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기
인연


글 이관홍(바오로) 신부|가톨릭근로자회관 부관장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서로서로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사람들,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 사람들만을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과 직·간접적으로 맺어져 있습니다. 특히 이주사목을 하다 보면 뜻하지 않은 인연들을 많이 맺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인연들은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을 이웃으로, 형제자매로 만들어 준다는 생각을 자주하게 됩니다.

1년 전인 2015년 6월 말 저는 이상해 신부님(대안성당 주임, 가톨릭근로자회관 관장)과 함께 아주 특별한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우리는 2013년 11월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은 필리핀 타클로반으로 향했습니다. 태풍의 피해가 워낙 극심했던 지역이라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2015년 필리핀을 방문하셨을 때 태풍의 피해를 입었던 이재민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시며 이재민들을 위로해 주셨던 곳이기도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타클로반 공항에서 이재민들과 똑같은 비옷을 입고 미사를 봉헌하시며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실 때는 정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이상해 신부님과 제가 향한 곳은 타클로반에서도 작은 배로 2시간 정도 더 가야 하는 다람 사마(Daram Samar)라는 섬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두 번째 방문이기도 하였습니다. 2014년 1월 포항에서 이주사목을 할 때 그곳 출신 결혼이주여성의 가족들 수십여 명이 태풍으로 목숨을 잃고 400명 정도 되는 마을 주민들이 굶주림에 시달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그들과 함께 하기로 떠났었습니다. 사실 성금을 모아서 구호단체 등을 통해서 보내는 것이 편하고 좋지만 현지에서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 도와주는 것이 훨씬 더 의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포항과 대구의 필리핀 공동체에서 성금을 모아주었고, 포항의 많은 신자 분들도 정성을 모아 주셨습니다. 워낙 작은 섬이고 외딴 곳이라 원조나 복구의 손길이 전혀 닿지 못한 곳이었습니다. 태풍 피해가 적었던 인근 섬에서 엄청난 양의 쌀과 통조림 등을 구입해서 배로 마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2014년 1월 방문 당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작은 공소가 태풍으로 무너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 마을에서 공소는 단순히 신앙생활의 장소가 아니라 태풍이 오거나 파도가 높은 날이면 마을 주민들이 대피할 수 있는 대피소의 역할도 하고, 결혼식이나 장례식이 거행되고 아이들의 학교로 사용되기도 하는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무너진 공소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머지않아 기쁜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2015년 대안성당 설립 50주년을 맞이하면서 본당 신자 분들이 의미 있는 일을 하시고자 공소 건립 기금을 봉헌해 주셨습니다. 수개월 동안 공사를 거친 끝에 마을의 수호성인인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축일에 축복식과 함께 미사를 봉헌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저와 이상해 신부님은 함께 그 섬으로 향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의 눈으로 본다면 그 공소는 여전히 건축 중인 것 같고 공사 마무리가 덜 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마을에서는 가장 튼튼하고 안전한 콘크리트 건물이었고 조금은 좁게 느껴지지만 마을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보금자리로 변해 있었습니다.

한 주간을 그 섬마을에서 머물면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은 정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여러 가지로 열악한 상황에 있는 마을 주민들을 위해서 생필품을 지속적으로 보내 주었고, 특히 지난 성탄 때는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학용품을 성탄 선물로 보내 주었습니다.

 저는 이주사목이 단순히 이주민들을 사목하고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인연을 맺어 주는 우리 교회의 보편성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사목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모든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특히 갈라지고 부서지고 분열된 사회 안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의 자녀로서 서로 ‘인연’을 맺고 그 인연을 확인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소명이라고 생각됩니다. ‘만남’을 통해서 서로의 ‘인연’을 확인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 주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 저와 이상해 신부님은 또 다른 인연을 맺고자 하는 꿈이 있습니다. 매주 경주, 구미, 대구의 베트남 공동체 미사를 봉헌해 주시는 짜우 신부님으로부터 신부님이 소속된 도미니코수도회에서 소수민족 아이들을 위한 고아원을 짓는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으로 이주한 필리핀, 베트남 사람들을 위해 사목하기에도 빠듯하지만 이주민들을 통해서 새로운 인연을 맺어 가는 것이야말로 이주사목의 결실이고 열매인 동시에 또 다른 복음 선포이며 선교활동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모든 사람들과 국경을 초월해서, 인종을 초월해서 깊은 인연을 맺고 살아가며 똑같은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음을 꼭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