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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가르쳐 주는 교리
‘몸’ 이해하기


전재현(베네딕도)|신부 . 대구대교구 사목국 청소년담당

마음열기

제가 일하고 있는 사무실은 전경이 참 좋은 곳입니다. 한쪽 창으로는 성모당의 짙푸른 녹음이 제 눈을 시원하게 해 주는가 하면, 반대쪽 창에는 신학교 운동장이 한눈에 들어와 점심식사 시간이 지나면 운동하러 나온 신학생들의 활기찬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도시 한 가운데 있으면서도 빌딩 숲 속에 갇혀있지 않고, 언제나 기도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렇게 좋은 일터는 흔치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한번은 신학생들이 축구하는 모습을 내려다 보다 일을 접어두고 운동장으로 뛰어간 적이 있습니다. 그저 신학생 시절을 생각하며 신학생들 틈에 끼여 공을 차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마음과는 달리 채 10분을 뛰기도 전에 제 호흡은 가쁠 대로 가빠져 도저히 더 이상 뛸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몸이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성모당에서는 성가가 울려 퍼지고 열려진 창문으로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오니 쏟아져 오는 잠을 뿌리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제가 중·고등학생이었을 때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자주 있었습니다. 짧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축구나 농구 같은 격렬한 운동을 하고 나면 5교시는 거의 고문에 가까운 시간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특히 고등부 가톨릭 학생회(Cell)의 배구 대회가 임박한 시기에는 점심 시간뿐 아니라, 방과 후에도 해가 떨어질 때까지 연습을 해야 했기 때문에 집에 돌아와 기력을 되찾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물론 그런 경험을 통해 소위 ‘깡’이란 것도 길러지고 대인관계도 넓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학교 성적에 영향이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나른한 5교시는 학생들에게만 힘든 시간은 아니라고 합니다. 어느 남자 중학교 교목실에서 사목한 경험이 있는 선배 신부님이 한번은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야! 5교시 대 바래이! 교실에 들어서만 캐캐∼한 냄새가 진동을 하는 기 직인다 지기. 땀 냄새 풀풀 나지, 교실 안은 뜨끈뜨끈하지. 아∼들 고개는 팍팍 떨어지지. 진짜 수업할 맛 안 나는기라!”

 

이러한 교실 분위기에서는 학생도 공부하는 것이 어렵고 교사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어렵습니다. 아이들의 성적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지적인 것에만 큰 비중을 둘 것이 아니라, 이처럼 공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부분에 대한 인식과 안내도 필요하리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특별히 몸 관리에 있어서 수업에 방해가 될 정도로 운동을 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공부하느라 몸을 망치는 학생도 있습니다. 많은 고3 학생들이 운동부족으로 인한 요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을 보면말입니다. 그런가 하면 아이들의 실력향상을 방해하는 또 하나의 요소로 인터넷을 들 수 있습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많은 학생들이 음란물에 쉽게 빠져들기 때문입니다. 어느 통계에 의하면 청소년 남자아이의 경우, 성이라는 주제를 1시간에 6회 이상 생각한다고 합니다. 인간적인 본능과 오늘날의 인터넷 문화가 맞물려서 아이들이 몸을 바르게 지키고, 실력을 향상시키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하기

아이들은 언제든 뛰어 놀고 싶어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하루 일과 중에 자신이 성취해야 할 부분에 대한 이해와 체력관리가 동시에 이루어진다면 아이들의 실력향상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아이들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몸을 잘 관리하고 가꾸어, 실력을 향상하고 성숙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인터넷의 경우와 같이 선별하여 취할 줄 아는 윤리성이 확립되어야 합니다. 건강한 몸을 유지함과 더불어 몸을 깨끗하고 바르게 할 수 있는 윤리성을 가질 때 아이들은 실력향상과 자기 성숙을 위한 든든한 기초를 다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많은 영성 작가들이 육체는 그저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을 전체로 보지 못한 편협한 생각입니다. 우리는 육체를 자신의 소중한 일부로 여기고 제대로 통제해 나갈 때 더욱 더 성숙한 자아를 형성해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서의 가르침을 살펴 보겠습니다.

 

“건강과 체력은 온 세상의 황금보다 낫고, 건장한 몸은 큰 재산보다 낫다.”(집회 30,15) 

“그러므로 결국 죽어 버릴 육체의 욕망에 굴복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죄의 지배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로마 6,12)

“몸은 음행을 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몸을 돌보아 주시는 분이십니다.”(1고린 6,13)

“나는 내 몸을 사정없이 단련하여 언제나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은 내가 남들에게는 이기자고 외쳐 놓고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1고린 9,27)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온전히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빕니다. 또 여러분의 심령과 영혼과 육체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완전하고 흠없게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1데살 5,23)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성령이 계시는 성전이라는 것을 모르십니까?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의 몸을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기 몸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 내십시오.”(1고린 6,19-20) 

 

육신을 삼구(三仇 : 악의 세력, 세상, 육신) 중의 하나로서 악의 소굴로 강조했던 과거를 감안할 때, 오늘날 육신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서도 위의 성서구절들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서는 사람의 몸이 하느님의 선물로 주어졌으며, 육신의 완성을 위해서는 그것을 억압하여 위축시키거나, 반대로 방임하여 무질서하게 해서도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더 나아가 성령의 궁전으로서 거룩하게 지켜질 때 육체의 영광이 드러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육체적인 모든 노고, 기쁨, 환희를 하느님의 뜻대로 잘 인도할 때 ‘하느님을 닮은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완성해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의 가장 완전한 표현이 바로 “강생하신 말씀”, 곧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본받고 그를 따를 때, 육체의 영광이 가장 완전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고 육신의 보람을 찾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실천하기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죽더라도 주님을 위해서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도 주님의 것이고 죽어도 주님의 것입니다.”(로마 14, 7-8)

 

육체를 포함한 생명은 사람에게 ‘마음대로 하도록 주어진 것이 아니고 잘 관리하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공부를 잘 하기 위해서는 당장 하고 싶지만 참아야하는 것이 있듯이, 우리의 몸이 원하지만 제어할 수 있을 때 성령의 궁전으로서 육체의 영광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아이들이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자신을 가꾸어 나간다면 실력향상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 성장과 성숙을 위한 일에 민첩하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몸을 유지하면서 아울러 몸을 깨끗하고 바르게 유지할 수 있는 윤리성을 확립할 수 있어야 하지만, 아직 성장 과정에 있는 아이들에게 그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부모의 윤리성이 우선적으로 전제되어야 하고, 더 실제적으로는 컴퓨터를 활용할 줄 모르는 부모가 이 시대의 아이들을 바르게 인도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부모는 우리의 몸이 ‘성령의 궁전’임을 아이에게 자주 상기시키고, 매 주일 영성체를 빠지지 말아야 함을 강조해야 하겠습니다. 물론 매 주일 영성체를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죄 지은 후 곧 바로 고해성사를 받아야 함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예수께서는 휘장을 뚫고 새로운 살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 그 휘장은 곧 그분의 육체입니다.”(히브 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