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2일 대현성당에서 특별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본당역사 30여 년 만에 한날한시에 일가족 7명이 대주교님께 견진성사와 성가정상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는 우리 가정이 그토록 염원하던 성가정을 이루던 감격스러운 날이었습니다. 견진성사란 무엇일까요? 『 가톨릭교회 교리서』 에는 견진성사를 “성령의 특별한 힘을 받아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으로서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전파하고 옹호하며, 그리스도의 이름을 용감히 고백하고 십자가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도록 해 준다.”(1303항)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가정이 성가정이 되기까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살아가며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하느님의 성전을 찾는 일이 뜸해지고, 끝내 냉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는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던 탓에 제 아내와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지 못한 채 소홀히 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생활을 하던 중, 지금은 돌아가신 모친께서 저희 부부에게 냉담을 풀 수 있도록 지극정성을 다해 성당으로 인도하여 주셨고, 저희 부부는 어머님의 사랑에 감복하여 본당 신부님을 찾아뵙고 냉담을 풀 수 있는 절차를 밟아 성당에 다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식구 수로 유명세를 타 버린 탓일까요? 성당이라는 처음 보는 환경과 분위기에 어색해하는 아이들은 진정한 하느님의 온기를 느낄 겨를도 없이 의무적으로 성당에 나가게 되고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을 부담스러워하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새로이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는 탓에 아이들의 마음까지 헤아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우리 옆에는 늘 버팀목이 되어 준 반려자 천순자(도니미카)가 있었습니다. 어렵게 냉담을 풀고 성당을 찾게 된 가정을 지키고자 아내는 아이들이 반감이 생기지 않도록 쉽게 성경말씀을 전해 주고, 끼니마다 식사기도를 함께하여 집에서나 밖에서나 자연스럽게 천주교인인 것을 깨달아 하느님이 함께하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내는 아이들을 위한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점차 이런 모습들이 쌓이고 쌓여 습관이 되고 생활화되어 아이들도 성당에 마음을 열게 되고 자신에 연령에 맞게 중등부, 고등부, 청년부에 자발적으로 참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교리교사까지 하겠다며 망설이지 않고 봉사를 행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의무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신앙심을 자발적으로 갖고 굳게 다질 수 있도록 아이들과 나를 믿고 따라 준 아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성가정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렇게 성당을 다니며, 아이들이 첫 영성체를 받을 때, 저의 가슴이 얼마나 뛰었는지, 마치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 기분은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하늘을 향해 ‘주님! 감사하나이다. 주님! 감사하나이다. 주님이 하신 일입니다.’라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이렇게 많은 시련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으로 한 가정이 주님의 성전에 들게 되었고, 앞으로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성가정이 되도록 책임감을 갖고 부단히 노력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끝까지 믿음을 갖고 함께해 준 아내에게 고맙고, 잘 따라 준 아이들에게도 너무나 감사합니다. 저희 가족이 다시 찾은 성당은 언제나 따스한 모친의 품과 같았습니다. 만약 모친이 살아 계셨다면 저희가 성가정이 된 모습을 누구보다 기쁘게 보시고 자랑스러워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진정한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만큼 베풀 줄 아는 성가정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견진성사의 은혜로 믿음과 희망, 사랑으로 무장된 신앙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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