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소람, 희망을 찾다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김종섭(토마)신부, 소람상담소 소장

Q. 신부님,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하는데도 참 힘이 듭니다. 저는 아이가 둘이에요. 중학생인 둘째는 현재 심하게 사춘기를 지나고 있고, 이번에 대입을 준비하는 첫째는 진로나 미래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둘다 나름대로 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뭐랄까 그냥 아무 생각 없는 것 같아요. 저와 남편은 첫째가 좀 하고 싶은 게 있었으면 하는데 아이는 ‘그냥 아무 대학이나 가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의 적성에 맞고 장래성이 있는 학교로 진학했으면 좋겠는데…. 요즘 청년 실업에, 경기도 안 좋아 취직하는 게 많이 힘들잖아요. 취직하기 좋은 곳으로 가면 좋겠는데 아이가 말을 하지 않으니 답답해요. 그렇다고 그냥 놔둘 수도 없고… 남편은 “그냥 둬라~ 지가 알아서 하겠지.”라고 하지만 아직은 어리고 부모가 도와줘야 하는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 자꾸 본의 아니게 남편과 아이 문제로 다투게 되요. 참 속상해요. 제가 잘 되자는 것도 아니고 자기 인생인데, 본인이 행복했으면 하는 것인데 마치 저만 속 끓이고 속물 같은 엄마가 되는 것 같아요. 남편은 마음이 넓은 사람이고 저만 속이 좁고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이를 위하는 엄마의 마음이 뭐 그리 잘못된 것일까요?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정말 무엇일까요?

 

A. 찬미예수님! 자매님, 지금 충분히 잘 사랑하고 계세요. 자매님의 글을 보면서 형제님도 ‘참으로 아이들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하는 느낌이 듭니다. 세상 어떤 엄마에게 있어 자녀의 행복을 바라는 것이 과욕이겠습니까? 괜찮아요. 자녀가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 괜찮아요, 좋습니다.

문득 조카 생각이 났어요. 지금은 꽤 자랐지만 조카들 중에 한 명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 제 엄마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어요. 조카 입장에서는 엄마가 자꾸 간섭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생활에 참견을 한다고 느꼈나 봐요. 그래서 하루는 학교에서 국어 시간에 <엄마에게 편지쓰기>를 했는데 ‘제 인생을 찾기 위해 저는 내일 가출하겠습니다. 제 인생에 더 이상 엄마가 간섭하지 마세요.’ 뭐 이런 내용으로 써 왔더랍니다. 그래서 누나가 “알았다. 더 이상 네 인생에 간섭하지 않을게.”라면서 다음 날 학교 갈 때 책가방이나 준비물 등등 등교하는 것을 도와주거나 거들떠 보지도 않았대요. 그랬더니 조카가 막 화를 내면서 “이런 것은 챙겨줘야지! 이건 보살피는 거니깐 간섭하는 것과 다르잖아!” 하고는 학교를 갔대요. 이 이야기를 듣고 저는 정말 크게 웃었지만 엄마 입장에서 웃을 수만은 없었겠지요. 그 이후 저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간섭’과 ‘보살핌’, 이 종이 한 장의 차이지만 너무 다른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조카가 저를 가르쳤어요.

자매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자매님의 글을 살펴보면, 아이가 스스로 자기 길을 택했으면 하는데 그냥 특별한 목표 없이 지내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어느 정도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취업이 잘 되는 방향으로 진로를 잡기를 바라시는군요. 이 두 가지가 반드시 상충되는 것은 아니지만 먼저 그 안에 담겨 있는 자신의 마음을 잘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분명 이 두 부분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말씀을 많이, 그리고 자주 하셨을 겁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엄마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너 원하는 대로’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이건 어때? 저건 어때?’라고 간섭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어요. 엄마의 입장에서는 ‘보살핌’이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간섭’으로 비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다 아이가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참 슬프게도 그것은 부모의 마음이고 바람이지 아이의 마음과 바람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자매님 말씀처럼 우리는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일까?’하는 미결과제를 한평생 풀어나가야 하나봅니다.

이 미결과제를 풀어나감에 있어서 가장 본질적인 특성을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시소를 타는 것과 같아서 한쪽이 무거워지면 그쪽으로 기울게 되어 있어요. 한쪽은 계속 밑에 있고 다른 쪽은 위에만 있으면 이 시소 타기는 재미없을 거예요. 그럼 이 시소 타기가 재미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한쪽에서 상대방을 향한 사랑이 너무 크면 그것은 부담이나 간섭으로 전해지거나 혹은 나 자신의 욕구 충족에 그치게 된답니다. 그래서 늘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하고 느끼는 사랑이 무엇인지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 때 참 필요한 것은 ‘공감’입니다. 자매님께서 아이의 나이였을 때를 떠올려보세요. 상당히 도움이 됩니다. 다음으로는 이 시소가 재미있으려면 위아래로 움직여야겠지요. 좀 더 무게가 나가는 사람이 밑으로 내려왔을 때 발로 지면을 톡 차면서 상대방이 내려올 수 있도록 도와야 됩니다. 이런 것을 ‘보살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때 도움이 되는 것은 ‘경청’이에요. 진정한 경청이 이루어질 때, 말하는 사람이 ‘아, 내가 참 소중한 존재구나.’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들을 때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많은 엄마들이 주방에서 “왔어? 거기 가방 내려놓고 손 씻고 와. 배고프지? 지금 간식 차리니까 조금만 기다려.”라고 외치며 정작 하교한 아이의 손을 잡아주거나 눈을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면서 ‘온종일 피곤한데도 너희를 위해 이렇게 간식을 차려 주는데 알아주지도 않고….’라며 나의 사랑이 전달되지 않는 것에 대해 슬퍼하지요. 자매님은 어떠신지요?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자매님은 정말 잘하고 계세요. 그리고 가족들을 참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너무 잘 하려고, 너무 훌륭하려고 하지 않아도 되요. 이미 충분하니까요. 우리가 뿌린 것을 하느님께서 거두신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2015년, 올 한 해도 진심으로 수고하셨어요.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 올 한 해도 진심으로 수고하셨어요. 예수님의 은총과 사랑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 소람, 희망을 찾다는 이번 호로 끝을 맺습니다. 그동안 지면을 통해 다양한 고민에 대해 상담해주신 김종섭 신부님께 깊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