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수녀원이 시작된 1915년 이래 백백합보육원을 거쳐 입양된 수많은 해외입양인들이 성장하여 자신의 친가족을 찾기 위해 모국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지난 해에는 감사롭게도 수십 년만에 친가족과 극적인 상봉을 한 경우가 몇 차례 있었습니다. 매번 상봉이 이루어지기까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기도해주신 <빛> 잡지 형제자매님들께 깊이 감사드리며 아직도 상봉을 기다리는 많은 이들을 위해 기도와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10여 년 동안 36회나 한국을 찾아 온 미국 입양인 마이클 이와타(한국이름: 신태호) 씨가 또다시 대구 백백합보육원을 방문했다. 혈육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36회나 찾아 왔을까.

“지금은 제 얼굴이 많이 변했으니 입양 전 보육원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혹시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요? 한국에 올 때마다 혹시나 친부모님으로부터 어떤 소식이 있을까 기대하곤 합니다. 부모님을 찾는 일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친부모님을 만나 저의 아내와 딸도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친부모님을 만난다면 항상 잊지 않고 마음에 품고 있었다고 말해드리고 싶습니다.”
보육원 기록에 의하면 신태호 씨의 생년월일은 1975년 9월로 추정하고 있고, 1979년 9월 2일 울고 있다가 지나가던 사람에게 발견돼 역전파출소 경찰관을 통해서 백백합보육원에 맡겨졌다. 보육원 도미니코방(4세~취학전 아동)에서 6개월을 지낸 마이클 씨는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일본계 미국인 가정으로 입양됐다.
양부모는 마이클 씨를 정성으로 보살폈고 양부모의 두 딸도 남동생을 무척 아껴주었다. 마이클 씨는 성장하면서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안 뒤부터는 모국과 친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커갔다. 미국 항공사에 취직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친가족을 찾는 일에 나섰다. 2003년 처음으로 한국에 와서 보육원의 기록을 보고 4살 무렵 동대구역 근처에서 발견되었으며 생년월일은 추정에 의한 것이고 한국 이름도 그를 보육원으로 데려온 신태우 경장의 이름에서 따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2006년 다시 한국에 왔다가 한국인 아내를 만나게 되었고 이제는 예쁜 딸도 두었다.

2014년 매일신문에 마이클 씨의 기사가 나갔는데, 바로 그날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35년 전 마이클 씨를 파출소로 데려다 준 행인인 이 모 씨가 그를 기억한다며 수녀원을 찾아왔다. 당시 대학생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는 저녁 해질 무렵 퇴근길에 동대구역에서 신암전신전화국 방향으로 혼자 울면서 두리번거리며 걷고 있던 네 살박이 마이클 씨를 발견했고 손을 잡아주며 아이의 부모를 찾아주려고 여러 시간 애썼지만 찾을 길이 없어서 인근 파출소에 맡겨야 했다. 혹시라도 마이클 씨의 기억에 도움이 될까하여 처음 발견된 장소에도 가 보고 그 당시 주변상황을 상세히 설명하며 35년 전에 손을 꼭 잡고 걸어 내려갔던 길도 함께 걸었다. 이 씨와의 극적인 만남처럼 친부모님과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이클 씨는 기회가 될 때마다 처가집이 있는 한국을 방문하여 여전히 친가족으로 부터 소식을 손꼽아 기다리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백백합보육원 입양인 지원 : 053-659-3333
김 데레사 수녀 : spct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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