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열기
“야, 웃통 다 벗어! 날씨가 아무리 더워도 우리가 이깟 날씨 하나 못 이겨서야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 자 웃통 다 벗고, 열심히 공부하자! 알겠냐?”, “예!∼”
섭씨 35도를 웃도는 더위 중에 중학교 3학년 교실에서 벌어진 광경입니다. 날씨가 너무 더워 학생들의 집중력이 떨어진 것을 알아 챈 총각 선생님께서 당신이 먼저 웃통을 벗으시며 호통치신 것입니다. 학생, 교사 할 것 없이 모두가 웃통을 벗고 공부하는 교실! 상상이 되십니까?
지금은 그 선생님의 성함조차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때의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히 제 기억 속에 살아있어, 저도 모르게 미소짓게 되는 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선생님의 혈기왕성한 젊음과 교사로서의 열정적인 모습이 아직은 어렸던 제게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나이를 더 먹어도 ‘깨끗한’ 늙은이가 된다.”
“나는 나이를 더 먹어도 ‘멋있는’ 늙은이가 된다.”
“나는 나이를 더 먹어도 ‘사과할 줄 아는 용기 있는’ 늙은이가 된다.”
이것은 제가 언젠가 만난 어느 60대 노인이 책상이나 냉장고에 써 붙여놓고 매일 다짐하는 것들 중에 몇 가지입니다. 그 다짐의 내용들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지만, 이런 다짐을 하며 하루하루 활기차게 살아가는 그분의 모습은 그것이 말뿐이 아님을 충분히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또박또박한 말씨와 당당한 모습이 그분의 열정적인 삶을 대변해 주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고 있는 어떤 일에 열정과 확신을 가질 때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기쁘게 풀어 나갈 수 있습니다. 또한 삶의 연료와 같은 열정을 간직하고 있을 때 우리의 눈은 광채를 띠게 되고, 우리의 생활은 생기가 넘쳐흐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나 생활에 의미를 부여하고, 열정을 가지게 되면서 그것에 대한 긍정적인 면을 더욱 더 많이 보게 되고, 일에 효율이 생기며 더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공부하는 데 열정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자녀들의 열정은 부모가 기대하는 공부에 집중되어 있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다수의 자녀들은 공부 이외의 것에 더 많은 열정을 쏟고 있는 듯합니다. 단적인 예로 스포츠 스타나 좋아하는 연예인을 만나기 위해서 대여섯 시간 기다리는 것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다리느라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기운이 소진해 있다가도 좋아하는 스타의 얼굴 한번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몸과 마음은 금방 원기충천해집니다.
그러한 에너지가 어디에서 쏟아져 나오는지 볼수록 신기할 정도입니다. 이밖에도 아이들이 가진 열정은 다양한 형태로 드러납니다. 일찌감치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고 목표를 향해 성실히 나아가는 청소년들이 있는가 하면, 학벌을 떠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고 그 안에서 성공을 기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부모는 이처럼 다양한 자녀들의 욕구와 열정을 이해하고 받아주며 그러한 열정이 잘 열매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리더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그들의 인생과 일에 대한 열정임을 생각해 본다면, 자녀들이 시대를 이끌어 가는 리더로 성장하기 위해 열정의 씨앗에 불을 붙이는 부모의 역할은 참으로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생각하기
자녀들의 생활이 열정적일 수 있도록 돕는 부모의 역할은 신앙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 가정의 자녀들은 부모를 통해 열정적인 신앙 생활을 물려받아야 합니다. ‘종교는 초월자를 찾는 열정’이라는 말이 있듯이 종교생활, 곧 신앙생활 그 자체가 열정적인 삶이기 때문입니다.
‘열정’이라는 말은 영어로는 ‘enthusiasm’이라고 표현됩니다. 그런데 이 말의 어원에서도 그 의미가 하느님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희랍어 ‘ε ν θεο s’(엔 테오스)는 ‘하느님 안에’라는 말로 영어로는 ‘in God’이라고 표현됩니다. 여기에다 명사형 어미가 붙음으로써 ‘enthusiasm’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열정이라는 말은 그 어원을 살펴 볼 때 ‘하느님 안에 있다’라는 말이고, 좀더 풀이해서 말한다면 ‘신들렸다’라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열정과 관련된 성서 구절들을 찾아 보았습니다.
“온 유다 백성은 마음을 다 기울였기 때문에 그 일이 기뻤다. 그들은 열렬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았다. 그래서 야훼께서는 그들을 만나 주셨고 사방에 평화를 주셨다.”(2역대 15,15)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율법을 따르고 주님을 열렬히 찾는 사람은 주님의 총애를 얻게 될 것이다.”(집회 32,14)
“이 광경을 본 제자들의 머리에는 ‘하느님이시여, 하느님의 집을 아끼는 내 열정이 나를 불사르리이다.’ 하신 성서의 말씀이 떠올랐다.”(요한 2,17)
“그들은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서를 설명해 주실 때에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루가 24,32)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며 열렬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십시오.”(로마 12,11)
“나는 네가 한 일을 잘 알고 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차라리 네가 차든지, 아니면 뜨겁든지 하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묵시 3,15)
“그러나 너는 이렇게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미지근하기만 하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묵시 3,16)
성서는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대해 중요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열렬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고 주님의 율법을 따르는 이들을 하느님께서는 아끼시지만, 주님을 찾는 마음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는 이들은 내치신다는 것입니다. 현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상태가 이러하다면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부모의 미지근한 신앙생활은 자녀들에게도 전염되기 십상이어서 교회의 미래가 어둡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좀더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하느님을 대하는 자녀들의 태도는 부모를 대하는 태도와 별반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이 세상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제대로 섬길 줄 모르는 사람이 자신을 낳아주신 부모를 열심히 섬긴다는 것은 일종의 모순이기 때문입니다. 효도할 줄 아는 자녀를 원하면서도 하느님을 제대로 전하지 않는 부모의 어리석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실천하기
열정과 확신에 찬 신앙생활의 표본은 순교한 사도들에게서 일차적으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을 직접 체험하고 그분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도들은 생명을 바쳐 주님의 부활을 증거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자극이 없이는 열정을 샘솟게 할 수 없습니다. 자녀들에게 신앙적으로 자극이 될 만한 일을 찾아주십시오. 순교자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피를 뜨겁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또 특별한 기도회에 참여한다든지, 청소년들의 정서에 맞는 신앙 축제에 함께 참여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일정기간 어머니와 함께 같은 지향으로 평일미사에 참례하거나 로사리오를 바치는 것도 좋겠지요.
또한 ‘아는 만큼 본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웃의 불쌍한 처지를 모르는 사람이 이웃을 도울 수 없듯이, 또 친구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때 친구가 참으로 원하는 것을 들어 줄 수 있듯이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알아야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고, 그분께 우리의 뜨거운 마음을 내어드릴 수 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부모의 체험을 자녀들과 나누어 보는 것은 어떨는지요! 함께 성서를 읽거나 쓰면서 이러한 체험도 나눌 수 있으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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