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nedicamus domino!(주님을 찬미합시다.)”
“Deo gratias!(하느님 감사합니다.)”
침묵을 깨고 들려오는 저 소리, 오늘도 베드로관(관장 : 이호봉 베드로 신부)에서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우리 소신학생 형제들은 일어날 때부터 주님을 생각하기 위해 이렇게 하루를 연다. 이불을 개고,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일어나자마자 정신없이 경당으로 발길을 옮긴다. 기도시간 전까지 우리 형제들은 각자 성체조배를 하거나 묵상을 한다. 신학교에 합격한 나는 요즈음 나의 성소에 대해서 묵상하고 있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하느님께 감사할 뿐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나는 성당에 나오게 되었다. 마음의 상처가 너무 깊어서 사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에 기대야 할지도 몰랐다. 그런데 가장 친한 친구 녀석이 성당에 가자고 끌고 가는 것이 아닌가? 어쨌든 그 친구와 성당에 간 뒤 나는 신부님으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고 하느님을 알게 되면서 세례를 받았다. 신부님이 되고 싶다고 얼핏 생각한 것도 그 즈음이었지 싶다. 그 뒤에 봉사활동을 다니고, 성당에서 나오는 글들을 읽으면서 소외 받고,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신부님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분들이 걸어가시는 그 길, 한 분을 바라보며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저 사랑의 길이 얼마나 가치 있고 보람찬 일인가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나도 그 길을 걷겠다고 생각했다. 그때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이었을 거다. 어렴풋이 사제가 되겠다는 생각은 중학생이 된 뒤에도 변하지 않았고, 학교 선생님들과 주위 친지의 만류도 뿌리치고 성소를 좀더 착실히 준비하기 위해 소신학교에 입학했다. 소신학교 생활이 무난했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지도 신부님과 형제들의 많은 도움으로 지금의 내가 있게 되었다.
등교시간이 여느 고등학생처럼 이른 탓에 우리 소신학생 형제들은 아침기도를 성무일도로 하지 않고 약소하게 가톨릭 기도서로 바친다. 기도가 끝나면 식사를 하고, 신부님께 인사드린 다음, 소신학교와 인접해 있는 무학고등학교로 등교를 한다. 학교의 생활은 다른 학생과 똑같다. 보통 7시까지 학교에 가서 저녁 6시까지 수업하고, 곧장 베드로관으로 돌아와 저녁미사를 봉헌하지만, 요즘처럼 입시를 마친 우리 고3 형제들은 오전 수업을 마치고 일찍 귀가한다. 오후에는 체력단련을 위하여 지도 신부님께서 운동시간으로 정해 주셨다. 1년을 책상 앞에서만 보낸 탓에 몸이 많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고3 동안 많이 아팠다. 소신학교를 떠날 생각을 할 정도로 심하게 앓았다. 몸의 병도 있었지만 ‘내가 신학교에 갈 수 있을까?, 내가 신부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소신학생의 자격이 있는가?’하는 마음의 병이 더 깊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 영혼의 겨울이랄까?
가까운 운동장에서 형제들과 함께 운동을 하거나 축구를 하며 보내는 오후 시간이 참 즐겁다. 우리 동기들 정말 사랑스럽고 징그럽고(?), 또 참으로 개성이 독특한 친구들이다. 운동 잘하는 시몬, 잘 생긴 용훈, 잘 노는 일성, 조용한 영인, 알 수 없는 나까지 3년 동안 성소를 같이 키우면서 신부님 속도 많이 썩혔고 사고도 정말 많이 쳤다. 하지만 이 친구들끼리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우리는 공동체에 적응할 수 있었고, 좀더 복음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면 저녁미사 시간에 가까워져 있다. 시간이 넉넉한 우리 고3 형제들은 먼저 미사 전에 경당에 올라가서 개인적으로 기도하거나 성무일도를 바친다. 지도신부님과 소신학생끼리 하는 작고 소박한 미사에서 나는 3년 동안 많은 감동을 받았고 많은 체험을 했다. 간혹 고등학생이 무슨 미사를 준비하고 전례를 하는가, 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 소신학생 형제들은 부활, 성탄 미사까지 스스로 전례를 연습하고 거행한다. 물론 지도 신부님께서 열심히 가르쳐주신 덕분이다.
저녁미사가 끝이 나면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한 뒤, 취침 및 끝기도 전까지 각자 공부를 한다. 공부시간이 시작되면 대침묵이 시작된다. 얼마 전까지 본고사 준비로 바빴지만, 요즈음에는 세계사와 윤리, 철학, 영어, 이탈리아어를 나름대로 공부하고 있다. 끝기도 시간이 되면 더 공부할 사람들은 더 공부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 형제들은 조배를 하고 묵상하러 경당으로 간다.
‘하루 동안 보살펴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하루 동안 범한 죄를 스스로 알고 뉘우치오니 용서하소서. 오늘밤 당신의 평화 속에 쉬게 하시고 내일도 다시 일어나 주님 당신을 찬미할 수 있게 하소서. 아멘.’
오늘도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며칠 뒤 이곳을 떠날 생각을 하니 잠이 잘 오지 않는다. 1학년으로 입학한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좀 있으면 이 곳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사실 신학교에 합격한 사실도 실감나지 않는다. 며칠 전에 신학교 입학통보를 받았을 때도 그랬다. 나를 성당에 이끌어 준 그 친구도 같이 신학교에 가게 된 일도 믿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모두는 사실이다.
매일 밤 나는 나의 사제상을 다시 정리하곤 한다. 나는 소외 받고 가난한 이들과 살 수 있는 그런 신부님이 되고 싶다. 비록 교구 사제가 수도자들처럼 청빈 서약은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의 주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가난하지만 나누면서 살고 싶다. 그래서 나를 바라보면서 주님을 알게 되는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더 생겼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하루가 끝이 났다. 베드로관 생활도 거의 끝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진정 끝은 아니다. 모든 일의 끝은 새로운 시작과 연결된다는 어느 누구의 말처럼 내일이면 새로운 하루가 시작이 될 것이고, 신학교에 입학하면 다시 신입생이 된다. 그러면 모든 것을 새로 다시 시작해야 하겠지. 그러나 사제가 된다고 해서 그것도 끝이 아닐 것이다. 진정 마지막은 아버지께로 가는 그 날일 것이기 때문에…. 그 날 하느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도록 나는 오늘도 내일도, 신학교에 입학하는 그 날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나는 너무 작고, 미약하고, 사제의 자격이 없는 자일지 몰라도, 끊임없는 기도와 노력으로 나의 끝은 저 크신 하느님의 사랑을 닮고자 한다. 이제 나는 그 첫발을 내딛었을 뿐이다.
“늘 함께 하시는 주님, 제게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이제 시작하는 저를 이전과 같이 지켜주시고 제가 받은 모든 것을 당신께 바칠 수 있게 하소서. 당신이 원하시는 바가 제가 원하는 것이 되게 하시고 제 뜻을 당신의 뜻과 일치시켜 주소서. 당신의 가장 미천하고 작은 도구가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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