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 선생님, 제 아이에게 다시는 오천고등학교에 오라는 말 하지 마세요.” 정색을 한 아주머니가 서릿발 같은 눈초리와 함께 던진 말이 비수처럼 꽂힌다. 하지만 예견한 장면을 크게 빗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미리 구상한 다음 대사를 떠올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하고자 한 말은 꼭 우리 학교로 진학하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의 대학 입시에서 자제분에게 유리한 선택이 무엇인지 객관적인 관점에서….”, “됐어요, 어쨌든 우리는 이미 결정한 사항이에요, 더 이상은 제 아들 괴롭히지 말아요.”
나를 잡상인 대하듯 하고는 교장실의 문을 밀치고 나간 그 아주머니를 나는 정중하게 따라 나간다. 이미 복도의 끝을 향하여 다시는 오지 않을 길을 가는 듯 사라지는 그 아주머니의 등 뒤로 몸을 굽히며 건넨 인사말이 어둠과 함께 메아리로 울린다. ‘제 아들 괴롭힌다.’는 말이 참 아프다. 한참이나 멍하니 서서 마음을 추스르고 되돌아와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의자에 풀썩 몸을 던지니 하루의 고단함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밤이 까맣게 깊었다. 벌써 몇 번째인가. 이 모든 현상들은 법인이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일어난 오해일 뿐 학교의 변화된 모습과 나의 진심을 이해한다면서, 오히려 자식을 받아 달라고 매달리게 될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나는 책상 귀퉁이에 놓인 촛불에 비친 예수님의 표정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을’의 삶을 선택했던 그분의 길고 고단했던 여정이 느껴진다.
눈앞에 닥치지 않은 문제에 대하여 미리 깊이 고민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학교법인이 무엇인지, 재단이사장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학부모들은 막상 자녀들이 고등학교로 진학할 무렵이 되어야 부랴부랴 학교를 살펴볼 뿐, 평소에는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귀동냥으로 듣고 쉽게 믿어 버린다. 포항제철의 성장과 더불어 오천지역의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1985년 우리 고등학교가 개교하였지만 재단의 문제로 학교는 어려운 시기가 많았다고 한다. 선생님들은 자신의 의지로는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하면서 밑 빠진 독이지만 그래도 물을 채우는 심정으로 근근이 학교를 지탱해 왔다. 이 지역 학생들의 숫자가 넉넉했기에 떠날 학생은 다 떠나 보내고도 유지가 가능했지만 학교의 위상은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었다. 경쟁력을 잃은 학교에 대한 지역민들의 감정은 실망이 아니라 분노였다. 2013년 천주교대구대교구에서 학교를 인수하는 과정이 순탄치 못했던 것도 이유가 있었다. 재단이 바뀔 때마다 가졌던 기대는 언제나 더 큰 상처로 돌아왔던 경험들 때문에 우리 교구가 학교경영을 맡는 것조차도 이권에 눈이 먼 사람들의 장난질로 의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학교 정상화시켜서 팔아먹으려고 하는 거지요?”, “재단이 약속한 투자 금액을 각서로 써 주세요.”라며 지역 유지는 물론 학교 동창들까지 나서서 ‘다시는 속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실무를 맡은 신부님들과 마찰을 벌이기도 한 것을 보면 학교와 재단에 대한 배신감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내가 교장으로 부임하여 지역의 기관장들 모임에 갔을 때도 오랫동안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천주교에서 학교를 맡았으니 믿음이 간다며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아지는 분위기였지만, 막상 학교를 선택해야 하는 학부모들은 소문만 무성한 학교에 자기 자식을 실험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어머님의 태도가 지나친 것이 아니라 우리 학교로 진학을 권유하고 있는 나의 의지가 결례임이 분명하다. 우리 선생님들조차도 나의 과욕이 많은 상처와 실망으로 끝날 것이라며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다. 우리 학교는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학교가 되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학교는 사회 현실의 변화를 주도하는 ‘갑’의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소비자의 기호를 좇아가야 하는 철저한 ‘을’이다. 법인의 거창한 건학이념도 아이들이 학교를 선택하는 데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학교는 아이들을 성장시킨 정도로 평가해야 정당하다고 말하지만 학부모들은 ‘진학의 성과’로 평가한다. 학교는 우수한 학생이 들어와야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하지만 학생과 학부모는 성과가 있어야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 지역 중학교 상위권 학생들은 자사고나 특목고가 우선이고, 그 다음으로 시내 평준화지역으로 지원을 생각하는 것이 거의 공식화되어 있다. 변화된 학교를 한 번 믿어 달라는 우리들의 간절한 바람은 성급한 과욕일 뿐이다.
“전투에서 이기는 것은 위대한 장군이로되 / 승리를 가져오는 것은 무명의 병사로다. / 교육제도를 만드는 것은 이름 높은 교육자로되 / 아이를 올바르게 이끄는 것은 무명의 교사로다.” 헨리 반 다이크(Henry Van Dyke)의 〈무명교사예찬〉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학교는 결코 시설이나 제도로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교단에서 학생과 마주하는 선생님들의 열정과 헌신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아무도 지켜 주지 않는 황량한 벌판에서 교사로서의 마지막 자존심마저 짓밟히며 학교의 추락에 대한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이제 믿고 기댈 수 있는 안정된 법인이 있다.”며 평생을 몸담은 학교와 교사로서의 명예회복에 대한 절박함이 있었다. 이름 없는 선생님들의 이런 결심보다 더 강한 희망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의 신뢰 회복을 위하여 구성원 모두가 혼신의 노력을 다하며 우리는 온몸으로 싸늘한 현실과 맞서고 있었다. 이런 진심이 통했는지 부모님의 막무가내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학생의 마음은 조금씩 기울어지고 있었다.
“저는 오천고로 진학을 하고 싶지만 어머니를 설득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이 한마디만으로도 선생님들이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결과에 상관없이 최상위권 학생들의 이런 태도는 전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네 의지가 확고하다면 우리가 도와주겠다.”고 약속하고 나니 머릿속에는 온통 한 가지 생각만이 가득했다. “우리 아들 오천고에 진학하면 자퇴시켜서 검정고시를 치르게 하겠다.”
아이의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어머니의 태도는 더욱 강경해졌다. 수화기 너머로 어머니의 분노에 찬 완강함이 철옹성처럼 다져지고 있었다. 우리들의 목표가 분명해졌지만 수단이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들에 대한 불신과 면학분위기에 대한 우려 등 모든 것이 불안한 부모님의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모두가 허사인 상황이었다. 그래서 신규 임용된 젊은 선생님들을 모두 동원했다. 어머니가 학교 인근에서 식당을 경영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우연을 가장하여 그 집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몇 번의 방문으로 서로 인사를 건네는 사이가 되었고 드디어 말을 섞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든 것이다. 자연스럽게 선생님들이 신분을 밝혔을 때 어머니는 몹시 당황스러워했다. 젊고 열의를 가진 많은 선생님들을 통하여 학교의 변화된 분위기가 단순한 소문만이 아님을 느끼고는 마음의 빗장을 조금씩 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아들이 공부 좀 한다고 소문이 나 있는데 오천고등학교로 진학했다고 하면 저는 얼굴 들고 동네 다니지도 못합니다.”라고 말했지만 목소리는 많이 무디어져 있었다.
성적이 매우 좋았던 한 여학생도 우리의 목표였다. 똑 부러지는 성격에 밝고 쾌활했다. 어머니의 거절 의사는 단호하고 명쾌했다. 이미 시내로 진학하기로 결정한 이유도 명료했고 다시는 딸아이를 불러서 면담하지 말아 달라는 대쪽 같은 당부를 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부모님과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조차 봉쇄된 우리들의 마지막 수단이 무엇일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부모님은 치킨가게를 경영하고 있었고 배달하는 직원을 별도로 두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기회였다. 붐비는 시간을 피해 늦은 저녁에 젊은 선생님의 원룸에 동료 선생님들을 모이게 했다. 그리고 치킨을 배달시켰다. 배달 온 학생의 아버지와 자연스럽게 마주할 수 있었고 맥주를 한잔하면서 학교에 대한 설명과 딸아이의 진학문제를 언급할 수 있었다.
한 번 머릿속에 새겨진 인식이 바뀌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무리 위대한 이념과 화려한 청사진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현실로 증명될 때까지는 영향력이 미미한 것이다. 우리 학교처럼 새롭게 출발하는 경우에는 흔히 말하는 ‘골든타임’이라는 것이 있다. 지역민들의 인내심은 그렇게 오래 가지 못한다. 성급한 사람들은 3년, 참을성이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5년 동안 기대감을 지속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기간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을’의 자리를 벗어나기까지는 더 많은 희생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경우 입학생의 수준이 이미 고등학교의 운명을 결정하고 있다. 그래서 우수한 학생들의 유치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중학교뿐만 아니라 인근 중학교 최상위권 학생들 한 명 한 명씩 담당 선생님을 정하여 면담을 하였다. 학생들의 시간에 맞추어 늦은 밤이든 공휴일이든 상관없이 아이들과 부모를 수없이 만났다. 학부모가 운영하는 식당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회식 장소로 이용하였다. ‘찾아가는 설명회’라는 이름으로 읍내의 햄버거가게나 피자가게를 면담 장소로 정하여 주말 내내 그곳에서 아이들과 학부모를 기다리기도 했다. 또한 통학이 가능한 거리에 위치한 성당을 방문하여 교목신부님은 미사를 집전하고 선생님들은 성당 내 만남의 집에서 입시 상담에 임했다.
이렇게 법인이 바뀐 후, 세 번에 걸친 고등학교 입시 과정에서 우리들은 ‘을’의 위치에 있었지만 열정과 의지는 결코 을이 아니었다. 2016년은 우리 고등학교 전교생 모두가 법인이 바뀐 후에 모집된 학생들로 구성된 첫 해이다. 우리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입학생들의 수준이 급격히 향상되었다. 우리 지역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은 물론 시내에서까지 상위권 학생들이 지원해 오기도 했다. 이제 우리 학교는 지난 시절의 ‘을’의 모습은 지워지고 새로운 학교로 변모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학교로 진학한 학생들이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다. 어렵게 우리 학교를 선택한 식당의 아드님과 치킨가게 따님도 학교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다. 그 이유가 학생 개개인에 대한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이 각별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사립학교는 교육과정을 통하여 건학 이념을 실현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 ‘복음화’와 ‘전인교육’을 지향하며 가톨릭에서도 많은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렇듯 아이들과 마주하는 선생님들의 삶의 모습이 건학 이념을 구현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되어 주고 있다. 우리 법인에 몸담은 선생님들은 진학 교육을 통한 경쟁력 유지와 건학 이념의 구현이라는 두 가지의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근래에 들어서 고등학교 교육의 중심이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 ‘소수의 인재들이 국가를 책임진다.’는 경제적인 논리에 근거한 엘리트 중심 교육에서 ‘창밖의 다수의 행복’에 관심을 기울이는 긍정적인 흐름이 있다. 개인의 능력보다는 협력과 배려의 자세를 소중하게 여기는 교육,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보다 경쟁을 함께 성장하는 기회로 활용할 줄 아는 교육, 나 자신의 풍족함을 추구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는 교육의 중요성이 확산되고 있다. 지금까지 ‘입시성과’라는 슈퍼 갑에 밀려 학교교육에서 ‘을’이었던 소중한 가치들이 ‘갑’이 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몇몇 학교의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기에 멀고도 더딘 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앞서가야 할 길이 이 길이 아닐까. 누군가가 ‘을’이라고 말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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