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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기
교회 안에서 성령이 망각되었다는 표지


조현권(스테파노)|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

 1. 황제와 주인 혹은 통치자(Imperatrixet Domina)로서의 교회

교회는 본질적으로 우리 눈에 보이는 외면적인 교회 그 이상이다. 교회는 그저 단순한 어떤 백성이나 작은 무리가 아니라 하나의 선택된 백성인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그저 단순한 어떤 몸이 아니라 하나의 신비적인 몸이며, 단순히 어떤 건물이 아니라 하나의 영적인 건물인 것이다. 이렇게 교회에는 보이는 면은 물론이고 안 보이는 면, 물질적인 면과 영적인 면도 있다.

 

교회상(敎會像)이란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고 어떤 특징을 드러내는 가를 말하는데, 2000년이 넘은 우리 교회는 여러 가지 교회상으로 설명될 수 있다. 각 시대에는 그때 그때의 어떤 역사적인 상황에서 생겨난 고유한 교회상 혹은 교회이해(敎會理解)가 있다. 하느님·인간·세계·역사에 관한 그때 그때의 이해와 파악들은 교회상으로 구체화되며, 말씀·성사·교회의 애덕 활동 안에서 중재되는 구원의 표지들 또한 이 교회상 안에서 구체화된다. 예수와 부활하신 그리스도, 영, 말씀과 행위, 신앙과 도덕, 그리스도교와 인류에 관한 그때 그때의 관계가 규명되어 표현·표출된 것이 교회상인 것이다.

 

성령이 소홀해진 혹은 잊혀진 원인은 신앙·교회·신학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찾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성령운동으로 겪게 된 교회의 어려움들, 신자들과 실천 신학 안에서 활동하시는 영에 대한 경시 그리고 서방 신학의 그리스도 중심적인 경향이 그것인데, 이를테면 은총론(恩寵論)은 한때 삼위일체와 성령에 대한 관점은 도외시한 가운데 그리스도에 편중되어 설명되었다. 이러한 점들이 소위 성령의 망각의 한 원인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으리라. 이 모든 것들은 성령을 파악하거나 혹은 성령의 충만함을 깨닫는데 어려워하는 교회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굳건히 뿌리를 박고서 “성령을 소홀히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망각하기까지 하였다. 물론 그러한 생각의 근원은 이미 콘스탄티누스의 전환(개종)의 시기에 있었는데, 이는 교회이해 안에서 한 전환점이 된다. 즉 이를 계기로 그리스도교는 국가의 종교가, 교회는 제국의 교회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무리 없이 이 전환기까지 교회상이 신약성서적인 교회관념들 안에서 파악될 수 있는 교회이해에 일치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교회는 신적인 구원계획이라는 의미에서 신비(mysterium)로, 하느님의 백성으로, 하느님의 집으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리스도의 신부 등등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의 전환 이후에 교회가 국가에 적응함에 따라 교회와 제국의 융합이 시작된다. 교회이해 변천의 한 중요한 계기는 제국적이고 로마적인 모델에 따른 교회적인 직무들의 형성이다. 제국 안에서의 교회, 그 주체는 자명하게 성직자 계급이다. 성직자들은 교회를 지배자들처럼 통치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평신도들은 성직계급의 신하들이 되었다. 마침내 교회는 제국으로, 황제와 통치자(Ecclesia Imperatrix et Domina)로 파악되고, 점점 더 교계제도(Hierarchia)와 동일시되었다.

 

제국으로서의 교회상이 그 절정에 도달했을 때는 교회가 교황의 무류성을 공표했을 때이다. 이렇게 하여 교회이해의 열쇠는 교계제도에 있게 된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교회의 자기이해에 따라서 종합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교회는 지상에서의 하느님의 나라의 현실화를 위해서 교계제도 속에서 살아있는 하느님의 새 백성이다.”1)라는 것이다. 권력을 많이 행사하고 정치 안에 교착된 이러한 교회는 봉사하는 교회 보다는 통치하려는 교회가 될 위험에 빠진다. 그리고 이렇게 지배하는 교회는 자기 안에 성령을 모실 필요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교회의 성령은 봉사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마태 20,28 참조), 봉사하러 오신 주님의 영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4-15)

 

마찬가지로 교회는 자신의 협력자이신 성령으로부터 배울 필요도 없고, 그 성령을 통해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할 각오도 않게 된다.  

 

“사실은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마태 20,28)

 

그런 까닭에 황제와 주인 혹은 통치자(Imperatrix et Domina)로서의 교회 이해는 교회 안에서의 성령의 망각의 원천으로 보여질 수 있다.

 

2. 성령이 망각된 결과로서의 1054년의 동방이교(東方離敎)

동방과 서방교회 사이에 생겨난 이교의 배경엔 로마 교황과 비잔틴 대주교라는 교회의 두 권력이 있었고, 독일 황제와 비잔틴 황제라는 세상의 두 권력도 있었다. 그 분쟁문제는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와 로마 교황의 자기이해의 차이, 스스로를 세속적인 황제로 이해하고자 한 통치자들과 교회의 정치에 있어서의 긴밀한 결합 그리고 로마식으로 이루어지는 제국과 제정에 관한 동방과 서방 사이의 격렬한 논쟁을 야기하였다. 그러나 정치상황과 마찬가지로 동·서방교회의 상호 불신 또한 1054년의 비극적인 교회분열의 원인이 된다.

 

이교의 깊은 이유 역시 교회 안에서의 성령의 망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교회는 성령께서 믿는 이들을 하느님과 서로 간에, 또 세상과 함께 일치시킨다는 분이시라는 것을 잊었던 것이다. 교회는 자신이 성령 안에서 점점 더 하나가 되어가고 또 그렇게 자신이 성령과 하나임을 깨달아 가는 가운데, 그 성령께서 모든 믿는 이들을 하느님 안에 하나가 되도록 돌보신다는 사실에 대해 깊이 깨닫지 못하였다. 하느님 안에서 사랑의 일치 자체를 확증하는 저 원리가 바로 성령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교회는 눈이 멀었던 것이다.

 

분열과 분리를 야기하는 모든 것은 성령과 조화될 수 없다. 따라서 이 의식이 잊혀졌다는 것은 교회 일치의 원리로서의 성령의 특성 또한 잊혀졌다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