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공동체 복음나누기 자료제공 : 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053) 250-3082 cafe. daum.net/biap
* 매주 하는 복음 나누기 7단계
(1) 주님을 초대한다.
“기도로 이 자리에 예수님을 초대해 주십시오.”
(2) 말씀을 듣는다.
“ ― 복음 ― 장을 펴 주십시오. 어느 분이 ― 절부터 ― 절까지 읽어 주십시오.”
(다 읽고 난 후 잠시 침묵한다.) “다른 분이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 주십시오.”
(3) 복음말씀을 마음에 새긴다.
“각자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짧은 구절을 선택하여 큰 소리로, 기도하듯이 세 번씩 읽어 주십시오. 읽는 사이에는 잠시 침묵을 지켜 주십시오.” “어느 분이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 주십시오.”
(4) 침묵 중에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
“3분 동안 침묵 속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듣도록 합시다.”
(5) 마음 안에 들려온 말씀을 나눈다.
“이제 각자 주님께로부터 들려온 말씀을 함께 나눕시다. 왜 그 말씀이 내 마음에 와 닿았는지, 그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6) 모임에서 해야 할 활동에 대하여 토의한다.
“지난 번 모임에서 결정했던 사항을 어떻게 실천했는지, 그 결과와 개선해야 할 사항에 대해 이야기합시다.” “이번에는 어떤 활동을 하는 것이 좋을까요?” “우리 주위에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7) 자발적으로 함께 기도한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자유롭게 기도합시다.”
6월 5일 연중 제10주일 : 루카 7,11-17.
11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고을에 가셨다. 제자들과 많은 군중도 그분과 함께 갔다.
12 예수님께서 그 고을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마침 사람들이 죽은 이를 메고 나오는데, 그는 외아들이고 그 어머니는 과부였다. 고을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그 과부와 함께 가고 있었다.
13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 하고 이르시고는,
14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15 그러자 죽은 이가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16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며,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 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17 예수님의 이 이야기가 온 유다와 그 둘레 온 지방에 퍼져 나갔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7장 11-17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 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 가신 곳은 어디이며, 그분과 함께 간 사람들은 누구입니까?(11절)
- 예수님께서 고을 성문 가까이 이르셨을 때, 마침 누가 나오고 있었습니까?(12절)
- 예수님께서는 과부를 보시고 어떠한 마음이 드셨으며, 어떤 말씀을 건네십니까?(13절)
- 관을 메고 가던 이들이 왜 멈추어 섰습니까?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젊은이에게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14절)
- 사람들은 왜 두려움에 사로잡혔으며, 어떤 말로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까?(15-16절)
- 17절을 함께 낭독합시다.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 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예수님께서는 한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말씀자체이신 분께서 당신 목숨을 내어 놓으시어 우리를 살려주신 것처럼, 우리도 말과 생활 안에서 서로에게 생명을 주는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62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연중 제10주일 복음묵상 김동현(요셉)|지산성당 보좌신부
저의 신학교 석사논문의 주제는 ‘인간의 이타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왜 사람은 다른 이들을 도와줄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읽게 된 《공감의 시대》라는 책에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공감적이며 이타성은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공감적 배려의 가장 성숙한 표현’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어린아이는 쉽게 공감합니다. 신생아들이 모여 있는 방에서 한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그 소리를 들은 다른 아이들도 함께 웁니다. 그러다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점점 공감 능력을 잃어버립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서로 사랑하여라.”는 예수님의 계명을 본받아 사랑하면서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그 사랑이 참된 사랑이고, 이기적이 아닌 이타적인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이와 공감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우리에게 ‘공감’의 모범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나인이라는 고을로 들어가십니다. 그 와중에 죽은 이를 메고 가는 장례행렬과 마주칩니다. 죽은 이는 젊은이였고 외아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어머니는 과부였습니다. 과부에게 외아들이란 어떤 존재일까요? 아마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모든 것을 잃어버린 과부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의 표정, 행동에 그 슬픔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과부를 처음 보았습니다.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잘 아는 사람, 내 곁에 있는 사람을 돕는 것은 수월합니다. 내 마음도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를 돕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요? 시내의 길거리를 걸어가다 보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많이 만납니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면서는 선뜻 마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의 마음이 속삭입니다. ‘에이~ 이 돈으로 저 사람들을 도와줘도 올바로 사용되지 않을 게 뻔해. 차라리 다른 데 기부하는 것이 낫지.’ 속으로만 생각하고 나를 위해 돈을 사용합니다.
예수님께서 백인대장의 아들이나 야이로의 딸, 라자로를 살리실 때는 그 가족들의 간곡한 부탁을 들으셨습니다. 반면에 오늘 과부의 아들을 살려 주실 때는 그 과부의 마음만을 보셨습니다. 과부가 부탁하기도 전에 이미 예수님은 그의 아들을 살려 주시기로 하신 것이지요. 우리는 나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 사람들의 삶은 그냥 무심코 지나칠 때가 많습니다. ‘굳이 나에게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번거로운 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 ‘다른 사람이 도와줄 거야.’ 하며 스스로 합리화시킵니다.
예수님은 나인에서 그 과부를 처음 보았고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지만 과부의 상황만을 보시고 그에게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과부의 마음을 읽은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내가 힘들 때 누군가 내 마음을 헤아려 주고 알아서 위로해 주기를 바랄 때가 있습니다. 내가 남에게서 공감의 마음을 바라기에 앞서 내가 먼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공감하는 마음을 키워 보는 것은 어떨까요? ‘공감하기’는 우리가 서로를 쉽게 이해하고 한 번 더 인내하며 내가 가진 사랑을 잘 내어 줄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6월은 예수 성심 성월입니다.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는 예수님의 성심에 기대며, 우리도 그 따스한 마음을 배워 다른 이를 관심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진심으로 어루만져 주는 한 주가 되었으면 합니다.
6월 12일 연중 제11주일 : 루카 7,36-50.
36 리사이 가운데 어떤 이가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예수님을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시어 식탁에 앉으셨다.
37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38 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39 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40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시몬이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하였다.
41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42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44 그리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45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46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47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48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49 그러자 식탁에 함께 앉아 있던 이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 하고 말하였다.
5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7장 36-50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 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누가, 왜, 예수님을 초청하였습니까?(36절)
- 예수님께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실 때 누가 찾아왔으며, 그 사람은 어떻게 행동을 합니까?(37-38절)
-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속으로 무슨 말을 합니까?(39절)
- 예수님께서 시몬과 나누신 말씀은 무엇입니까?(40-43절)
- 예수님께서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신 말씀은 무엇입니까?(44-47절)
- 예수님과 식탁에 함께 앉아 있던 이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하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48-49절)
-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신 말씀은 무엇입니까?(50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 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우리는 이웃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나의 잣대로 재단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저 사람은 이러이러한 사람이야.’라고 고정시켜 버리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봅시다. 또 예수님을 닮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48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연중 제11주일 복음묵상 김범식(아브라함)|성서성당 보좌신부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보신다.’
성당에서 학생들, 청년들과 접촉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은 터라 적잖게 그들의 생활에 대해 듣게 됩니다. 직접적으로 면담을 신청하는 경우도 있고, 그저 일상의 얘기를 하다 자연스럽게 고민거리를 나누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취직을 준비하는 사람도, 일을 하고 있는 사람도 저마다 큰 고충 하나씩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신입사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집안도 신실하고 평소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던 친구였는데, 입사 후 감당하기 힘든 많은 업무량과 예전부터 성당에서 봉사하던 일들이 겹쳐지자 심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매우 힘들어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기도생활은 잘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더니, 주저하며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평소 하느님은 생각하고 있는지?”, “마지막으로 묵주를 잡은 건 언제였는지?” 연이어 물어보았지만 역시 명확한 답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걱정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무엇보다 대화를 마치고 든 생각은 미안함이었습니다. 성당에 나오는 것이 싫어질 정도로 힘겹고 바쁜 일들에 치이는 이들에게 신앙생활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 도움을 주지 못했음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경우 여러 가지 일과 생각들로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신앙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도 하느님께 대한 마음을 잊고 지내게 됩니다. 심지어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할 때도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 때 상황은 더욱 나빠질 뿐입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는 의무와 책임만이 남고 괴로운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께 대한 마음이 자리하지 않는 곳에서 애초에 신앙은 존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 속 예수님께서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채권자와 채무자는 돈이 얽혀 있는 관계입니다. 금전적인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매우 예민하고 중대하지요. 그래서 법적인 의무와 규약에 따라서만 움직인다면 둘은 불편하고 괴로운 관계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에 대한 마음이 없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비유에 등장하는 채권자는 자신에게 빚진 두 명 모두에게 마음을 줍니다. 호의와 사랑을 갖고 행동한 것입니다. 그 마음에 따라 빚을 탕감 받은 이 역시 자신의 마음을 상대에게 내어 줍니다. 서로 마음을 나누는 관계를 이룬 것입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본질은 하느님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만나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율법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 믿음을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믿음은 마음이 없는 따름과 달리 주님께 대한 애정으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1독서의 다윗은 그러한 주님께 대한 마음을 잘 보여줍니다. 큰 잘못을 저지르고 그에 따른 결과도 감당해야 했지만 그는 그동안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자비와 사랑을 기억해 내고 다시 주님께 대한 신의와 사랑으로 의로움의 길에 들어섭니다.
오늘날 우리는 정말 바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런 생활 속에서도 주님께 대한 마음만은 간직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 마음을 잃는 순간 모든 일들은 참으로 허망하고 힘겨운 짐이 될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 마음을 두고 모든 일에 임하는 것, 사실 그것이 힘겨운 상황을 감내하고 이겨 낼 수 있게 하는 신앙의 힘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6월 19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 마태 18,19ㄴ-22.
19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오복음 18장 19ㄴ-22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 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무엇입니까?(19-20절)
-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무엇을 묻습니까?(21절)
-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신 말씀을 함께 낭독합시다.(22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 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 하십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는 함께합니다. 기도와 희생도 함께합니다. 하느님께 나는 무엇을 간절하게 청하고 무엇을 노력하고 있는지, 각자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함께할 수 있는 기도와 희생을 한 가지씩 정해서 실천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456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복음묵상 이준영(리노)|죽도성당 보좌신부
찬미예수님! 오늘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입니다. 곧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기원하는 날입니다. 우리 민족은 1945년 남과 북으로 분단된 이후 70년이 넘도록 갈라선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그동안 남과 북의 지리적, 정치적, 이념적 분단은 많은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고통의 현실을 안겨 주었습니다. 특히 가족의 생사를 알 수 없고, 살아 있어도 만날 수 없는 아픔은 분단이 우리 민족에게 주는 가장 큰 고통입니다. 2008년 8월에 있었던 남북이산가족 만남의 장에서 오영재 시인은 그 아픔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늙지 마시라
늙지 마시라
더 늙지 마시라, 어머니여
세월아, 가지 말라
통일되어
우리 만나는 그날까지도
이날까지 늙으신 것만도
이 가슴이 아픈데
세월아, 섰거라
통일되어
우리 만나는 그날까지라도
너 기어이 가야만 한다면
어머니 앞으로 흐르는 세월을
나에게 다오
내 어머니 몫까지
한 해에 두 살씩 먹으리
검은빛 한 오리 없이
내 백발 서둘러 온대도
어린 날의 그때처럼
어머니 품에 얼굴을 묻을 수 있다면
그 다음에
그 다음엔 내 죽어도 유한이 없으리니
어머니 찾아가는 통일의 그 길에선
가시밭에 피 흘려도 아프지 않으리
어머니여
더 늙지 마시라
세월아 가지 말라
통일되어
우리 서로 만나는 그날까지라도
분단의 상황이 지속되면서 안타깝게도 남과 북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의식이 약해지고 있지만 남과 북은 분명 같은 뿌리를 지닌 하나의 민족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통일을 통해 갈라진 상황을 극복하고 형제적 관계를 회복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간혹 ‘남과 북의 통일은 정치인들이 이루어야 하는 과제가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정치적 활동이 외형적으로 중요하겠지만 민족의 분열과 갈등을 삶의 자리에서 극복하려는 신앙인의 예언자적 소명도 매우 중요합니다.
십자가 죽음을 통해 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켜 주신 예수님께서는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하고,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소명으로 주셨습니다.
과거 우리나라에 앞서 통일을 경험한 독일의 경우, 서독 교회는 독일의 통일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마르 9,29)는 성경 말씀대로 끊임없는 기도운동을 펼쳐 나갔고 동독에 “특별한 공동체적 관계”를 유지하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서독 교회의 기도와 지원은 독일 통일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독일의 경우를 모범 삼아 우리도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함께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평화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평화통일을 위한 어려움을 모두 없애 주시고 남북한이 참다운 형제적 사랑을 회복해 나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합시다.
6월 26일 연중 제13주일 : 루카 9,51-62.
51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52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53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54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55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56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57 그들이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59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0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61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9장 51-62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 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신 것은 언제입니까?(51절)
- 예수님께서는 당신 앞에 심부름꾼들을 왜 보내셨으며, 그들은 어디로 들어갑니까?(52절)
- 사마리아인들은 왜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습니까?(53절)
- 예수님께서 돌아서서 야고보와 요한 제자를 꾸짖으신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54-55절)
- 그리하여 그들은 어디로 갑니까?(56절)
- 그들이 길을 가는데 예수님을 만난 세 사람은(어떤 사람, 다른 사람, 또 다른 사람) 예수님과 어떤 대화를 나눕니까?(57-62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 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들은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의 뜻, 감정, 생활을 좇아 살기보다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400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연중 제13주일 복음묵상 조동혁(아우구스티노)|장량성당 보좌신부
제가 참 좋아하는 책들 중에 크로닌이 지은 《천국의 열쇠》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주인공인 프랜치스 치셤 신부의 삶을 그린 소설입니다. 치셤 신부의 생애 자체가 워낙 감동적이기도 하지만 신앙인의 참된 모습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었고, 그 삶을 살아갈 희망을 주었기에 제겐 너무나 소중한 책이라 생각돼 늘 간직하고 있습니다.
치셤 신부는 불의의 사고로 부모를 잃게 되었고, 선배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친구 신학생과 달리 신학교에서도 잘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 했습니다. 또 힘들게 사제가 되어서도 이상주의적인 태도로 마찰을 일으키고, 출세에는 관심조차 없어 중국의 오지로 발령을 받아 그곳에서 무려 35년이나 지내게 되었지요. 당시 중국은 가톨릭에 대해서 무척 폐쇄적이었는데, 아무런 기반조차 없는 미지의 땅에서 그는 주님의 일을 하나하나 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는 비록 많은 사람들을 신자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를 만난 사람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누구보다 깊게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그 모습이 참된 사제의 삶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사제의 삶뿐만 아니라 신앙인의 삶도 그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하느님을 위한 선택 앞에서 고민하는 제게, 전적인 포기와 투신을 통해 얻게 될 더 큰 자유와 사랑이야말로 더욱 더 자신을 이끌어 가는 힘이 되어 줄 것임을 이 책은 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삶이야말로 신앙인이 살아야 할, 또 살아 내야만 할 삶이 아닌가하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야고보와 요한을 꾸짖으십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앙심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꾸짖으시며 다른 길로 돌아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사람을 향한 그분의 지극한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당신을 만난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겠다는 이들에게 안정된 삶을 보장해 주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분은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고, 오직 가난과 전적인 자유를 복음의 여장으로 삼고서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거나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겠다며 부르심에 조건을 붙이는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는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함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래서인지 제게는 복음 말미에 나오는 말씀이 더더욱 간절한 가르침으로 다가옵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복음을 선포하라는 부르심이 얼마나 절박한 것이었기에 그분께서는 인간적인 요구마저 포기하라고 하셨을까요. 이 한마디가 언제부터인가 그토록 가슴에서 떠나지 않았던 까닭은, 끝끝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자 목숨마저 내던지신 예수님의 삶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르신 후, 제자들이 선포한 하느님의 나라가 그들에게는 더없는 자유와 포기의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치셤 신부의 삶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 세상에서 주님과 다시 만날 날을 희망하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해야 할 사명은 우리에게 삶으로 주어졌습니다. 세상의 온갖 근심으로 깊게 잠든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삶으로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방황하고 갈등하는 우리에게, 우리가 행할 삶이 하느님 나라가 되도록 내적인 포기와 진정한 자유로움으로 단단히 다져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을 것이 있습니다. 삶에 찌들 대로 찌들어서 스스로에게조차 버림받은 가난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가난한 자와 슬퍼하는 자가 진정으로 행복하다고 뜨겁게 외치던 예수님의, 어찌 보면 서글프고 외로워 보이지만 한없이 당당하기만 한 모습 말입니다. 그 모습을 한 단어로 줄이면 ‘삶’이 됩니다. 바로 그 모습이 우리에게 삶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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