잘 하고 계신 거예요.
자매님 말씀을 들으면서 ‘가정’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사실 거의 대다수의 ‘문제’들은 가정에서 생기게 되지요. 부부갈등, 고부·장서 간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과 대화 단절 등과 같은 ‘관계’의 차원에서 생기는 문제들뿐만 아니라 각종 신경증적, 정서적 증상들도 깊이 파고 들어가면 가정 안에서 발생된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상담할 때 영·유아기를 파헤쳐보기도 하고, 가족 안에서의 관계를 살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자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런 형태의 해결 중심적인 상담을 원하는게 아니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자매님,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보며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시댁 식구들을 용서하는 일인가요? 아니면 남편이 좀 더 딱 부러지게 처신을 했으면 하는 건가요? 매우 현실적인 부분 때문에 서운함이 쌓이고 또 쌓이는 건가요? 그것도 아니면 이 모든 것이 다 뭉뚱그려져 있는 것인지요? 가급적이면(제 개인적으로는 반드시 그렇게 하셨으면 합니다만) 꼭 시간을 내셔서 성체조배를 하시면 좋아요. 일회성의 조배보다는 시간을 정해놓고 꾸준히 하면 더욱 좋습니다. 갑자기 자기성찰의 묵상이나 조배를 권하는 이유가 의아하신가요? 아니면 이미 충분히 그러고 있는데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죽 했으면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을까요? ‘참자기’를 찾는 일은 평생 걸리는 일이겠지만 지금 제가 권하고 있는 것은 그런 ‘완전성’이나 ‘완성된 자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말씀을 드리고 있지만 간단하게 줄이자면! 지금 자매님께서는 어떤 해결을 바라시기 이전에 이런 나를 누가 좀 알아주었으면… 누군가가 진심으로 “그래~ 너 정말 수고했다. 진짜 고생했어! 정말 대단한 거야. 참 잘했어.”라고 말해주길 바라는 마음은 아니신가요? 그리고 “괜찮아, 그럴 수 있어.”라는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요?
자매님! 하느님께서 만드신 우리는 누구나 소중하고 사랑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이에요. 누군가를 향해 미움의 마음이 생길 수도 있어요. 그게 사람이잖아요. 괜찮아요. 세상을 살아야 하니 재산이나 돈, 현실적인 여건들에 휘둘릴 수도 있어요. 내가 부족하고 모자라고 모가 나 있고, 때로는 욕심에, 쓸데없는 욕망에 휩싸여 있어 하느님 앞에 부끄럽고 그런 나 자신이 못나 보이고 또 그렇게 나를 바라보는 스스로가 다시 밉고 서글프더라도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세요. 지난 30여 년을 그렇게 살아오셨다는 것은 슬프고 한심스러운 자기를 떠올리게 하는 기억이겠지만 반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또 오늘을 살아가고 있잖아요. 자매님은 충분히 노력하고 있고 애를 쓰고 있어요.
자매님, 고개를 들고 하늘을 한 번 보세요. 깊이 숨을 들이마시면서 하느님께서 주신 나의 생명을 만끽하세요. 깊이 숨을 내쉬면서 악의는 뱉어내고 사랑의 숨결을 전한다는 것을 믿으세요. 자매님, 조금만 아주 조금만 자매님 스스로를 믿어줍시다. 나 자신을 믿어봅시다. 그렇게 스스로가 자신을 응원해 줍시다. 그리고 작은 용기를 내어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 좀 인정해줘. 괜찮다고 말해줘. 나 좀 응원해줘. 사랑한다고 해줘.”라고 요청해 보는 것도 참 좋은 방법이에요.
나는 정말 소중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그런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찾으실 겁니다. 자매님, ‘괜찮아요. 잘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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