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이유정 선생의 교실이야기 2
모란이 피기까지는


이유정(데레사)|계산성당, 무학고등학교 교사

 

겨울이란 계절이 품고 있는 칼바람과 눈보라가 그리 힘겹지마는 않은 이유는 봄이 오고 있는 것을 알기에 때문인 것 같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대입 수능도 끝났고, 이제 고3 교실은 그동안 쌓였던 피로와 마음의 무게를 내려놓은 아이들의 흥성거림으로 가득합니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모란이 피기까지는 /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 모란이 피기까지는 /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 찬란한 슬픔의 봄을

수업시간에 저는 김영랑님의 ‘모란이 피기까지는’를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노래한 시”라고 가르칩니다. 사실 문학적 분석보다는 저는 이 시가 우리네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더 끌립니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초등학교부터 고3까지 열심히 살며 자신의 꿈을 키워가던 학창시절의 마지막에 모두들 대입이란 소망 하나를 피워봅니다. 그 기쁨도 잠시! 우리들은 취업을 바라보며 모란꽃을 피우기 위해 삼백 예순 긴긴날 울며 지냈던 시적화자처럼 또 그렇게 열심히들 살아갑니다. 하지만 취업의 기쁨도 잠시 또 결혼이란 소망의 꽃을 피우기 위해 또 봄을 기다리는 사람이 됩니다. 결혼의 기쁨, 자신들을 온전히 닮아있는 아기의 탄생이 가져다주는 찬란함이 주는 행복, 자녀의 미래 등 매번 모란을 피우기 위해 애쓰는 삼백예순날의 긴 기다림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은 그 힘겨움 뒤에는 찬란한 봄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제 지나온 삶의 여정들을 되돌아봅니다.

‘교사는 또 다른 부모다.’라는 신념으로 교직생활을 해 오며 그 동안 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또 헤어졌습니다. 특히 고3 담임을 맡았던 시간이 많은 만큼 부모라는 강한 책임감으로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저와의 만남이 손해가 되지 않아야 된다는 부담감에 늘 ‘최선’을 힘주어 말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되짚어보니 그 ‘최선’이 아이들을 힘겹게 한 것은 아닐까란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그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열심히 산 제게 “학교 엄마”라는 이름이 새로 생겼습니다. 배 아파 놓은 자식은 아니지만 제겐 그래서 아들들이 참 많습니다. 대학 학점을 잘 받거나 장학생이 되었다는 소식, 취업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아들들이 자랑스러워 여기 저기 자랑도 해봤습니다. 살아가는 힘겨움을 호소하며 시퍼런 가슴 속을 드러내 보일 때면 제 맘도 안타까움으로 가득 차 연신 주님과 성모님께 도움을 청해봅니다. 청첩장을 받거나, 아들딸 낳았다며 사진들을 보내올 때마다 이젠 어른이 된 그들이 대견해 제 맘도 설레곤 했습니다.

하지만 교사로 사는 삶이 늘 행복하고 즐거운 것만은 아닙니다. 사실 교사란 알아주지 않는 짝사랑과 내리사랑을 끝없이 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학습태도 및 생활태도, 두발 단속, 야간자율학습 출결확인 등 늘 아이들과 맞서야하는 일상이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주님께 도움을 청하며 지키고 있는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무단조퇴나 막말도 서슴지 않는 녀석을 보며 ‘정말 주님은 이럴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언제까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를 몇 번이나 맘속으로 외쳤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녀석도 아들인지라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수시원서를 쓰도록 하기 위해 여러 번의 설득을 하고, 면접연습을 도와주며 이 아이에게 조금은 더 좋은 미래를 허락해달라고 주님께 청했습니다. 이 애물단지도 언젠가는 어른이 되는 그날이 오는 것을 알기에.

창의적 체험활동 <선배에게 길을 묻다>라는 프로그램을 위해 졸업 선배들에게 연락하던 중 제가 무학에 온 첫해의 한 제자와 오랜만에 통화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자신을 회상하며 “쌤요! 그 때 저 공부 참 안 했지요.”라며 큰 소리로 웃는 그 아인 이제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땐 그냥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이 즐거웠고, 우정이 그 순간에 최고로 중요한 것이었답니다. 그래서 성적이 나빠도, 좋은 대학에 못 들어갔어도 행복했다며,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대학 진학 후 열심히 노력한 그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좋은 직장에 들어갔고, 결혼을 하면서 또 다른 세상을 만났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이라 힘주어 말했습니다. 너무나 멋있게 자라 준 그 녀석과 통화를 끝낸 후 저는 교실에 들어가 우리반 녀석들 얼굴을 하나 둘, 둘러봤습니다. 이들 역시 한참의 시간이 지나면 또 한 명의 가장이 되어 열심히 세상을 살아가겠지, 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금 들여다보았습니다. 

이 글을 마치며 교단에 서서 “학교 엄마”로 살아갈 남은 날들을 생각해 봅니다. 단 5일 정도의 짧은 기쁨을 주는 모란을 피우기 위해 기나긴 삼백 예순 날을 울며 기다린 시적화자가 봄을 “찬란한 슬픔”이라고 말한 것처럼 주님께서 저에게 허락해 주신 이 귀한 자리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 기다림이 힘들지라도 언제나 봄이 되면 꽃피우는 모란을 기다리며!

지난 3년간 보잘 것 없는 제 글을 허락해 주신 〈빛〉잡지와 서툰 글인데도 즐겨 읽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주님의 은총이 주는 평화와 성모님의 포근한 품 안에서 늘 행복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이유정 선생의 교실이야기는 이번 호로 끝맺습니다. 그동안 좋은 글 써주신 이유정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