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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도원 순례기 ⑤
은총의 빛 가운데 머물다


글 김윤자 안젤라 | 선산성당

 

오전 9시 선산성당에서 칠곡군 왜관읍에 자리한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으로 출발하면서 성지순례에 함께했던 율리아나 형님이 함께하지 못해 무척 아쉬웠지만 안나 언니, 헬레나 형님, 나 이렇게 셋이 가게 됐다. 10시가 조금 지나 수도원에 도착을 했는데 가는 길도, 수도원 건물도 많이 바뀌어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옛 건물이 그대로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대성당 문을 열고 들어가니 우리를 감싸주는 듯해 아늑한 기분으로 기도를 드리는데 잠시 후 안내실 담당 펠릭스 수사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반겨주셨다. 문득 20여 년 전의 김구인 신부님 생각이 나서 혹시나 만나 뵐 수 있을까해서 수사님께 여쭈었더니 마침 수도원에 계신다며 연락을 취해 주셔서 신부님을 뵐 수 있었다. 너무나 반가운 얼굴로 환히 웃으면서 반겨주시는 신부님과 우리 일행은 응접실에서 차도 마시면서 수도원의 역사와 옛날 신학교 시절의 이야기, 북한에서 순교하신 분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응접실을 나와 우리들의 수도원 순례를 기쁘게 도와주시는 김구인 신부님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우셨다. 머리는 벌써 백발이신데 우리가 순례자인지 신부님이 순례자이신지 도무지 모를 정도로 당신이 더 신이 나셔서 수도원 곳곳을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게 앞서 다니시면서 설명해 주셨다. 그렇게 수도원을 다니다 보니 벌써 낮기도 시간이 임박해 왔다. 신부님께서 낮기도 시간이 다 되었으니 참석을 하라고 하셔서 우리는 신부님의 안내로 대성당으로 들어섰다. 참으로 장엄하기까지 한 낮기도 시간이었다. 기도를 하는 도중에 몇 번이나 하느님의 뜻을 되새겨 보면서 옆에 있는 안나 언니를 통해 하느님께서 부족한 나를 너무 아끼고 사랑해 주셨다는 생각에 저절로 눈물이 났다. 기도시간 내내 가슴시리도록 행복한 마음으로 나의 남은 생을 하느님 당신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당신 뜻대로 열심히 살아가도록 노력하겠다고 기도드렸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순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김구인 신부님의 멋진 말씀 한마디였다. “상대방의 일을 탓하지 말고 그냥 그 사람이 하는 대로 그대로 봐 주어라. 먹기 싫다고 하면 그냥 그렇게 봐 주고, 하기 싫다고 하면 그대로 봐주어라. 상대방을 고쳐 주려고 애쓰지 마라.”는 말씀이셨다. 너무나 좋은 말씀이셨다. 우리는 모두 남이 나처럼 되지 않는다고, 남이 나처럼 똑같이 하지 않다고 화를 내고 그 사람을 싫어하고 미워하는데, 신부님의 말씀처럼 그렇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면 되는 것을 세월이 이렇게 흐른 오늘에서야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되다니….

 

그렇게 기분 좋게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을 나와서 다시 대구광역시 북구 사수동에 있는 툿징포교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수녀원 문간에 들어서자 옛날에 베다 신부님께서 사셨던 기억이 떠올라 할아버지 신부님들의 모습이 막 스쳐가기 시작했다. 최 비안네 신부님 이야기도 너무나 재미있었는데, 신부님께서 본당에 계실 때 투망(낚시의 일종)을 좋아하셔서 투망을 들고 나가시면 본당 사무장님께서 따라 나서시곤 했단다. 본당 바로 옆이 낙동강인지라 신부님께서 투망을 휙 던지고 나면 이미 연세도 있으신지라 당신 몸이 덩달아 끌려들어가고 마는 것이었다. 그러면 본당 사무장님께서 신부님을 붙잡고 다시 투망을 치는 동안 미사시간에 늦어져 본당으로 돌아오면 신자들은 그때까지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신자들이야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겠지만 그 옛날에는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옛 기억을 떠올리며 문간을 통과하니 수녀님께서 마중을 나와 계셨다. 수녀원 입구에 들어서는데 마침 정하돈 수녀님께서 나를 알아보시고는 얼마나 반기시던지! 서 수녀님의 안내로 성당과 전시실을 둘러보고 차도 함께 나누다가 30년 전 대구관구 대신학원에서 함께 근무했던 김 다니엘라 수녀님을 뵙고 싶다고 했더니 서 수녀님께서 흔쾌히 승낙해 주셔서 다니엘라 수녀님을 뵐 수 있었다. 이 또한 얼마나 반갑던지, 우리는 다시 신학교 근무하던 시절로 되돌아간 듯 했다. 신학교에 근무할 때 당시 학장님이셨던 정달용 신부님께서는 어느 날 감기로 골골하다 지각을 하게 된 리체와 나를 보고 “햇볕이 아주 잘 드는 날, 둘다 빨랫줄에 널어서 바짝 말리면 될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며 감기가 뚝 떨어지기를 바라셨다. 또 정달용 신부님의 학장 취임식 때는 정 신부님, 리체, 나 이렇게 셋이 모두 정장을 맞추어 입고 취임식에 참석하고 사진도 찍고 파티에도 참석했었는데…. 그 사이에서 수녀님께서 수녀원 뒷동산을 꼭 보여주고 싶다고 하셔서 다함께 뒷동산으로 올라가서 산책을 했다. 내려오는 길에는 길이 아닌 동산 밑으로 내려오다 곧 굴러 떨어질 것만 같아서 기분이 아주 아슬아슬했지만 그 맛도 기가 막히게 좋았다. 그렇게 수녀님 두 분과 신나는 순례를 하면서, 순례라기보다는 옛날로 되돌아가서 신나게 놀다 온 것 같은 행복한 기분으로 칠곡군 동명에 있는 한국 성모의 자애 수녀회로 발길을 돌렸다.

 

한국 성모의 자애 수녀회(본원)는 “대구대교구의 제6대 교구장이신 고 서정길 요한 대주교님께서 한국전쟁 후 궁핍한 사회 여건에서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노약자들을 돌보고자 동정녀공동체를 시작하셨고, 1961년부터 칠곡 동명에 성가양로원을 개원하면서 기도와 봉사활동을 통한 형제적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되었다. 역사의 발자취 안에서 크고 작은 시련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크신 하느님의 섭리와 성모님의 따뜻한 돌보심으로 뿌리를 내려 2002년 대구대교구 소속 수녀회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나도 익히 알고 있는 수녀회지만 이렇게 찾아가는 건 처음인 데다 한티순교성지로 향하는 길목에 있어 찾아가던 중에 또 다시 옛 추억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는 길목이 바로 서정길 대주교님과 이기수 몬시뇰께서 노년의 삶을 사신 곳이기 때문이다. 그 시절 할아버지 신부님들과 서정길 대주교님께 들렀다가 이기수 몬시뇰께로 가면 몬시뇰께서는 그렇게 나를 반겨주셨다. 이유는 한 가지, 내가 차를 몰고 할아버지 신부님들을 모시고 몬시뇰을 찾아뵙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나면 모두들 번개같이 나오셔서 내 차에 올라타시고는 여기저기 다니자고 하셨으니, 그때의 할아버지 신부님들은 참으로 다정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 종일 여기저기 다니자고 하셔도 어느 한 분도 ‘그만하고 집에 갑시다.’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안 계셨다. 무섭다고 소문이 나 있는 이종흥 몬시뇰, 최병선 신부님, 전석재 총장님, 강찬형 신부님…. 그분들은 참으로 신기할 정도로 순순히 이기수 몬시뇰의 뜻에 따라 주셨다. 몬시뇰께서 내 기억에도 잊히지 않을 말씀으로 심부름을 시키신 일도 아련히 떠올랐다. 할아버지 신부님들을 모시고 몬시뇰께 들르면 차를 한 잔씩 나누시다가 성당에 가시고 싶을 때는 꼭 수단을 입고 가셨는데 나에게 수단을 가져 오라는 말씀을 “안젤라야! 가서 신부 두루마기 가지고 온나.”라고 하셨다. 내가 그걸 알아듣지 못해 여기저기 찾을라치면 전석재 총장님께서 “신부 두루마기가 니는 뭔지 아나? 신부 두루마기는 수단을 보고 그란다.”라고 알려주시기도 하셨고, 더운 여름날에 당신 혼자 계실 때는 전기요금 아낀다고 부채만 사용하셨는데 우리들이 가면 손님 접대를 하신다고 선풍기를 틀어주시려고 나에게 선풍기를 가져 오라고 하시면서 “안젤라야! 가서 전기부채 좀 가지고 온나.”라고 하시는 거다. 그러면 내가 그걸 알아듣지 못해 온 방을 찾아 헤매면 전석재 총장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면서 “안젤라야! 전기 부채가 선풍기다.”라고 하시곤 했다. 또 마당에 우물이 있는데 몬시뇰께서 두레박을 거꾸로 들고 아래로 휙 던지면 물이 두레박에 가득 담아진다고 하시면서 나에게 몇 번이나 복습을 시키시는지…. 그래서 내가 해보려고 하면 당신이 먼저 두레박을 거꾸로 휙 집어던지시며 더 신나 하셨으니 나는 두레박을 던질 겨를도 없었다. 그렇게 할아버지 신부님들의 사랑을 넘치도록 받고 다니던 그곳을 수십 년이 흐른 뒤에 지나게 되었으니 어찌 내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아련히 떠오르는 옛 기억들을 뒤로 하고 수녀원에 도착하니 수녀님들은 모두 볼일이 있어 출타하시고 한 분도 계시지 않았다. 아쉬워하는 우리를 보고 근무 중인 요안나 자매님이 나오셔서 성당과 수녀원을 안내해 주셔서 편안하고 여유로운 기분으로 수녀원을 순례할 수 있었다. 수녀원 뒤편에서는 토종닭도 키우고 있었는데 그 또한 정겹기만 했다. 그렇게 수도원 순례를 마치고 다섯 시가 다되어 우리는 무사히 선산에 도착했다. -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