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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문화를 찾아서 - 봉사공동체 ‘푸드뱅크’
음식의 나눔 있는 곳에


취재 | 이은영(데레사)·본지기자

음식을 남길 때면 으레 하는 말이 있다. “음식 남기면 벌 받는다.”, “죽으면 지옥가서 코로 먹어야 한다.” 등등. 이는 음식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판매에서 소비에 이르기까지 많은 수고로움이 따른 데서 나온 말일 터. 그러나 요즘처럼 먹거리가 다양한 적이 있었던가? 그래서인지 집집마다 남아서 버리는 음식이 넘쳐난다. 한 끼조차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이웃들이 있는 반면에, 과학의 발달로 먹거리가 과잉 생산되어 폐기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식품의 재활용과 사회복지 서비스의 확충을 위하여 전세계적으로 푸드뱅크가 운영되고 있다. 1968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푸드뱅크는 풍요와 빈곤이 상존하는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고자 식품의 생산, 유통, 판매, 소비 단계에서 발생하는 잉여 먹거리를 기탁자들로부터 제공받아 이를 필요로 하는 복지시설이나 개인 등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사업이다.

 

우리 교구에서도 기존에 알려진 푸드뱅크 운영과는 다르지만 ‘푸드뱅크’라는 이름으로 독거노인들에게 무료로 반찬을 나누어 주고 있는 청년들이 있어 만나 보았다. 우리 교구 청년들이 운영하는 ‘푸드뱅크’는 규모면에서나 활동면으로나 기존의 푸드뱅크 사업에 비해 영세하고 작지만 기울이는 정성과 나눔의 정신만은 진실하다.

 

2000년 7월, 몇몇 청년들이 모여 청년 봉사 소공동체를 꾸리기로 하고, 무료 진료를 해주는 성심 복지의원과 연계하여 대구 남산동 일대의 독거 노인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이유는 노인들이 치료를 해도 먹거리가 부실하여 치료의 효과가 약하자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이다.

 

이 때만 해도 30여 명의 회원들이 모 백화점 뷔페식당의 남은 음식을 수거하여 일주일에 다섯 번, 2인 1조가 되어 독거노인들에게 음식을 전달하였다. 또한 대구역 근처 무료급식소를 찾는 이들에게 후식으로 따뜻한 차를 대접하며 힘을 보태기도 했다. 그러나 갑자기 음식을 제공해 주던 뷔페식당이 문을 닫으면서 음식수급에 차질을 빚어 한 때 위기가 닥쳐왔다. 음식을 후원해 줄 식당과 여러 후원 업체들을 알아 보았지만 음식을 주겠다는 마땅한 곳이 없었다.

 

푸드뱅크 청년들은 여러 방법을 모색하다 결국 조별로 돌아가면서 직접 장을 보고 반찬을 만들어 독거노인들에게 전달하기 시작하였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회원 대부분이 직장인이라 식단을 짜고 장을 보고 반찬을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운영 자금 또한 봉사자들이 매달 내는 회비로 충당하고 있다.

 

“일주일 동안 먹을 분량이라 위생도 생각해야 하고, 맛도 있어야 하고, 또 조별로 반찬이 중복 되지 않으려면 이것저것 생각하고 준비할게 많아요.”라고 봉사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봉사자들은 다 같이 모여서 반찬을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시간 절약을 위해 집에서 직접 만들어 오기도 한다. 없는 솜씨 있는 솜씨 뽐내어 꾸려 온 정성스런 도시락에는 그들의 사랑과 정성이 듬뿍 담겨 있다.

 

가톨릭 청년 단체 산하 ‘푸드뱅크’의 봉사자 대표 김은주 씨는 신자가 아니다. 가까이서 지켜봐 온 봉사자들은 “우리 단체의 성격상 나누려고 하는 마음만 있으면 신자가 아니라도 상관없다.”며 은주 씨의 열심하고 착한 심성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은주 봉사자 대표는 “나눌거리(음식)가 많아지고 봉사를 하려는 청년들도 좀 더 많아졌으면 해요.”라며 환하게 웃는다.

 

화요일 저녁이면 가톨릭 노동자 회관 지하 주방에 모여 지난 주에 전달한 도시락통을 수거하여 깨끗이 설거지를 한 후, 반찬을 만들어 담는 그들의 마음은 이미 어르신들에게 닿아 있다. 정성스럽게 싼 도시락을 들고 어느 여관 한 켠에서 홀로 사시는 할머니댁에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반가이 맞아주셨다.

 

사실 도시락만 덜렁 주고 나서려니 죄송할 때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할머니와 두런두런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한다. 할머니는 “젊어서 고생했더니 이제서야 호강하는 것 같다.”며 봉사자들의 손을 꼭 잡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음식을 직접 만들어야 하는 번거로움에다 평일 저녁에 시간 내는 것이 젊은 봉사자들에게는 만만한 일이 아니지만 “조별로 움직이니 한 달에 한 번 정도 시간을 내면 되요. 그래도 가끔은 귀찮다는 생각을 해요. 하지만 어르신들을 뵙고 돌아 설 때면 마음 한 가운데 뿌듯함이 샘솟아요.”라며 어려움보다 보람이 더 크다고 말한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따뜻한 이웃애를 실천하고 있는 푸드뱅크 젊은 봉사자들. 이들의 드러나지 않는 작은 정성으로 인해 기뻐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나눔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이웃 사랑은 거창하게 포장된 그 무엇이 아니라 타인을 향해 내 마음의 작은 자리를 조금 비워두고 낮은 곳에서 드러나지 않게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이리라.

 

도시락을 전해주고 나오면서 “우리 할머니 참 밝죠.”라며 환하게 웃던 그네들의 모습에서 그들 스스로가 나눔으로써 더 풍요로워지고 위로받고 있음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