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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가르쳐 주는 교리
자아 성찰(Self reflection)과 아이들의 신앙생활


전재현(베네딕도)|신부 . 대구대교구 사목국 청소년담당

마음열기

오늘날,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신학교 생활 7년 과정 중에 독서직, 시종직, 부제서품의 과정을 차례로 밟아가야 합니다. 독서직은 말씀의 전례에서 사제를 도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교회의 직무를 말합니다. 이들은 복음 선포의 사명과 하느님 말씀에 뿌리 박힌 신앙에 봉사하게 됩니다. 시종직은 말씀의 전례와 제대 위에서의 전례 중 사제를 도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직위를 말합니다. 시종직을 받는 이들은 교회가 맡은 직무 수행 과정에서 사제들과 부제들의 직무를 도와주고, 신자들에게 성체분배를 해 주게 됩니다. 그리고 보통은 신학교의 마지막 1년을 앞두고 부제품을 받게 됩니다. 부제직부터 성직자라 부르며, 사제 가까이에서 전례를 돕게 됩니다.

 

제가 독서직을 받을 때의 일입니다. 말씀을 잘 선포하기 위해 볼펜을 입에 물거나, 코를 막고 책을 읽으며 발음연습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제 동기 중에는 평소 대화 때는 괜찮다가도 책을 읽으면 말을 더듬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공적으로 말씀을 선포하는 데 말을 더듬는다는 것은 사제서품을 받는 데 결격사유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친구는 매일 친구들 앞에서 다음 날의 독서나 복음을 읽는 연습을 했고, 언어 치료를 받으며 시련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만 했습니다. 다행히 자신의 노력과 동료들의 도움으로 지금은 사제로서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어려운 시간을 통해 하느님의 돌보심을 체험한 친구가 있었던 반면, 저의 경우는 제가 느끼지 못했던 하느님의 축복을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독서직을 받았을 때부터 시작해서 발음이 좋다는 이야기를 곧잘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소리에 대해 별 생각 없이 살아온 저로서는 뜻밖의 하느님 축복으로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다년간 냉담했던 신자가 제가 주례하는 미사에 참례하고서는 ‘오늘 미사에는 잡념 하나 없이 참례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할 때는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제 목소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미사 중에 정성들여 기도를 드리고 강론을 할 때와는 다르게 일상 생활 안에서 듣기 거북한 쇳소리를 내는 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날카로운 쇳소리가 제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언제 그런 소리를 내는지 가만히 살펴본 결과, 뭔가 원하는 일이 제대로 안될 때나 몸이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심할 때 등등 짜증스럽고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저는 제 목소리를 들으며 제 상태를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음, 오늘은 어떤 일로 마음이 평화롭지 않구나!”

“몸이 피곤해서 자꾸 신경질적인 말투가 나오니 오늘은 좀더 천천히 말해야겠다!”

“사람은 사물이 아니다! 너 오늘 왜 이렇게 사람들에 대한 반응이 무디냐?”

 

저 자신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저의 성숙을 스스로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 제 경험으로 볼 때 이와 같은 과정들은 아이들을 비롯한 사람들의 성장과 성숙에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됩니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감정 상태를 인식하고 통제하는 체험을 시키면 태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화가 나 있는지, 스스로 알고 있는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에 비해 더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습니다. 또 책을 읽다가도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하며, 읽고 있는 책에 대해 다시 한번 전체적으로 파악할 줄 안다면 아이의 학습능력은 월등히 나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사고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자신의 사고나 행동에 대해 반성적인 질문을 던지지 못하는 것이 중요한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하기

이처럼 사람에게는 ‘Self reflection!’, 즉 ‘자아 성찰’ 능력, ‘자기 반성’ 능력이 있습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자기 스스로 자신에 대해 반성할 능력이 있습니다. 다른 동물들은 본능에 따라 살다가 죽지만, 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더 나은 자아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자기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자기 귀로 듣고 자기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성숙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는 성서 구절을 찾아보았습니다.

 

“무서워 하여라, 다시는 죄짓지 말아라. 자리에 누워 반성하여라, 고요를 깨지 말아라.”(시편 4,4)

“지금까지 걸어 온 내 길을 반성하고 당신 언약의 길로 되돌아옵니다.”(시편 119,59) 

“마음이 올바른 사람은 깊이 생각하고 대답하지만 나쁜 사람은 악담을 함부로 퍼붓는다.”(잠언 15,28)

“알아 보지도 않고 남을 비난하지 말아라.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에 질책하여라.”(집회 11,7)

“지혜로운 반성으로 다져진 마음은 잘 꾸민 벽에 걸린 장식과 같다.”(집회 22,17)

“충고를 달게 받는 사람은 반성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오만한 자와 이방인은 겁도 없이 날뛴다.”(집회 32,18)

“재티나 먹고 사는 것들. 생각이 비뚤어져 터무니없는 짓이나 하는 것들. ‘내 오른손에 붙잡고 있는 것이 허수아비나 아닐까?’ 하고 반성하기는커녕 그 터무니없는 생각에서 도무지 헤어나지를 못하는구나.”(이사 44,20)

 

성서의 지혜는 침묵함으로써 자신을 재발견하고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잘 말해 줍니다. 멈추고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은 어른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성숙을 위한 필수과정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성장과정에 있는 아이들이 이러한 습관을 빨리 가질 수 있다면 성숙하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울의 어느 가톨릭계 여자고등학교에서는 25년째 ‘아침 명상’ 프로그램을 진행해 오고 있다고 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명상 시간을 가지면 몸과 마음이 차분해져요!’

어느 학생의 이러한 체험담은 어른들도 새겨들어야 할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학생들은 신학교가 생긴 이래로 매일 묵상시간을 가집니다. 그만큼 그 시간이 인격적으로, 또 신앙적으로 성숙하는 데 중요한 시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천하기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다. 생각하고 숨쉬고, 나의 생각과 장점을 정리할 시간. 모든 것은 너무 빨리 지나간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지금 이런 상태는 아닌지요? 생각은 가끔 쉬어야 깊어집니다. 부모가 먼저 하느님 앞에서 침묵의 시간을 가지고,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되면 아이들에 대한 자신의 교육방법도 새롭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기는 아이들이 삶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데 효과적입니다. 자신의 하루를 되돌아봄으로써 그날 겪었던 어려움을 객관화시킴으로써 성숙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영적 일기는 일반적인 일기 이상의 갈등해결 능력과 아픔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줍니다.

 

왜냐하면 일기가 자기와의 대화라면, 영적일기는 자기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 알고 계시는 하느님과의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날 그날의 복음 이야기를 아이가 이해한 대로 요약하고, 그 복음을 생활과 접목시켜 하루를 정리하며, 구체적인 실천사항을 스스로 정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이끌어 주세요. 또 아이들과 함께 저녁기도를 바치며 하루를 반성하는 것은 이제 기본적인 가정기도가 되어야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