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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Latte is ‘a’ horse”


글 김윤식 안토니오 신부 | 하양성당 보좌

 

“이런 말을 하면 제가 ‘꼰대’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흔히 ‘기성세대’로 구분되는 어르신 분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이런 말로 운을 띄우시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꼰대’라는 단어의 유래에는 몇 가지 설이 있지만 지금 활용되는 의미를 봤을 때 ‘진부한 옛날 얘기를 자주 꺼내는 사람’, ‘마치 세상 이치를 다 아는 양 가르치려 드는 사람’, ‘고정관념이 강해 소통이나 타협이 어려운 사람’ 등 단어에서 풍기는 뉘앙스가 대체로 부정적이라 누구도 이런 말을 듣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말을 꺼내면서 조심스럽게 그런 운을 먼저 띄우는 것이겠죠. 또한 이 단어가 담고 있는 세대 간의 시각·입장·의견차이의 문제는 아마도 아담 세대 이후로 지금까지 이어온 풀리지 않는 인류의 과제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사실 이는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여느 집단에서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생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직장, 군대, 신학교, 심지어 초등학교 고학년과 저학년 사이에도 충분히 있을법한 문제죠.

요즘 들어 이 ‘꼰대’라는 단어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새롭게 변형되어 쓰이고 있는데, ‘Latte is horse’라는 문장이 바로 그 표현입니다. 이 문장을 있는 그대로 번역하면 ‘라떼는 말이다’라는 이상한 말이 됩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주로 ‘꼰대’들이 운을 띄우며 하는 말인 ‘나 때는 말이야…’ 하는 말을 꼬아놓은 우스갯소리였습니다.

물론 ‘꼰대’가 틀린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야죠. 모르는 것은 가르쳐줘야죠. 하지만 ‘꼰대’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그것을 쉽게 용납하지 않습니다. 조언과 충고를 망설이게 되고, 옳은 것과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한 말이 불편해지는 분위기, 그것이 신종 ‘꼰대 문화’가 가져온 하나의 풍조인 것입니다.

사실 진짜 ‘꼰대’는 그런 고민조차 하지 않습니다. 세대 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편협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공동체의 발전을 저해하는 꼰대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꼰대를 부정적으로만 보기에는 우리 곁에는 공동체의 중심을 잡아주고, 바른 말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옳은 일에 앞장서는 진짜 ‘어른’다운 꼰대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풍조 가운데 그들까지 덩달아 평가절하되고, 그 결과 세대 간의 소통까지도 줄고 있는 것 같아 조금은 걱정됩니다. 진짜 어른일수록 말을 아끼기 때문이죠. 단순히 나이나 지위의 문제가 아닙니다. 네, 차이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말이 앞서느냐, 행동이 앞서느냐.

명색이 제 영화이야기의 마지막 글인데, 또 다른 얘기들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사실 ‘그래도 마지막은 영화이야기를 해야지’ 하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데, 그 사람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이 ‘꼰대’라는 단어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이제 갓 50대에 접어든 젊은 감독, 그러나 이미 최고의 반열에 오른 영국 출신의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입니다.

첫 장편영화 “미행”을 시작으로 “인셉션”, “다크나이트”,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등 연출한 모든 작품이 그 이름만으로도 압권인 명실상부 천재 감독입니다. 그의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꿈속과 우주, 가상의 도시, 전쟁터를 오가는 영화 속 배경을 완벽하게 재연해 낸 연출력에 압도당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문제는 그 대부분의 장면이 CG(컴퓨터 그래픽)의 힘을 빌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와, 대단한 연출이다. 당연히 CG겠지’ 생각했던 장면들이 손수 제작된 대형세트와 소품들로 꾸며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조차 쉽지 않을 정도입니다. “인터스텔라”의 거대한 옥수수 밭을 연출하기 위해 직접 수만 평의 대지를 사서 3년간 옥수수를 길렀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합니다. CG로 간단히 만들 수 있는 것을 막대한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어 고집스럽게 만든 이유는 단 하나, ‘더 좋은 장면’을 담기 위함이었습니다. 디지털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도 아날로그 필름카메라를 고집하고, 제작진의 피를 말려가며 이뤄 낸 그 결과는 영화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그의 고집들이 집대성된 “덩케르크”를 초대형 스크린 ‘IMAX’로 관람했던 충격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화 ‘관람’을 넘어선 하나의 ‘체험’으로 다가왔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꼰대가 있었다면? 대부분은 바리사이와 율법학자 등 사회·종교적 기득권층을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율법을 쥐고 민중의 삶을 옥죄고, 말로써 군림했던 그들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꼰대가 맞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꼰대다움’을 보여주셨던 분은 다름 아닌 예수님이셨습니다. 당시 사회상으로는 가장 혁신적인 모습으로 비춰졌지만 끝내 밝혀진 사실은 그분이 하느님의 뜻 앞에 철저한 ‘꼰대’셨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삶을 가능케 한 첫째는 ‘진리에 대한 확신’, 둘째는 그 확신을 행동으로 옮긴 ‘실천’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그런 예수님을 ‘관람’을 넘어 ‘체험’했고, 그것은 그들의 삶을 뒤흔든 묵직한 감동이었습니다.

자기 분야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끝까지 고수하고, 필요하다면 투쟁도 마다하지 않는 놀란 감독은 명실상부 ‘영화계 꼰대’입니다. 그리고 이 ‘꼰대’의 다른 이름은 ‘장인’입니다. 제 스스로 신앙은 실천이며 체험이라고 말해왔지만 정작 그 체험을 선사하기 위해 제 분야에서 얼마나 그처럼 노력하고 준비해왔는가는 반성해 볼 부분입니다. ‘좋은게 좋은거지’ 하며 적당히 합리화하고 타협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뜻을 놓쳐왔던 제 모습을 봅니다.

시간이 끊임없이 흐르는 한,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는 꼰대입니다. 이제는 ‘아재’ 소리를 심심찮게 듣는 저도 다음 세대를 위해 앞뒤가 꽉 막힌 ‘꼰대’가 아닌, 다른 것은 양보하더라도 복음만큼은 완벽주의자가 되겠노라, 그런 장인정신을 살아가는 ‘복음꼰대’가 되겠노라 다짐해봅니다.

그동안 제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피드백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 글이 영상문화 안에도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하시는데 아주 작은 도움이 되었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 그동안 영화이야기를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과 연재를 맡아주신 김윤식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