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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 매일신문사 사장 정재완 신부
하느님의 섭리를 따라 걸어온 삶


김선자 (수산나)·본지기자

새벽 4시, 어떤 이는 꿈을 꾸고, 어떤 이는 잠을 뒤척일 시간. 정재완(니콜라오) 신부님은 이때부터 하루를 시작한다. 5시 30분, 신부님 홀로 미사를 드리고 서너 개의 조간신문과 뉴스를 시청하고 아침식사를 하신다. 어김없이 오전 8시 30분이면 회의실에 앉아 편집국 부원들과 편집회의를 하고 있는 정재완 신부님의 일과는 이렇듯 숨가쁘게 진행된다.

1962년 12월 21일 사제서품을 받은 후, 삼덕성당 보좌신부를 시작으로 교구 사무국장 겸 경리부장, J.O.C 지도신부, 대학교 강사, 오스트리아 유학 그리고 여덟 곳의 본당사목, 가톨릭 문화관 관장, 가톨릭 신문사 주간과 현재의 매일 신문사 사장까지 40여 년의 세월을 쉼 없이 달려왔던 정재완 신부님의 이력이다. 어려웠던 순간마다 하느님의 섭리로 잘 견디어 나왔다며 지금도 그 순간들이 가장 기억에 남고 그 시간이 그립다고 하신다.

 

“신학교 시절 2년 동안 도서관 책임을 맡았을 때 정치, 경제 관련 잡지가 오는데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 방에 갖다 놓고 보았지.”라며 오스트리아에서도 신학과 더불어 사회학 공부를 할 정도로 노동문제, 사회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셨던 신부님은 그때의 경험이 특수사목 활동을 하는 지금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대구를 대표하는 지방지 매일신문에 몸 담은 지도 3년. 대중매체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알기에 정재완 신부님은 고운 생각, 인간적이며 교육적이고 시각적인, 독자들로 하여금 긍정적인 사고를 이끌어낼 수 있는 신문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우리의 대중매체는 부정적인 시각이 강하고, 비판하는 데는 능수능란하지만 칭찬에는 인색하네. 그에 따라서 한국민의 생각도 부정적인 생각들이 많다.”고 지적하신다. 또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인간의 알 권리를 지켜주고, 때로는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양면성을 지닌 대중매체이지만 삶의 지식과 아이디어를 윤택하게 해 줄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야 하며 우리 민족의 미래에 도움이 될 만한 도구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충고를 잊지 않으셨다.

 

삼덕성당 보좌신부 시절,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예비자 교리를 통해 하루도 쉬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을 알리며 그들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싹틀 때 뿌듯하고 행복했다는 정신부님. 아직도 그 시절을 꿈꾸고 있는 정신부님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하다.

 

어린 시절 본당 신부님이 읽고 있던 성무일도의 라틴어 글자를 배우고 싶다는 순간부터 하느님과의 만남이 시작되어 지금의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정재완 신부님은 사목직에서 물러나기 전에 본당으로 돌아가서 예비자 교리를 다시 해 보고 싶다는 소박한 소원을 말씀하시며 함박 웃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