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명 ‘제현’으로도 불리는 이윤일 요한 성인께서는 원래 충청도 홍주의 구교우 집안에서 태어나셨는데 고향을 떠나 경상도 상주 갈골에서 사시다가 부친께서 세상을 떠나자 성인의 처갓집 식구들이 많이 살고 있던 문경의 여우목(호항리)으로 이주하여 사셨습니다. 큰 키에 숱이 많고 긴 수염으로 위풍당당한 용모와 온화한 성품, 지극한 효성으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셨던 성인께서는 공소회장으로 활동하시면서 외교인들을 입교시키고 신자들을 이끄셨습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시작되자 그 해 11월 18일 포졸들이 여우목으로 들이 닥쳤습니다. 피하지 않으시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태연하게 그들을 맞아 순순히 체포되신 성인께서는 문경 관아에서부터 상주로 이송되시는 동안 혹독한 고문과 형벌을 받으시면서도 함께 잡혀 온 다른 신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묵상과 기도로 온갖 고초를 다 이겨 내셨습니다. 마침내 ‘사교의 두목’이라 하여 사형을 선고 받으신 성인께서는 기뻐하시며 자녀들에게 “나는 이제 순교하려 떠난다. 너희들은 집에 돌아가 성실하게 천주님의 계명을 지키도록 하여라. 그리고 꼭 나를 따라 오너라.”고 하셨습니다.
1867년 1월 21일 성인께서는 사형집행 전에 주는 마지막 음식을 다 드시고 대구 남문 밖 관덕정으로 끌려 나가셨는데 집행관이 나서 선고문을 낭독하자 성인께서는 품속에서 돈주머니를 꺼내어 희광이에게 주며 “나를 위해 수고하는 자네에게 줄 터이니 받아서 요긴하게 쓰게나. 그 대신 부디 한 칼에 내 목을 베어 주게.”라고 하셨습니다. 경건하게 십자성호를 긋고 스스로 목을 괴어 칼을 받으셨는데 돈을 준 효력을 거두었는지 성인의 목은 한칼에 떨어졌습니다.
형장 근처에 임시로 뫼셨던 성인의 유해는 후손들에 의해 대구 비산동 날뫼 뒷산으로 모셨다가 다시 경기도 용인군 묵리, 미리내 성지 무명순교자 묘역을 거쳐 1987년 1월 21일 대구 성모당에 안치되셨는데 당시 대구대교구 교구장님이셨던 이문희 대주교님께서는 이날 성인을 대구대교구의 제2주보로 모실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그 후 1991년 1월 20일에 관덕정에서 이문희 대주교님 주례로 순교기념관 성당 제대에 봉안되셨습니다.
성인께서는 1968년 10월 6일 바오로 6세 교황님에 의해 시복되시고 1984년 5월 6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에 의해 서울 여의도에서 동료 순교자 102분과 함께 시성되셨습니다.
- 이윤일 요한 성인(1816~1867, 회장, 순교자, 축일: 1월 21일)
* 이번 호부터 “이 달의 성인”이 여러분 곁을 찾아갑니다. 많은 관심과 애독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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