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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이야기
교장실에서


글 박경현(프란치스코)|포항 오천고등학교 교장, 진량성당

  

“2006년 무학고등학교 교사 시절 이 지면을 통하여 1년 동안 마음속에 묻어 두었던 이야기를 마음껏 쏟아냈던 추억이 언제나 감사하고 자랑스러웠다. 오천고등학교에 온 지도 2년하고도 반년이 다 되어 갈 즈음, 다시 소중한 지면을 허락받았다. 앞으로 1년,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을 더 사랑하기 위한 고민을 함께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연재를 시작하려 한다.” - 필자 주(註)

 

학교에서 가장 잘 알려지지 않은 방. ‘교장실’이라는 팻말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곳이 교장실이다. 마치 권력의 중심부인 양 소수의 사람들만이 출입이 허용되는 듯하고 문은 항상 굳게 닫혀 있다. 졸업앨범을 통해서만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교장실 내부의 모습은 태극기와 교기가 좌우 대칭으로 가지런히 세워져 있고, 큼지막한 책상 한가운데에는 고급스럽고 화려한 자개무늬로 한자 이름이 새겨진 직각삼각기둥모양의 명패가 놓여있다. 또 양쪽 가장자리에는 난화분과 포개진 두터운 법전이 장식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비슷비슷한 모습에다가 머리까지 받혀주는 높다란 등받이가 있는 검은색 가죽의 고급스러운 회전의자에 묻힌 사진 속 교장선생님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책 한 권을 펼쳐 놓고 표정 없이 정면을 바라본다.

“교장 뭐 하는 일이 있나? 적당하게 출근해서 직원에게 커피 한 잔 태워 달라 해서 마시고, 도장 몇 개 찍고, 신문 좀 보고….” 교장이 되었다고 축하하는 모임에서 농담 삼아 던진 친구들의 말이 학교 밖 사람들의 교장에 대한 인식을 잘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여기저기 모임에 가서 밥 대접이나 받고 퇴근 시간과 상관없이 학교를 빠져 나가 여유 있게 자기생활을 즐겨도 간섭받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도 어쩌면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2013년 8월 30일, 오천중고등학교가 소속된 학교법인 해은학원의 이사장으로 천주교대구대교구 교구장이신 조환길 타대오 대주교님이 취임을 하셨다. 오천성당에서 실시된 취임식에는 포항지역에 영향력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학교의 정상화가 교육계는 물론 지역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가늠할 수도 있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나는 오천고등학교 교장 임명장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날인 2013년 9월 1일 꿈에서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학교의 교장실로 출근을 했다. 마치 낙하산을 타고 혈혈단신으로 적의 심장부에 투하된 특공대처럼…. 그리고 “나를 오천의 가족으로 받아 주십시오.”라며 간절한 취임사를 했지만 낯선 교장의 등장에 30년 동안 동고동락한 교직원들은 참으로 복잡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마치 점령군의 꼭두각시처럼 보이기도 했을 것이고, 지금까지 이사장이 바뀔 때마다 헛된 기대로 인해 입었던 상처를 떠올리며 이 또한 지나가는 짧은 혼돈의 과정으로 여기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본래 숫기도 부족하고 낯가림이 매우 심한 완벽한 촌뜨기이다. 성급하고 타협할 줄도 모르고, 나와 같지 않은 생각과 판단을 하는 사람들을 포용할 아량도 갖추지 못했다. 의견이 맞지 않으면 상대가 누구든 면전에서 비판을 주저하지 못할 만큼 분노의 조절도 잘 안 된다. 술과 담배도 할 줄 모르고 정답이 아니면 오답으로 여기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굳이 설득하려고 하지 않는 속 좁은 사람이다.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고 옳은 방향이라면 아무도 동의해 주지 않아도 혼자라도 가야 하는 고지식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심각한 것은 나는 이 학교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학교 구성원들의 성격이나 이 학교의 지난 역사, 그리고 이 학교가 잘 되기 위한 방법조차도 말이다. 게다가 선생님 한 명 한 명 만나서 설득할 자신도 없고 의지도 없었다. 이런 내가 익숙하지 않은 구성원들의 협조를 끌어내어 어려운 장면을 헤쳐 나가야 하는 이 학교의 교장으로서는 적임자가 아닌 것이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오천고등학교의 최고책임자로 발령을 받은 것이다.

취임과 더불어 의례적인 과정과 절차는 생략하고 모교인 무학고등학교에서 25년간의 수학 교사와 3년간의 교감생활을 통해서 나름대로 품고 있던, 우리나라 일반계 고등학교가 필요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한꺼번에 바꾸었다. 야간 자율학습을 밤 11시로 늘이고 아침 자율학습은 7시부터 시작할 것. 자습으로 때우던 방과 후 수업을 교과수업으로 전환하고 토요일에도 방과 후 수업 및 특별수업을 실시할 것. 겨울방학 방과 후 수업부터 인터넷을 통해 학생이 직접 수강신청을 하는 학생선택형으로 전환할 것. 장기결석자는 자퇴서를 받고 과벌점자는 교칙에 의거하여 엄정하게 처벌할 것. 두발은 스포츠형으로 지도하고 교복변경을 추진할 것. 흡연자들의 등록을 받아서 정기적인 검사를 통해 금연지도를 하고 교내는 물론 학교 주변의 담배꽁초가 보이면 전원 흡연체크를 해서 벌점을 부여할 것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은 없었지만 단호하게 추진해 나갔다.

나는 새벽 6시 40분쯤 출근을 해서 밤 10시가 되든 11시가 되든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곁에 머물렀다.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나도 모른다. 마치 알 수 없는 큰 힘에 이끌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몇 년이 걸려도 쉽지 않을 이러한 시도들을 그냥 그렇게 하자고 했다. 두려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가야 할 길을 가야 한다는 무모한 용기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 선생님들이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사람들처럼 묵묵히 따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오랜 숙원사업이라도 해결된 것처럼 “일 할 맛 난다.”며 마음으로 함께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가슴이 먹먹할 만큼 감사한 마음으로 약속했다. “법인과의 오랜 갈등에도 불구하고 혼신의 노력으로 학교를 지탱해 온 선생님들의 명예를 꼭 회복시켜 드리겠다.”고…. 그리고 나는 매일 아침 부족한 나를 이끌어 주시기를 하느님께 기도드렸다.

 

우리 학교가 밤늦은 시간까지 교실이 환한 모습을 보고 “불은 켜 놓았지만 아이들은 없을 거야!”라고 한 주민들의 말이 화제가 되기도 할 만큼 학교에 대한 불신의 벽은 높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묵묵히 한 방향으로 달렸다. 교장실에 십자가를 걸었다. 그리고 교장실의 명패를 비롯하여 덕지덕지 붙어있던 학교현황판과 화려한 인쇄물들을 죄다 걷어내고 그 자리에 전교생의 사진을 붙였다. 그 옆에는 요한보스코 성인의 말씀 “이 아이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까?”라는 글귀를 기도손 그림과 함께 붙였다. 제법 성능이 좋은 커피 기계를 구입하고 한쪽 벽면에는 화이트보드를 달았다. 냉장고에는 음료와 초콜릿을 채워두고 교장실의 문을 언제나 열어 두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다. 커피를 핑계로 선생님들이 찾아오고 수학과 초콜릿을 핑계로 아이들이 찾아왔다.

두발 규정을 바꾸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쯤, 신입생 중에 한 녀석이 나를 쳐다보고 “교장선생님, 저 보고 머리 깎으라 하지 마세요. 저는 오천고등학교에 공부하러 온 게 아니라 졸업장 따러 왔어요. 사고는 치지 않을 테니 머리는 간섭마세요.” 그리고는 그날부터 틈틈이 교장실에 드나들던 그 녀석, 지금은 2학년이 되어 밝은 모습으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머리도 말끔히 깎았다. 금연교육을 강화하여 엄격하게 지도해 나갈 무렵의 일이다. 한 녀석이 씩씩거리며 교장실의 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교장선생님, 말도 안 됩니다. 저는요, 중학교 때부터 담배를 피웠는데 교장선생님 한 마디에 그렇게 담배가 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하고 떼를 썼다. 이 녀석도 요즈음 불시에 실시하는 금연테스트를 잘 통과하고 있다.

교장실은 결코 격리된 공간이거나 권력의 중심부가 아니다. 담임의 사과를 받아내겠다며 교장실의 문을 두드리는 학부모들의 분노를 막아야 하고, 급식이 딸아이 입에 맞지 않다며 마치 돈이라도 떼어 먹은 듯 비난하는 어머님들과도 친절하게 마주해야 한다. 학교의 프로그램이 선생님들을 너무 고려하지 않는다며 제고를 원하는 선생님들의 마음도 다독여야 한다. 자식과 같은 계약직 선생님들의 간절한 눈빛을 보고도 냉정한 말을 해야 하고, 교내의 각종 공사현장을 감독해야 한다. 학교의 일이 언제나 정답과 오답이 충돌하는 것이 아니다. 견해가 다른 여러 개의 정답이 대립하는 것이다. 어떤 결정을 내려도 동의하지 못하는 구성원들이 거의 절반 가까이 있다. 신년도 부장 교사를 결정하고 발표하는 순간 선생님들의 표정과 반응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한 해의 인사가 완료되면 바로 다음해의 인사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육부총리도 모른다.’는 대학입시를 예측하여 학교의 정책을 결정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변화하지 않기를 결정하거나 변화를 시도하거나 그 두려움의 무게가 다르지 않다. 학교의 장래가 걸린 신입생 모집업무와 대학 합격자 발표시기에는 피를 말린다.

 

교장은 아무 하는 일 없이 늘 빈둥거리는 듯이 보이지만 어느 순간도 생각을 멈추지 못한다. 결재 도장 하나 찍는 데에는 아주 짧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결정하기까지는 숱한 불면의 밤을 보내기도 하는 것이다. 밤이 까맣게 깊었는데 교장실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한 해 한 해의 교육활동의 성과가 학교의 성장과 몰락을 결정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립 고등학교 교장의 경우는 부모와 배우자에게 교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순간 외에는 긴장을 풀 수 없는 험하고도 외로운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우리 학교에 몸담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지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아무도 결정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천고등학교의 교장실, 이곳은 포성이 멎지 않는 치열한 전쟁터의 야전사령부와도 같은 곳이다.

 

이번 호부터 포항 오천고등학교 박경현 교장선생님의 생생한 “학교이야기”가 연재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애독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