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꽃이 지나가는 자리에 마주하는 봄의 산은 짙은 초록과 옅은 초록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풍부한 색채를 우리에게 선물한다. 가을 단풍 못지않게 아름다운 봄빛이 드리워진 산과 들의 풍경을 따라 구미로 향했다. 2016년 ‘가정의 해’에 소개할 그 여섯 번째 가족은 구미 상모성당(주임 : 전재천 암브로시오 신부)에서 3대가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소박한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는 한기술(프란치스코 하비에르)·차옥순(리오바글라라) 부부의 이야기이다.
때 이른 장맛비처럼 세차게 내리던 비가 그치고 맑게 갠 5월의 어느 오후, 구미 상모성당에서 한기술·차옥순 부부를 만났다. 매일 미사참례와 더불어 본당의 청소와 쓰레기 분리수거 일을 도맡아 하다시피 하는 한기술 씨는 “2006년 은퇴한 뒤로는 더욱 자유롭게 본당 활동을 하고 있다.”며 “특별할 것도 없고 또 내세울 일도 아니고 그저 본당 신자로서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라며 쑥스러워했다. 한기술 씨 덕분에 상모성당은 항상 깨끗하고 정리정돈이 잘 되어 더 많은 신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찾아서 봉사활동을 하도록 이끌고 있다. 또 본당 하수시설도 주기적으로 청소하고 있어 물 흐름도 원할하다. 이러한 한기술 씨 옆에는 어떤 일이든 순순히 따르는 착한 아내 차옥순 씨가 있다. 아내는 언제나 남편을 응원하고 존중하면서 서로 믿고 의지하며 부부의 연을 맺은 지 올해로 42년째를 맞고 있다.

유아세례를 받고 지금까지 쉼 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차옥순 씨와 정확히 1958년 4월 5일 예수 부활 대축일 때 세례를 받았다는 한기술 씨는 신앙 안에서 2남 1녀의 자녀를 두었고, 현재는 큰아들 부부와 초등학교 6학년과 3학년인 손녀들과 함께 살고 있다. 예전과 달리 단출한 가족구성원으로 변해 가고 있는 때에 3대가 한울타리에 살면서 같은 신앙을 갖고 사는 일이 이제는 드문 일이 되어 버린 상황. 그런 중에 분가해서 살던 큰아들이 합가 의사를 밝혀 오자 한기술 씨는 내심 참 고마웠다고 했다. 그는 “아들이 결혼 후 1년 동안 따로 나가 살더니 자발적으로 다시 우리 내외와 함께 살겠다고 들어와서 무척 기뻤다.”면서 “지금처럼 아들, 며느리, 손녀들과 함께 사니 참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했다. 그렇게 아들 부부와 함께 살게 되면서 그는 한 가지 원칙을 정했다. 다름 아닌 교무금을 각각 봉헌하는 것이었다. 한기술 씨는 “비록 아들 부부와 한집에 산다고 해도 아들 부부 또한 수입이 있으니 교무금은 각각 봉헌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퇴 전 건축업계에서 일한 한기술 씨는 해외건설현장에서 근무할 때나 지방에서 근무할 때면 가장 먼저 인근 성당을 찾을 정도로 신앙생활이 열심이었다. 그런 배경에 대해 그는 “1950년대 독일인 신부님으로부터 교리를 배울 때 워낙 엄격하게 배웠기에 아직까지도 그때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면서 “저에게 신앙은 곧 삶이고 저의 모든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가톨릭에 입문하여 세례를 받기 전 찰고 때 그 당시 신부님으로부터 들었던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났느뇨?’라는 질문과 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고 회상했다. 그래서였을까, 그 뒤부터 지금까지 그를 지탱해 준 것은 그 어느 것도 아닌 하느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이었다. 그로서는 그 어느 것도 신앙을 대신할 수 없었다. 신앙만이 그의 삶의 전부가 될 만큼 신앙 안에서 살았고 신앙 안에서 자녀를 키웠다.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로서의 그는 자식이 공부를 조금 못하는 것은 넘어갈 수 있었지만 주일학교와 미사참례 등 신앙교육에는 철저했다. 물론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까닭에 이들 가족은 3대가 모여 아침기도, 저녁기도를 매일 바치고 있다. 물론 아침기도 때는 어린 손녀들이 빠질 수도 있지만 저녁기도에는 예외 없이 3대가 모두 모여 기도를 바친다. 그 기도의 힘으로 가족은 큰 욕심 없이 하느님 사랑 안에서 하루하루 감사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고 나누는 법을 배워 가고 있다. 한기술 씨는 이 모든 것이 아내의 내조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본당에서 사회복지위원회, 선종봉사회 등 여러 제단체에서 활동했던 한기술 씨는 현재 본당 내 65세 이상 형제들로 구성된 베드로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레지오마리애도 하고 있다. 인터뷰 내내 조용히 남편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아내 차옥순 씨가 한마디 거든다. “저도 오랜 세월 레지오를 했는데 지금은 직장 일 때문에 잠시 쉬고 있다.”며 “곁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남편 덕분에 저의 신심도 점점 깊어 가니 항상 고마운 마음”이라고 했다. 한기술 씨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본당을 위해, 교우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며 “나이가 들어도 누군가를 위해 작은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하느님께 감사드릴 일”이라고 했다. 끝으로 한기술 씨는 “이 세상에 와서 하느님을 알고 믿으며 자손들에게 하느님을 믿고 살도록 귀한 신앙을 물려주었으니 이보다 더 잘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두 손을 꼭 잡은 부부의 모습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 봄 산의 짙고 옅은 초록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듯, 한 지붕 아래 3대가 같은 신앙을 갖고 서로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이야말로 하느님 보시기에 얼마나 아름다울까! 이들 가족에게 은혜로운 예수 성심 성월이길 기도드린다.(*취재 도움: 상모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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