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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큰 것을 세워야…先立乎其大者
여는 글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 | 월간 〈빛〉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국장

 

몇 년 전 겨울밤이었습니다. 한밤중에 전화를 받고 급히 경대병원 중환자실로 향했습니다. 잘 아는 분의 어머니께서 뇌출혈로 쓰러지셨는데 위독하시다는 것입니다. 병자성사 준비를 해서 중환자실에 도착했습니다. 한밤중의 중환자실은 조용했고, 십여 명의 환자들이 병마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인의 어머니는 이미 의식이 없었고, 출혈이 계속되고 있어서 달리 손쓸 방도가 없다고 했습니다. 가족들은 임종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조용히 병자성사를 드리고 가족들을 위로하고 병원을 나왔습니다. 중환자실의 무거운 공기가 가슴을 답답하게 눌러 찬바람을 쐬며 걷고 싶었습니다. 삼덕성당 쪽으로 걸어가는데 도로 하나 건너서 골목으로 접어드니 거기에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식당과 술집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핫’한 장소로 유명한 그 길엔 많은 젊은이들이 왁자지껄 서로 어울려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연인들이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고민하고, 미래의 꿈을 꾸고, 동아리 모임으로 친교를 나누고 있겠지요. 길 건너 병원에서는 이 순간 마지막 숨을 내쉬며 이승에서의 삶을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여기 젊은이들에게는 죽음이라는 것이 아직 자신과는 상관없는 먼 이야기라고 여겨지겠지요. ‘아, 산다는 게 여기서 저기까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바탕 꿈처럼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우리네 짧은 인생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너무 많은 것을 욕망하고, 너무 많은 것에 마음을 빼앗기며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놓친 채 말이죠. 맹자(孟子)가 이야기했습니다.

 

“먼저 큰 것을 세워야 한다. 그러면 작은 것이 뺏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이가 대인일 따름이다.”1)

 

“큰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가치일 것입니다. 그 큰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반면에 “작은 것”이란 우리 욕망이 불러일으키는 숱한 유혹과 쾌락일 것입니다. 남을 밟고 올라서려는 욕망, 나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욕망, 돈과 명예를 좇아서 인생을 허비하고 쾌락에 탐닉하는 것들은 모두 작은 것입니다. 작은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큰 것을 놓치고 살아가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되겠지요. 그 작은 것이 우리의 삶을 망치고, 진정 중요하고 큰 것을 빼앗아 갈 수도 있으니까요.

2020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로운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내가 세워야 할 인생에서 가장 큰 것, 가장 중요한 것,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지요? 사실 우리는 그 답을 명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사랑”입니다. 지금 나의 삶은 이 “큰 것(사랑)”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 있는지 돌아봅시다.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 22,37-39)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코린 13,2)

 

1) 『맹자(孟子)』, 「고자(告子)」上, 15. “先立乎其大者, 則其小者不能奪也. 此爲大人而已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