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일행과 함께 선산을 출발하여 가는 도중에 일정을 약간 변경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남산동에 자리한 천주교대구대교구청 내 성모당에서 오전 11시 미사를 하고 순례를 시작할 생각이었지만 시간이 조금 일러 성모당과 인접해 있는 대구가톨릭대학교(대신학원)를 먼저 순례하기로 했다. 신학교에 도착하니 오전 10시 3분, 우리는 우선 신학교 대성당으로 향했다. 김대건 신부님의 등뼈가 모셔진 제대 앞에서 함께 기도를 드린 후, 옛 신학교인 성 유스티노 신학교 성당에 들러서 아주 편안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둘러보고 나오는데 마침 스탬프가 놓여 있어 반가운 마음에 스탬프를 찍으며 지난 성지순례의 추억을 떠올렸다.
남산동 대신학원은 내가 평생을 근무하고 정년퇴직한 아름다운 인생터로, 너무나 마음이 편안했고 나의 인생 전부를 다 내어주었던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런 아름다운 나의 인생터에서 퇴직을 하고 나올 때의 생각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은 참 빨리도 지나고 있다. 이제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분들의 얼굴도 스쳐갔다. 최병선 신부님, 이종흥 몬시뇰, 김영환 몬시뇰, 최영수대주교님, 박석희 주교님, 김경식 몬시뇰, 이윤걸 신부님, 권 으제니 수녀님, 서 수산나 수녀님, 직원이었던 박임술 아저씨, 박 데레사(참으로 어린 나이에 1987년 9월 20일 한국 모든 성인 대축일에 결핵으로 고생하다가 하느님 품으로 갔다.)…. 아득히 떠오르는 아름다운 모습들을 뒤로 하고 오전 11시 성모당 미사에 참례했는데 그날 강론 중에 신부님께서 희생과 기도를 대단히 많이 강조하셨다. 우리 신앙인의 근본이기도 한 희생과 기도! 미사를 마친 후 식사를 하고 성직자묘지에 들러 기도를 드린 다음 교구청 맞은 편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로 향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정 아녜스 수녀님의 도움으로 수녀원 곳곳을 다 돌아볼 수 있었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대구관구)는 우리 아이가 백합 어린이집(6.25전쟁 당시와 그 이후에는 백백합 보육원었는데, 보육원이 없어지고 그곳에 백합 어린이집을 수녀원에서 설립했다.)에 20개월이 될 무렵부터 다녔기 때문에 너무나 익숙해서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우리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으려고 아침마다 수녀원 정문에만 들어서면 모자와 가방을 팽개치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늘 함께 다닌 다니엘라 수녀님과 정학근 신부님, 리체(포콜라레 회원)가 함께 부둥켜 안고 어찌할 줄 몰라 쩔쩔매곤 했다. 그러면 문간에 계신 할머니 수녀님이 나오셔서 “아이고, 야들아! 아 하나도 감당을 못하노? 그냥 놔두고 가거라. 내가 알아서 데리고 놀다가 어린이집에 데려다 줄게. 느그는 가서 일들이나 해라.” 하시던 그 말씀이 그대로 들리는 것 같았지만 그 할머니 수녀님은 벌써 몇 년 전에 선종하시고 계시지 않으신다. 그렇게 옛 기억을 떠올리며 성당과 박물관을 둘러보던 중, 박물관 벽에 붙여진 모든 수녀님의 사진을 보면서 황 벨라뎃다 수녀님이 생각났고 이미 돌아가신 서 수산나 수녀님과 권 으제니 수녀님 생각과 함께 아는 분들의 얼굴이 있어 너무도 반가웠다. 옛 추억에 잠기는 동안 내 나이가 이렇게 많이 먹어버렸다는 사실조차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늙는다는 것, 세월이 간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 주는 수녀원 박물관에 전시된 수녀님들의 사진이었다. 나의 생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보며 반성과 아름다운 추억들을 떠올리기도 했고, 남은 생을 정말 하느님 뜻대로 살아야 된다는 것을 깊이 깨달은 곳이기도 했다. 수녀원 순례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수녀원 안에 있는 예담갤러리까지 둘러 본 다음 우리는 대명동에 있는 가르멜 여자 수도원으로 향했다.
대구 가르멜 여자 수도원은 가끔씩 수녀님들이 제병을 사러 가실 때 따라가 보았는데 그게 벌써 몇 년 전이었는지 싶었다. 그때와는 사뭇 다르게 보였지만, 우선은 성당에 들러 성체조배와 기도를 드리기로 했다. 가르멜 여자 수녀원의 성당은 다른 수도원의 성당과 달리 관상수도회인 만큼 수녀님들이 잘 보이지 않도록 제대 측면에서 기도하시도록 되어 있는 구조이다. 우리는 다함께 조용히 성체조배와 기도를 드렸다. 가르멜 여자 수녀원을 벗어나서 근처에 있는 예수성심시녀회 수녀원으로 향했다.
예수성심시녀회(대구관구) 수녀원 입구에 도착을 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수녀님께 수도원 순례를 좀 하고 싶다고 말씀 드리니 수녀님께서 박물관 문을 열어 주셨다. 남대영 신부님께서 여섯 명의 정녀들과 시작한 수녀원인데 참으로 대단하신 일을 하신 분이셨다. 박물관에서 내가 존경하는 분들의 젊은 시절 사진에 저절로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문희(바울로) 대주교님, 박석희(이냐시오) 주교님, 참으로 안타까운 시간들이었다. 흐르는 세월이야 어찌하리. 아무리 되돌리려고 해도 되돌려지지 않는 것이 세월이니 지나가 버린 세월을 막 되돌리고 싶을 정도의 그리움이었다. 지금 이 대주교님께서는 할아버지가 되셨고 돌아가신 박석희 주교님은 다시는 뵐 수 없는 분. 그런 아쉬움만 가득 안고 박물관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쉬움을 안고 나오는데 수녀님께서는 우리 일행을 너무나 부러워하셨다. 이렇게 나이가 든 시기에 성지순례도 완주하고, 이제는 수도원 순례를 하니 너무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고 하셔서 그 또한 기분 좋은 칭찬이었다.
수녀원 박물관을 나와서 수녀원 이곳저곳을 정말 여유롭게 산책하듯 걸으며 수녀님들이 농사지으시는 것까지 보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수녀님의 초대로 차도 한 잔씩 얻어 마시면서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다가 마침내 저녁기도까지 함께 참석하게 되었다. 참으로 운 좋은 묘한 수도원 순례였다. 사실 처음에 일행 중 한 명인 안나 언니가 ‘수도원에 가서 함께 기도도 해 보면 좋겠다.’고 했을 때 나는 ‘기회가 되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고 했는데, 그렇게 원하고 바랐던 것이 그대로 이루어졌으니 신기하기만 했고 고요하고 평온하고 행복한 기분이었다. 묵주기도와 저녁기도까지 수녀님들과 함께한 뒤 수녀원을 나오는데 우리를 안내해 주신 수녀님께서 문간까지 배웅하시며 손을 흔들어주셨다. 오늘 하루가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사실 111곳 성지순례를 할 때마다 해가 지고 밤이 시작되었는데도 달리고 달려서 스탬프를 찍고 마치 큰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이 “한 건 했다.”며 큰소리 치던 순례에 비해 수도원 순례는 정말 느긋한, 말 그대로 ‘세월아! 너는 물렀거라!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할 다!’라는 식이었으니 이 얼마나 기쁜지.
좋으신 하느님! 오늘도 수도원 순례를 이렇게 행복하고 멋지게 마무리했습니다. 편안하게 마치고 저녁도 함께 나눈 후에 헤어지니 그야말로 천상행복이 따로 없네요. 제가 살아서 이렇게 멋진 인생을 즐기게 해주시고 이제껏 베풀어 주신 당신 사랑에 무한히 감사드리는 밤입니다. 다음에는 또 어떤 기쁜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날까요? 그날이 언제가 될지 기대해 봅니다.
-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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