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2019 ‘용서와 화해의 해’ 선교신앙수기 공모 최우수작
그물을 던져라!


글 최환용 미카엘 | 형곡성당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강복을 주신 후에 내리시는 신부님의 지엄한 명령을 가슴에 새기며 집으로 향합니다. 집으로 가다보면 도로 양쪽에 과일이나 채소 등을 파는 번개시장이 있습니다. 상인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할머니들이지요. 저는 큰 사고를 당하여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라 계단이 있는 상점에는 잘 안 갑니다. 그래서 길가에 있는 번개시장에서 쇼핑하는 것을 즐겨 이용하는 편입니다. 벌써 몇 년째 단골이다 보니 이제는 서로 덕담도 나누게 되고, 덤으로 주려는 것을 말리느라 옥신각신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그날도 감자 한 바구니와 깐 도라지를 사고 만 원짜리를 내밀자 할머니가 거스름돈 이천 원을 주셔서 받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누군가 저의 뒤통수를 가격했습니다. 심하게 아프지는 않지만 너무나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키 큰 중년남자가 저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는 사람인가 생각했는데, 성당에 나오는 교우도 아니고 어리둥절한 채 그 남자를 바라보았습니다. 다음 순간, 그 중년남자가 저에게 내뱉은 말 한마디에 저는 머리가 텅 빈 듯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야, 이 사람아! 빌어먹으려면 길 건너 햄버거가게 같은 데로 가서 돈을 달라고 해야지 노인들한테 구걸을 하고 있어?” 처음에는 이 남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영문을 모르다가 문득 제 손에 들려있는 거스름 돈 이천 원이 보였습니다. 아마도 그 남자는 할머니가 주는 돈을 보고 제가 구걸을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한 것 같았습니다. 저는 너무나 치욕스럽고 신세가 처량하여 대꾸도 못한 채 눈물만 그렁거리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저만큼 당황하신 할머니 두 분이 나서서 그 남자의 무례함을 나무라며 사실을 설명하느라 마치 싸우는 것 같았습니다.

그 당시에 제가 입은 마음의 상처는 평생 동안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아 두려웠습니다. 불과 삼십분 전만 해도 ‘주님의 기도’를 암송하며 용서를 다짐하고 나왔는데 왜 이렇게 제 마음은 넓어지지 않는지 안타까웠습니다. 우울한 마음을 안고 휠체어를 돌려 집으로 향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중년 남자가 제 앞을 가로막고 서서 천천히 무릎을 굽히며 저와 눈높이를 같이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저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서는 미안한 마음이 가득 넘쳐났습니다.

 

‘강철.’ 키 큰 그 남자의 이름입니다. 알고 보니 제가 사는 아파트의 옆 동으로 이사 온 지 두 달 정도 되었답니다. 가족은 논술선생인 부인과 초등학생인 외동딸을 두었다고 합니다. 토요일 오후에 그는 가족을 동반하고 우리집을 찾아왔습니다. 일요일에 발생한 사고에 대해 사과도 할 겸 가족을 인사시키러 왔답니다. 우리 가족도 소개하고 소주 한 잔 주고받으며, 이런저런 대화 끝에 종교에 대해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그의 안색이 갑자기 굳어지더니 자기는 무신론자라고 했습니다. 그의 부인 얘기로는 자기 남편이 직장에 다닐 때 교회에 다니는 절친한 친구에게 많은 돈을 사기당하고 그 일로 인해 회사에서도 나와야 했답니다. 그 후부터 남편의 성격이 변하면서 가족이 성당에 다니는 것도 반대하는 바람에 6년째 냉담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부인 마리아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으며 그들 부부의 예쁜 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제 마음은 전교에 대한 열망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의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전교를 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요?”라고 하자 그의 부인이 펄쩍 뛰었습니다. 몇 년 전에 성당에 나가자고 말을 꺼냈다가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상자에다가 성모상과 십자고상 등 성물을 몽땅 담아서 문밖에 내놓는 바람에 혼비백산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말도 꺼내지 못하고 몰래 묵주기도만 드리며 좋은 날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다음 날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강철같이 굳은 저 가정에 주님의 따뜻한 은총으로 성가정이 되게 해 주십시오.”하고 호소했습니다.

며칠 후 그의 가족이 옥수수를 가지고 왔습니다. 정다운 얘기를 나누며 옥수수를 먹던 그가 거실 한쪽에 놓여있던 바둑판을 보더니 반색을 했습니다. 대뜸 저를 보고 바둑을 어느 정도 두느냐고 물었습니다. 원래 바둑을 두는 사람은 겸손을 미덕으로 알기에 “조금 둘 줄 안다.”고 했더니 당장 바둑판을 들고 왔습니다. 요즘은 기원에 나가봐도 상대할 만한 고수가 없어서 인터넷 바둑을 두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대단한 실력을 지닌 고수였습니다. 그러나 어쩌랴! 제가 전국바둑대회에 나가 우승을 한 초고수인 것을 알 리 없는 그는 자기 실력을 과신하고 저에게 내기 바둑을 두자고 했습니다. 저는 그 순간에 주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내기 바둑을 두는 죄에 대한 꾸중은 나중에 듣겠습니다. 제가 전교의 도구로 바둑을 두고 싶으니, 주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저의 탈렌트로 사용하겠습니다.”하고 기도했습니다. 제가 그에게 “무슨 내기를 할까?”라고 질문을 하자 “두 가족이 외식하는 식대를 부담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얼마나 자신만만해 하던지 자신이 질 거라는 생각은 아예 없었습니다. 그에게 “좋다. 내가 지면 일곱 명의 식대를 책임질 테니 대신 당신이 지면 성당에 나와 교리를 배울 수 있겠느냐?”고 그물을 던지니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승낙을 했습니다. 어차피 자기가 이길 게임이니까 가볍게 약속을 해버리고만 것이었습니다.

한 시간 반이 흐른 후 두 가족 일곱 명은 외식을 하러 차에 올랐습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떠들썩했고, 특히 그의 부인 마리아는 환한 미소로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제가 바둑에 패해서 밥값을 내야 하는 신세가 되었냐고요? 그럴 리가요. 물론 밥값은 제가 당연히 내는 거지만 그날 만찬은 옹고집 강철이 성당에 나와 교리를 배우기로 한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던 것입니다. 모두가 즐거움에 싱글벙글하는데 유독 한 사람, 그는 멍하니 차창 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모양이었습니다. 성당에서 교리를 배워야 한다는 사실이 문제가 아니라, 도대체 자기가 어떻게 바둑에서 질 수 있었는지 납득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조용히 성호를 그으며 주님의 은총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한 그물에 그에 대한 전교와 그의 아내 마리아와 예쁜 딸이 냉담을 풀어 성가정을 이루게 해 주신 주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새롭게 태어나던 날, 가슴에 세례명을 달고 환하게 웃고 있는 그에게 모든 교우들은 아낌없는 축하의 박수를 선물했습니다. 예쁜 꽃다발을 한아름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그의 부인 마리아와 딸의 모습이 더욱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성모 마리아님, 저의 기도가 이루어지도록 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사실 저에게는 하느님이 주신 탈렌트가 하나 더 있는데요, 그것은 제가 항상 타고 다니는 휠체어입니다. 제가 움직일 때마다 차량봉사를 해 주는 요양 보호사가 있습니다. 일요일에 성당에 갈 때도 함께 동행하다 보니 삼 년이 지나 지난해에 세례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자매님한테는 외아들이 있는데 결혼을 하여 귀여운 두 딸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아들 가족 네 명이 어머니의 세례 받는 모습을 보고는 감명을 받아 가족 모두가 지금 현재 교리를 받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 5장 10절에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처럼 저는 오늘도 휠체어를 타고 사람들을 만납니다. 누가 또 제 뒤통수를 때려 주지 않으려나 기대하면서. 하느님 감사합니다.

 

* 이번 호부터 선교신앙수기공모전 당선작을 연재해 드립니다. 많은 관심과 애독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