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은 사회의 기본 세포로서 곧 작은 사회요 작은 교회인 것이다. 오늘의 가정이 내일의 사회와 교회를 결정하기에 사회와 교회의 미래는 가정에 달려 있다. 한마디로 가정이 살아야 사회가 살고 교회가 산다.
Ⅰ. 한국 가정의 모습
1. 사회 변화에 따른 가정의 변화
오늘날 한국 가정의 주 관심사는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나게 되었다. 경제적 윤택과 입신출세를 위한 지나친 교육열이 그것이다. 많은 부모가 가정생활을 우선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경제생활을 우선으로 생각한다.
“가정 중심적인 사고방식은 구시대적인 것으로 착각되어 가족 상호간의 만남은 적어지게 되었고, 따라서 대화의 부족으로 인한 가정 부재 시대를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가정에서 심신의 안식을 얻지 못하는 많은 이들이 부정행위나 과음 및 도박, 가출 등을 유발하여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전통적 가정에서는 부모에 대해 효도하는 것이 우선이었으며 자녀를 인간답게 교육하는 것이 그 목표였으나, 가정 제도의 가치관 변질 영향으로 많은 노인들은 안주할 가정을 잃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가정 밖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1986년 한국 주교단 사목교서 <성체와 가정> 8항)
가정교육이 뒷전으로 밀려난 채 학교 교육만 중시되는 것에서도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가정교육은 모든 교육의 기초이기 때문에, 이 기초가 잘 안되거나 잘못되면 그 다음 모든 교육과 인격적인 면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더 나아가 자녀의 학교 교육에 대한 부모의 지나친 기대와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치는 ‘많은’ 자녀들은 좌절하게 마련이고, 우울한 생활을 하게 되어 마침내 비행(가출, 마약, 청소년 범죄)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런데 가톨릭 신자 가정마저도 한국 가정들의 잘못된 경향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나타난다.
자신의 역할에 대하여 확신을 잃고 혼란을 느끼거나 부부 생활과 가정생활의 궁극적 의미와 가치에 대하여 잘 모르거나 무지 상태에 있으며, 더 나아가 각종 불의한 상황 때문에 기본 권리의 실현을 방해받고 있는 가정들이 늘어남으로써 적지 않은 가정들이 파탄의 위기에 처해 있다. 그 결과 적지 않은 이들에게 우리 가정은 이미 심신이 안식을 누리고 재충전할 수 있는 스위트 홈(sweet home)이 아니라, 가정이란 가족 프로그램도 없는 따분하고 재미없는 곳이요, 더 나아가 야단이나 맞는(어른의 경우 잔소리나 듣는) 지겨운 곳으로, 잠자고 밥 먹는 하숙집 또는 여관과도 같은 곳이 되어가고 있거나 아예 가정부재의 현상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2. 가정 문제의 내용들
윤리 도덕적이며 정신적인 것보다는 물질적인 것에 치중하는 우리 문화 사조는 점점 개인주의적 내지는 이기주의적 사회로 변하게 되었고, 결국은 인간성 상실과 더불어 사랑과 생명 경시 풍조를 확산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 가족들의 이기주의, 물질주의, 이혼, 인공 피임과 불임 수술, 낙태, 가정 내 폭력 등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러한 풍조 저변에는 왜곡된 자유 관념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릇된 인공 피임은 부부의 참사랑을 고갈시킬 뿐 아니라, 성 윤리의 타락과 낙태를 부추기고 있다.
모든 사회 문제의 근본이라 할 생명의 경시 풍조에서 자행되는 이러한 태아의 생명권 침해는 곧바로 가정의 정체성 상실로 이어진다. 또한 여성을 경시하는 사고방식이나 그릇된 성문화는 남아 선호에 의한 여아 낙태, 인신 매매 등 여성을 인격체로 보지 않는 온갖 형태의 인간 존엄성 파괴와 인권 침해를 낳고 있는 실정이다.
가정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폭력의 하나이면서도 잘 드러나지 않는 범죄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으며, 지나친 가부장 제도와 우월주의로 인한 불임 여성, 별거 중이거나 이혼한 여성, 미혼모들의 남다른 애로와 고통 역시 점차 늘어나고 있다. 더욱이 핵가족화로 소외되는 노인들의 수효가 증가하는가 하면, 어린이들에 대한 성폭력 또한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는 반생명적이요, 반가정적인 사회 요인들이 곳곳에 많이 산재해 있다. 예를 들면 젊은이들의 결혼기피증, 자유연애, 변칙적인 결혼, 정부의 낙태 권장 정책과 경제 지원, 밤늦게까지 일하는 우리 나라의 직장 풍토, 여성의 사회 진출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잘못된 여성 해방 운동 등이 그런 것들이라고 하겠다.
3. 반가정적 사목 활동
사회적인 요인들은 그렇다고 치지만, 교회의 사목 활동에도 역시 반가정적인 면들이 많이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가정에 대한 교회의 사목 활동은 신자들의 가정을 도와 가정 기도를 잘 바치고, 가족이 함께 복지 시설을 방문하는 등의 봉사 활동과 사회 활동을 잘할 수 있도록 하는, 한마디로 가정마다 성가정을 이루고 가정 교회를 이루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사목은 많은 경우 신자들을 가정으로부터 성당으로 불러모으는 데 주력해 왔으며, 교회 봉사자들에게는 중복 봉사를 시킴으로써 가정에 불충케 하였고, 열심하다는 신자들에게는 여러 단체에 가입하도록 하여 가정에 등한시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주일 미사도 어린이 미사, 중·고등학생 미사, 청년 미사, 어른 미사 등으로 나누어져 미사 참례 때마저 가족이 흩어지게 되었다. 그밖에 가정 방문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 등은 신자 가정을 돌보는 사목 활동과 제도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 준다.
Ⅱ.변하지 않는 가정의 중요성
현대 사회에서 가정이 위기를 맞고 있고, 가정 문제들이 감당하기 두려울 정도로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정을 포기할 수도, 간과할 수도 없는 일이다. 가정의 중요성은 오늘도 그리고 세말까지도 변함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황 바오로 6세는 “가정은 교회처럼 복음이 전달되는 곳이요 거기서 복음이 빛나는 곳이기도 하다.”라고 말씀하셨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복음화의 장래는 대체로 가정 교회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셨다.(가정 공동체 52항) 가정 교회가 이행하는 복음화의 직무는(봉사는) ‘본질적으로 하나의 교회적 봉사’로서 다른 무엇으로 대치될 수 없는 것이라고 「가정 공동체」는 말한다.(가정 공동체 53항)
가정은 복음화의 주체요 객체로서 비신자 가족이나 냉담 가족의 복음화를 위해 중요하지만, 특히 어린이들의 신앙생활에 있어 그들의 신앙이 싹트고 자라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가족 복음화는 물론이고 친척과 동료들 그리고 이웃 복음화를 위해서도 성가정을 이룬 가정의 역할은 오늘날 매우 중요하다.
이처럼 가정은 교회와 신앙생활에서 중요시하는 사랑과 생명의 원천이요, 교회의 복음화 주체요 객체로서 포기해서도, 포기할 수도 없는 중요성을 오늘도, 내일도 갖는다.
-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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