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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기(氣)
교회 안에서 성령이 망각되었다는 표지


조현권(스테파노)|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

4. 교회의 성직자 중심화

* 신심운동에 대한 교회조직의 적대시

중세기에 교회 내의 신심운동과 수도생활, 이 두 가지 생활양식은 똑같이 취급되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교회조직이 신심운동을 수도원에서 하는 운동으로 이해했고, 수도원 밖에서의 신심운동은 정통을 떠난 분파, 곧 사이비라고 여겼다는 말이다. 신심운동은 수도원생활 아니면 사이비라는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으로, 영성운동은 수도생활과 동일한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중세교회의 계급의식으로 갖게 된 확신에 따르면 하느님께 봉사해야 할 종교적 생활은 오로지 굳건한 수도자신분의 조직들 안에서 영위되어야 했다. 이러한 생활만이 규칙과 규율로써 종교인의 생활과 행동을 모든 타락으로부터 보호하고 동시에 교회의 전체 질서 안으로 편입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로써 이 질서들에 구속되지 않고 종속되지 않는 모든 신심생활과 수도원생활의 양식들을 따르지 않는 신심운동들은 모두 교회와 참된 종교에서 이탈하여 사이비가 되고, 껍데기뿐인 종교가 되며 이단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중세기의 모든 신심운동들은 ‘vita religiosa(수도생활)’의 교회적인 양식 안에, 즉 수도회에 들 것인지, 아니면 교회적인 질서에서 풀려나 그로써 교회로부터 결국 갈라지든지, 즉 사이비가 되거나 이단이 되든지 하는 기로에 서있었다.”1)

 

중세기의 수많은 신심운동을 수도원 내에서가 아니면 사이비라는 식으로 내리는 이 이원법적인 판단은 정당한 것이었을까? 다른 많은 건전한 운동들을 처음부터 제외시켜 버리지나 않았을까? 교회는 과연 신심운동들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고, 그들을 이단으로 심판해야만 했으며, 마침내 그 추종자들을 파문으로 벌해야만 했을까? 그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 잘 알려진 종교재판과 마녀재판들인데, 이런 재판을 행함에 있어서 교회직무수행자들은 마치 그들에게만 성령이 주어져있고, 그들만이 성령의 은사를 받은 것처럼 흔히 행동한 것이 아닐까? 이러한 점에서 그들은 성령에 반대해서 행동하였고, 그래서 “중세기의 교회는 성령을 길들이고 제도 속에 묶어두었다.”는 오늘날의 공공연한 비판은 정당해 보인다.

 

“교회조직이 성령을 독재했다, 곧 길들이고 제도 속에 묶어두었다.” - 이러한 주장에는 제국으로서의 교회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교회의 성직자 중심화에 그 이유가 있다. 성직자들이 누린 ‘교육에 대한 독점’과 ‘신분에 대한 특전’이 중세기적인 ‘교권주의(敎權主義, Klerikalismus)’의 배경이 되었다. 이와 함께 교회조직은 교황을 우두머리로 하는 교회계급적인 조직이 되고, 이 교회계급적인 조직은 바로 성직자들을 의미하게 되었다. “교황이 이 체제구조의 추축이 되고 서방교회가 소위 로마교회 안에서 부각되게 되었으니 (가톨릭교회 = 로마교회), 이제 중앙집중적인 교황조직이 고대교회의 주교적·종교회의적인 구조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2)

 

로마적임 혹은 로마적인 것이 거의 최종적으로 교회의 한결같은 시금석이 된다. “교회는 단지 (아직 토마스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을) 신앙고백과 성사 안에서의 공동체로써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합법적인 직무와 특히 로마주교 아래 생활하는 공동체인가로써 결정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신의 법률적인 체제와 로마적임으로 정의된다. … 교회는 로마 국민의 모임처럼, 프랑크 왕국이나 베네치아 공화국처럼 보일 수 있고 만져질 수 있게 된 것이다.”3)

  

지난 호까지 “교회 안에서 성령이 망각되었다는 표지”라는 큰 주제로 1.황제와 주인 혹은 통치자(Imperatrix et Domina)로서의 교회, 2.성령이 망각된 결과로서의 1054년의 동방이교(東方離敎), 3.필리오케(Filioque) 논쟁에 대해서 살펴보았고, 이번 호에서는 4.교회의 성직자 중심화 중에서 ‘교회조직이 신심운동을 어떻게 적대시하였는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다음 호에서는 계속해서 ‘교회의 성직자 중심화가 평신도의 위치와 전례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끝으로 예수회가 낳은 금세기의 위대한 교의신학자 칼 라너(Karl Rahner, 1904 -1984)가 지은 ‘성령께 대한 기도’를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