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게서 사제 성소가 느껴질 때 부모로서 무엇을 어떻게 도와 주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쉬이 답을 찾는 부모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성소(聖召)란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으로 사제성소, 수도성소, 결혼성소로 구분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각자에게 맞는 특별한 부르심을 받아 그 자리에 있게 된다. 이처럼 넓은 의미에서 성소는 모든 이가 자신의 삶의 길을 가는 것으로, 우리가 속해 있는 가정과 직장 등 모든 것이 포함된다. 성소는 자신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먼저 하느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하고 여기에 인간인 우리가 응답하는 것이다. 비록 사제나 수도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 모두는 어떠한 형태로든 성소를 받고 있고 그 길을 가고 있다.
하양성당과 무학고등학교에 이웃해 있는 베드로관은 예비신학생들의 공동체이다. 사제가 되기를 희망하는 15명의 예비신학생(고등학생)과 이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곽재진(베드로) 신부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성소 형성과 성소 육성을 위한 교육 공동체인 베드로관은 소신학교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학교생활과 베드로관 생활이 구분되어 있기에 대신학교와 비슷한 형태였던 예전의 소신학교와는 운영형태 면에서 다른 점들이 있다.
베드로관의 예비신학생들은 무학고등학교에서 일반 학생들과 똑같이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있으며, 학교 생활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시간을 베드로관에서 보내고 있다. 또한 일반 인문계 고등학생들에 비해 정규수업 이후의 시간을 인성교육, 신앙교육, 학업, 운동, 건강관리 등 다양한 교육과 활동, 건전한 놀이 문화를 통해 교회의 미래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베드로관의 하루 일과는 아침 6시에 시작된다. 아침기도와 식사가 끝나면 7시에 무학고등학교로 등교하여 오후 6시까지 일반 학생들과 함께 정규수업을 받고 이후의 생활은 다시 베드로관에서 이루어진다. 일반 학생들이 저녁식사 후 보충수업과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반면에 베드로관 학생들은 미사를 봉헌하고 나서 저녁식사를 한다. 야간 자율학습은 운동과 휴식 등의 자유시간을 가진 뒤 8시부터 시작되어 11시 30분까지 이어지며, 원한다면 새벽 1시까지 공부방을 개방하기도 한다. 자율을 중요하게 여기는 베드로관에서 전례 중심의 기도생활과 공동체 생활을 익히는 동시에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학업 또한 소홀히 할 수가 없어 공부방에는 밤 늦도록 불이 켜져 있다.
예비신학생들의 공동체인 베드로관에 입소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전, 지도신부인 곽재진 신부와의 면담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면담을 위해서는 중3 여름 방학 때까지 자신의 사제성소 의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처럼 베드로관 입소 자격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제가 되겠다는 의지, 즉 사제성소이다. 더불어 본인과 부모의 신앙생활, 건강상태, 성적 등을 살펴본 후 선발한다.
국내에서 유일한 고등학생을 위한 성소 양성관인 베드로관의 설립 첫 취지는 대구 시외에 있는 고등학생 성소자들을 위해서였다. 대구 시내에 거주하는 청소년들은 다양한 종교활동과 행사 그리고 여러 사제들과 수도자들의 모습을 통해 성소에 대해 생각해 보고 느낄 기회가 많다. 또한 교육환경과 여건이 좋아서 예비신학생들의 성적을 관리하고 향상시키는 데도 용이하다. 그러나 시외에 거주하는 청소년들은 성소 육성과 관리, 교육 환경면에서 다양한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시외 지역의 사제 성소자들을 위해 베드로관이 설립되었다 하겠다. 그러나 베드로관 입소를 희망하는 대구 시내 학생들도 늘고 있는 터라 시외, 시내 학생의 비율은 거의 비슷하다.
베드로관 예비신학생들도 또래의 다른 친구들처럼 진로와 성적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한다. 특히 사제 지망 성소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있단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충분히 지도신부와의 면담을 통해 본인에게 하느님의 부르심이 있다고 여겨 들어오는 곳이 베드로관이다. 따라서 성소 그 자체, 사제성소의 있고 없음에 대한 생각보다는 ‘내가 정말 사제가 될 자격이 있는가?’, 때로는 ‘대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또 사제가 되기 위하여 어떻게 준비해 나갈까?’라는 생각들을 주로 한다고 한다. 사제에 대해 알수록, 또 이미 사제가 된 이들의 삶을 보면서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예비신학생들은 베드로관에 처음 입소 했을 때에는 가족들 생각에 눈물 흘리기도 하지만, 사제가 되기 위한 중요한 준비 과정임을 알기에 마음을 다잡고 학업에 최선을 다한다.
사제가 되고 싶은 소망이 있다고 해서 베드로관에 꼭 입소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교구 사목국에는 성소담당 부서가 있으며 이 부서를 통해 교구 내 모든 사제 지망 성소자들이 관리, 육성되고 있다. 베드로관은 이 큰 울타리에 속하는 조금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성소자들의 공동체라 하겠다. 베드로관 예비신학생들은 교구 내 다른 성소자들과의 친교를 위해서 매달 셋째 주에는 교구 성소모임에도 참석하고 있다.
곽재진 신부는 “성소자들이 부르심에 응답하여 거룩한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부모와 본당 사제 그리고 수도자들이 도와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하나의 방법인 베드로관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라며 사제 성소자들이 베드로관에 입소할 수 있도록 특별한 관심과 협조를 요청했다. 또한 “베드로관은 사제 지망자로서의 필요한 자질을 갖추도록 준비시켜 주고, 성소를 키워주고 이끌어 주는 곳으로 사제가 되겠다는 자녀의 소망이 크다면 중3 여름 방학 때까지 담당신부인 저와 면담을 해야 합니다.”라며 베드로관 입소 절차에 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성소는 한 번의 결심과 결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는 노력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삶을 살아갈 때 그 안에서 꽃피우고 열매 맺을 수 있다. 나의 능력에서 성소가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성소의 씨앗을 간직하며 키워내는 베드로관의 예비신학생들을 보며 성소육성의 최초 못자리인 가정과 교회공동체의 꾸준한 기도와 협력의 뒷받침이 가장 큰 힘임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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