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일 대림 제1주일 : 마태 24,37-44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오복음 24장 37-44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7 “노아 때처럼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38 홍수 이전 시대에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면서,
39 홍수가 닥쳐 모두 휩쓸어 갈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40 그때에 두 사람이 들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42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43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4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사람의 아들의 재림은 어느 때에 비유되고 있습니까?(37절)
- 홍수 이전 시대의 사람들은 홍수가 닥칠 때까지 어떻게 지냈습니까?(38절~39절)
- 사람의 아들이 재림할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납니까?(40절~41절)
- 사람의 아들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42절~44절)
- 우리가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44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성전에서 나오시며 성전의 파괴를 예고하신 예수님께서 올리브 산에 앉아 계실 때(24,3) 제자들이 따로 예수님께 다가가 그 때가 언제일지 여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종말과 재림에 대한 가르침을 시작하십니다. 그 가운데 오늘 복음은 그날은 아무도 모르니 “준비하고 깨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먼저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본보기로 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창세기에서 강조하는 멸망의 이유인 세상의 타락과 폭력에 대한 이야기(6,11-13)를 빼고,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인간의 일상사 이야기와 그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만 전합니다. 곧 죄의 유무가 아니라 일상사에 빠져 하느님의 때에 대해서 망각하고 사는 현실을 지적하십니다. 노아의 홍수는 인간의 죄로 인해 시작되었지만 사람의 아들의 재림은 죄 때문이 아니라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함으로 인해 시작되고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도둑이 올 것을 아는 집주인의 비유가 이어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인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인과 비신앙인의 차이는 ‘주님께서 다시 오심을 알고 있는가, 없는가?’라고 할 수 있으며, 그들 삶의 차이도 ‘그것을 자각하고 사는가, 아닌가?’에서 드러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2000년간 기다린 우리 가톨릭교회가 오랜 기다림으로 긴장과 열정을 상실한 채 너무 무덤덤해져 버린 것은 아닌지 반성해보아야 합니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열정적으로 간절히 살아갑니다. 그런데 기다림에 지치거나 너무 익숙해져 버리면 게을러지고 그 순간부터 죽음은 시작됩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식어버린 열정과 긴장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깨어 사는 삶이 아닌가 합니다. … 우리는 그 때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준비해야 합니다. 이제 시작되는 대림 시기는 우리의 그러한 현실을 돌아보도록 요청합니다.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 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대림시기를 시작하며 깨어있는 신앙인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묵상해보며, 오실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할지 함께 나누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88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12월 8일 대림 제2주일 (인권주일) : 마태 3,1-12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오복음 3장 1-12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1 그 무렵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다 광야에서 이렇게 선포하였다.
2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3 요한은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4 요한은 낙타 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이었다.
5 그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요르단 부근 지방의 모든 사람이 그에게 나아가,
6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7 그러나 요한은 많은 바리사이와 사두가이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8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9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
10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11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12 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시어,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세례자 요한이 유다 광야에서 선포한 말씀은 무엇입니까?(2절)
- 이사야 예언자는 요한의 모습을 어떻게 묘사합니까?(3절~4절)
-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요르단 부근 지방의 모든 사람은 요한에게 나아가 어떻게 했습니까?(5절~6절)
- 세례를 받으러 온 많은 바리사이와 사두가이에게 요한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8절~9절)
- 세례자 요한 뒤에 오시는 분은 어떤 분이십니까?(11절)
-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그분은 어떻게 하십니까?(12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을 소개하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은 자신 뒤에 오시는 심판자를 소개하며, 자신도 그분을 위해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 소리 같은 존재일 뿐임을 전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오시는 분을 마중할 준비를 해봅시다.
세례자 요한은 유다인들의 땅에서, 그들이 하느님의 사랑과 책벌을 받으며 당신의 백성으로 양육되었던 광야에서, 이민족들의 갈릴래아라고 천대받던 곳에서 예수님께서 선포하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4,17)는 메시지를 미리 선포하며 주님의 길을 준비합니다. 요한은 몸에 털이 많았던 엘리아 예언자를 연상시키는(2열왕 1,8 참조) 낙타 털옷을 입고 가죽 띠를 두른 채 광야에서 얻을 수 있는 정결한 음식(레위 11,22 참조)을 취하며 유다인들에게 첫 마음으로 돌아갈 것을 예언자처럼 선포합니다. 이에 부근의 모든 사람이 그에게 나아가 자기 죄를 고백하고 성령께서 함께하지 않았던(사도 19,2-3 참조) 물의 세례를 받습니다.
그런데 세례를 받기 위해 요한에게 찾아온 이들 중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는 “독사의 자식들아”라는 말로 시작되는 질책을 듣게 됩니다. 그들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 곧 좋은 열매를 맺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지닌 혈통적 자부심, 곧 신앙을 시작한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때문에 심판을 피해갈 것이라는 교만(驕慢)함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혈연적 일치와 유대가 아니라 그가 지닌 하느님을 향한 순수하고 올바른 마음인데도, 그들은 나무뿌리에 이미 도끼가 닿아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점을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오시는 그분을 기다리는 우리의 회개(悔改)가 그들과 같이 외형적이고 기회주의적이지는 않은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요한은 참된 회개가 필요한 그들에게 자신의 뒤에 오시는 메시아 예수님을 심판자로 소개하며 자신의 말을 마감합니다. 그분께서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며(사도 2,1-4 참조) ‘알곡은 곳간에 모으시고 쭉정이는 영원한 불에 태워버리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곧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호소에도 회개의 열매를 맺지 않는 이들은 결국 오시는 분의 손에 맡겨져 최종적으로 영원한 벌을 받게 될 것임을 선포합니다. …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救援)하러 오십니다. 요한은 그것을 준비시켰는데 그의 메시지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은 그 이면인 심판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천 년 전 요한의 선포처럼 오늘도 요한은 그렇게 우리를 준비시킵니다. 오시는 예수님의 구원이 심판이 되지 않게끔 좋은 열매를 맺으며 준비합시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신앙의 여정 안에서 곳간에 쌓을 알곡과 태워 버려야 할 쭉정이는 무엇인지 묵상해보며,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 각자가 회개하고 반성 할 것을 정해서 실천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481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12월 15일 대림 제3주일 (자선주일) : 마태 11,2-11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오복음 11장 2-11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2 그런데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5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6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7 그들이 떠나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
9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10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내가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요한이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2절)
- 요한이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물어본 것은 무엇입니까?(3절)
-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뭐라고 대답하십니까?(4절~6절)
-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에게 요한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십니까?(7절~10절)
- 11절을 함께 낭독합시다.(11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전해 듣고”라며 복음이 시작됩니다. 감옥에 갇혀 있던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듣고 무언가를 확인하기 위해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내어 묻습니다.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오늘 복음은 요한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옥에 갇히기 전에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시켰습니다.(3,1-12) 요한은 오시는 그분께서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시어,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3,12) 영원한 심판자 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회개하여 죄를 고백하는 세례를 베풀며 심판을 준비시켰습니다. 그런데 오신 그분께서 행하신 일이 요한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그리스도, 곧 메시아로서 행하신 그분의 일들이 심판하는 일이기 보다 치유와 구마 같은 구원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8-9장) 그래서 요한은 제자들을 보내어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누군가는 요한이 의심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전하라는 말씀 중 마지막 것이 “나에게 의심¹.을 품지 않은 이는 행복하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좀 과한 평가가 아닌가 합니다. 의심보다는 혼란스러웠다는 정도가 좋을 듯합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의심했다고 하기 보다는 심판하지 않고 구원하시는 그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구원과 심판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인데 요한은 당시대 사람들처럼 심판에만 과하게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전하라고 하시며(4-6절) 당신 자신이 심판하시는 메시아가 아니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이심을 전하십니다. 그리고 구약 성경에서는 예언되지 않은 나병환자의 치유도 전하시며 당신 자신이 구약의 전망을 뛰어 넘는 그런 그리스도 하느님이심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군중에게 말씀하십니다. (요한은)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구약의 중요한 인물인 예언자보다 더 큰 인물로 소개하시고 당신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천국(天國)과 그것을 지향하는 이들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지니는지를 이렇게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십니다. 곧 세상에 천국을 선포하러 오십니다. 그것을 믿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구원이시지만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심판입니다. 그들이 구원이 아니라 심판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예수님의 말씀과 천국을 재단(裁斷)하지 맙시다. 예수님께서는 심판받을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구원받은 것을 기뻐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은 이는 행복하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주님 안에서는 가장 작은 이도 큰 사람임을 기억하며 내 주위에 ‘작은 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선행을 결심하고 실천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91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 다.
1) ‘의심하다’는 의미로 번역된 그리스말 동사 ‘skandali,zw(스칸달리조)’는 일반적으로 ‘붙잡히다’, ‘(걸려) 넘어지다’, ‘화나다’, ‘비틀거리다’ 등의 의미를 전달합니다.
12월 22일 대림 제4주일 : 마태 1,18-24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오복음 1장 18-24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마리아는 누구로 말미암아 잉태하였습니까?(18절)
-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어떤 결심을 합니까?(19절)
- 요셉이 파혼할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누가 나타나 무엇을 말합니까?(20절~21절)
- 임마누엘의 뜻은 무엇입니까?(23절)
- 잠에서 깬 요셉은 어떻게 합니까?(24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마태오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1,1-17)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족보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씀입니다. 마태오복음은 이렇게 예수님께서 다윗의 자손이심을 우선적으로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 복음인 예수님의 탄생 예고에서 한 번 더 강조됩니다. 주님의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찾아가 잉태를 예고하는 루카 복음과 달리 오늘 마태오복음은 요셉의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다윗의 자손 요셉아”라고 부르며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혈통으로는 요셉의 자식이 아닙니다. 그래서 다윗의 자손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마리아와 요셉과의 혼인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요셉의 아들이 되시어 “다윗의 자손”으로 세상에 소개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세상에 오시기까지 ‘요셉의 의로움’이 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이 ‘의로움’이 아닌가 합니다.
마태오복음서에서 의로움은 하느님의 것으로 천국과 함께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으로 드러납니다.(6,33) 의로움은 박해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이들이 반드시 흡족/만족해질 것이고 하늘 나라를 소유하는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임을 예수님께서 보증하십니다.(5,6.10) 의로운 이들은 자비를 베풀 줄 아는 이들로(9,13),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이들이며(13,42) 세상 종말에 불구덩이에 던져질 악한 자들과는 달리 선별될 이들(13,49-50)입니다. 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사람들 조차 형제로 맞아들여 먹고 입고 마시는 것을 나눌 수 있는 이들(25,37-40)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25,46) 예수님(27,19.24) 같은 이들입니다. 이들이 지닌 의로움은 위선과 불법으로부터 멀리 있는 것으로(23,28) 하늘나라에서 일꾼들에게 주어질 정당하고 의로운 품삯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20,4.7)².
예수님의 탄생에 있어서 루카복음이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1,38)라는 마리아의 순명(順命)을 부각시켰듯이, 오늘 선포되는 마태오복음은 요셉의 의로움을 강조합니다. 이 의로움은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가르침과 뜻에 순명하는 몸가짐과 관련이 있습니다. 오시어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예수님(1,23; 28,20)께서 세상에 증거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의로움을 준비하며 성탄을 마중합니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원하지 않는 일이었지만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여 순명했던 경험을 생각해 보고,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셨음을 느낄 수 있었던 순간들을 나누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93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2) 마태오복음에서 ‘의로움’과 관계하여 그 명사 형태인 ‘dikaiosu,nh(디카이오쉬네)’와 형용사인 ‘di,kaioj(디카이오스)’의 용례를 볼 수 있습니다.
12월 29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 마태 2,13-15.19-23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오복음 2장 13-15절, 19-23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13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14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15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9 헤로데가 죽자, 꿈에 주님의 천사가 이집트에 있는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20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다.”
21 요셉은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갔다.
22 그러나 아르켈라오스가 아버지 헤로데를 이어 유다를 다스린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러다가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래아 지방으로 떠나,
23 나자렛이라고 하는 고을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이로써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는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주님의 천사는 요셉에게 어떤 말씀을 하십니까?(13절)
- 요셉은 천사의 말을 듣고 어떻게 합니까?(14절~15절)
- 주님의 천사는 요셉에게 아기와 마리아를 어디로 데려가라고 합니까?(19절~20절)
- 요셉은 무엇을 두려워합니까?(22절)
- 요셉이 아기와 마리아를 데리고 자리를 잡은 고을은 어디입니까?(23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다윗의 자손”(1,1.20)으로 나신 예수님께, “유다인들의 왕”(2,2)으로 태어나신 분을 경배하러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찾아와 경배하고 돌아갑니다. 그리고 요셉의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헤로데가 죽을 때(기원전 4년)까지 이집트로 피신하라고 일러주며 오늘 복음은 시작합니다. 오늘 복음은 그렇게 “다윗의 자손”으로 나신 “유다인들의 왕”이 “나자렛 사람”이 되심을 선포합니다.
요셉은 천사가 전해준 말씀을 따라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합니다. 그리고 헤로데가 죽자, 또 다시 꿈에 주님의 천사가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2,20.21)으로 가라는 말씀을 듣고 다시금 순명합니다. 그리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호세 11,1)는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이 말씀은 북왕국의 예언자 호세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셨던 말씀인데, 예수님의 가족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폭정을 일삼던 헤로데의 아들 아르켈라오스(기원전 4년~서기 6년)를 피해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며 갈릴래아 나자렛에 자리잡게 됩니다. 다윗의 고을 유다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메시아께서 갈릴래아땅 나자렛에 자리를 잡고 나자렛 사람으로 불리게 된 순간입니다. 성가정이 정착한 ‘나자렛 Nazare,t / 나자라 Nazara,’이라는 동네는 발음상 하느님께 봉헌된 사람인 ‘나지르 ryzIn" / nazir’(판관 13,5.7)와 다윗 가문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돋아난 “햇순”을 의미하는 히브리말 ‘네체르 rc,nE’(이사 11,1)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봉헌된 사람이며 다윗 가문에서 나올 메시아이신 “그는 나자렛 사람이라 불릴 것이다.”라는 예언 말씀이 이루어졌음이 선포됩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위협을 겪으셨고 이집트 탈출을 통하여 이스라엘 땅 나자렛에 자리잡게 되었음을 전하는 오늘 복음은 ‘모세와 같은 메시아’(신명 18,15.18)를 기다리던 유다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새로운 모세처럼 드러내며 이스라엘 땅 나자렛에서 새 이스라엘의 역사가 시작됨을 알립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성가정을 통해 구약의 말씀을 이루시는 예언의 완성자로 계시되며(2,15.23), 그들을 이끄신 하느님께 대한 성가정의 신뢰와 순명(15.21.22-23절)이 드라마틱하게 드러납니다.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우리 가족을 이끄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얼마나 순명(順命)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가족 구성원 서로에게 얼마나 신뢰를 갖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아기 예수님과 요셉과 마리아의 성가정이 고난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아 가듯이 우리 가정의 모든 어려움과 고난을 하느님께 봉헌합시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기 위해 우리 각자의 가정에서 필요한 노력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나누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114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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