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열기
지난 여름, 중·고등학생대회에서는 모든 참가학생들이 ‘S·T·A’(Spare Time Activity)라는 활동을 하였습니다. ‘S·T·A’란 말 그대로 ‘여가시간 과제활동’입니다. 그 내용은 한 마디로 ‘먼저 다가가서 인사하기’라고 할 수 있는데요, 한가지 프로그램을 마치고 다음 프로그램 전의 사이 시간이나 식사 후 휴식시간 등, 틈나는 대로 먼저 다가가 인사함으로써 서로를 믿고 받아들이자는 것이 그 활동의 취지였습니다. 대회에 참가한 5,000여 명의 주일학교 학생, 교리교사들은 이 활동을 통해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상호 개방은 다른 프로그램에도 영향을 미쳐 참여도를 높이는 데도 기여하고, 더욱 활발한 프로그램 활동을 이끄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청소년 사목에서는 훌륭한 프로그램 이상으로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 상호간의 유대관계 형성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받아들여지고,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일에 쉽게 이끌리기 때문입니다. 신부님이나 수녀님 또는 주일학교 선생님이 자신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고 괜히 친한 척 해주는 것만으로 기뻐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겨울에는 서울대교구의 교리교사 양성 프로그램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이 교육에서 아주 인상 깊었던 프로그램 중의 하나가 ‘이름 외우기’ 테스트였습니다. 2박 3일 동안 참가자 전원의(대략 120명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름을 외워야 하는 테스트였습니다.
아무리 같이 먹고 자고, 같이 교육받는다 하더라도 2박 3일 동안 그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외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날의 이 시험은 교육을 수료하느냐, 하지 못하느냐를 가늠하는 결정적인 것이었고, 결국 눈물까지 펑펑 쏟아 내며 끝까지 시험에 임하는 교리교사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름을 외운다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담당 신부님의 설명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인격적인 만남에서 첫 번째로 벌어진 일이 바로 하느님께서 인간의 이름을 불러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아! 모세야!’ 하고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교리교사가 학생과 인격적인 만남을 이루기 위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이름을 불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리교사들은 쉽게 눈에 띄는 아이들뿐 아니라,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아이들까지도 의식적으로 이름을 외우고 다정히 불러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쁘고 잘생긴 아이들, 똥침놓고 도망치는 아이들, ‘아이스캐끼’하며 치마를 들어올리고 도망치는 아이들 등등 나름대로 특성을 가진 아이들이나 먼저 다가와 치근대고 장난치는 아이들은 노력하지 않아도 금방 기억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밖에도 내성적인 아이나 자기를 잘 드러내지 않는 아이들도 많이 있기에 그 아이들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표현해야 함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무것도 아닌 우리를, 죄인인 우리를 당신 자녀로 불러주신 것처럼 교리교사들도 모든 학생들의 이름을 골고루 불러 줄 수 있어야 함을 잘 지적해주는 교육이었습니다.
생각하기
부모는 자녀가 어떤 성향의 아이이건 간에 주일학교에서만큼은 고른 관심과 사랑의 대상일수 있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바람을 갖기 이전에 어머니인 나 자신이 먼저 신앙의 교사임을 인식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아기가 자라 말문이 트이고 유치원이나 학교에 다니게 되면 여러 가지 과외활동에 아이들을 맡기듯이, 신앙교육 또한 그렇게 주일학교에 내어 맡기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베드로야! 일주일간 잘 지냈니?’하며 아이의 이름을 다정히 불러주는 교리교사!
‘세실리아 선생님! 우리 베드로가 교리시간에 많이 떠들죠?’하며 교리교사의 이름을 부를 줄 아는 어머니! 그 사이에서 아이는 더욱 건강한 인성과 신앙을 가꾸어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요즈음 본당의 주일학교에서는 대학생 교리교사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격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아직 부족한 20대 초반의 교리교사들이 더욱 기쁘게 봉사하고 하느님의 사업에 더욱 열정적으로 나설 수 있기 위해서는 어머니들의 관심과 격려가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가진 것을 나눌 수록 건강한 공동체를 일구어 나갈 수 있듯이 주일학교 또한 가정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가정과 본당 공동체의 협력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 출발점이 바로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말씀으로 피조물을 만드신 후 각각 낮, 밤, 하늘, 땅, 바다 등 이름을 붙여 주시고(창세 1,3-10), 아담으로 하여금 각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 주라고 명하심으로써(창세 2,19-20) 창조 사업을 마무리 지으셨습니다. 이밖에도 이름에 관한 성서의 구절들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담은 아내를 인류의 어머니라 해서 하와라고 이름지어 불렀다.”(창세 3,20)
“임신하게 해 주셨다. 한나는 달이 차서 아들을 낳자 ‘야훼께 빌어서 얻은 아기’라고 하여 이름을 사무엘이라 지었다.”(1사무 1,20)
“그러자 야훼께서 거기에 나타나 서시어 아까처럼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이 ‘야훼여, 말씀하십시오.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1사무 3,10)
“야훼여, 아브람을 택하시어 바빌론 우르에서 이끌어 내시고 아브라함이라 이름지어 주신 이, 바로 하느님 아니십니까?”(느헤 9,7)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는 뜻이다.”(마태 1,23)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내가 이루어 주겠다.”(요한 14,14)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해 본 적이 없다.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너희는 기쁨에 넘칠 것이다.”(요한 16,24)
성서에서는 이름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특징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당시 사람들에게 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를 나타내는 중요한 개념이며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은 히브리어로 ‘흙’이라는 단어와 같은 어원을 가짐으로써 인간은 흙의 존재요, 땅의 먼지로 돌아갈 자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또, 아브라함의 어근 아브( )는 아브-하몬이라는 말과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 아브-하몬이라는 말은 ‘많은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아브라함을 ‘신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그 이름의 뜻과 상통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 특별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서의 인물들에게는 이름에 변화가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야곱이 이스라엘로, 시몬은 예수님에 의해 베드로라고 다시 불리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하느님으로부터 이름을 부여 받았습니다. ‘베드로야! 베네딕도야! 세실리아야!’하며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시고 불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하느님의 고귀한 자녀로 불림 받은, 참으로 소중한 사람임을 알아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사랑스레 우리의 이름을 불러 주시듯이 우리가 우리 가족, 이웃, 친구의 이름을 다정히 불러주지 않는다면, 하느님께는 그렇게 소중한 존재라 하더라도 우리 각자에게는 무의미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저 스쳐지나 버린다면 그 사람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누구야∼!’하며 이름을 불러줄 때 그는 나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되어 다가올 수 있는 것입니다.
실천하기
저는 어린 시절, 평상시 집에서뿐 아니라, 명절 때도 친척들로부터 ‘분도’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초등학교 때 성당 친구들은 아직도 제 이름보다 분도라는 세례명을 더 많이 불러줍니다. 보좌 신부때도 전신부라고 부르는 사람보다 분도신부라고 부르는 사람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제 세례명은 제 삶에서 한시도 떠나 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축복받은 자’라는 의미처럼 이렇게 축복받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정에서 자녀들의 세례명을 사랑스럽게 불러준다면 아이가 부모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감지해 나가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물론, 아이의 세례명을 불러주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하느님의 사랑을 담기 위해서는 어머니가 먼저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수 있어야 하겠죠!
“나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가족에게 이름을 주신 하느님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드립니다.”(에페 3,1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