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성탄에 수도자들에 관한 이야기 두 가지를 접했습니다. 하나는 KBS에서 방영한 “세상 끝의 집”이란 프로그램으로, 상주에 진출한 카르투시오 봉쇄수도원의 수사님들 이야기입니다. 또 하나는 가톨릭평화신문에 소개된 대명동에 있는 까말돌리 수도원의 수녀님들 이야기였습니다. 둘 다 봉쇄 수도원이라는 공통점이 있네요. 카르투시오회 수사님들은 엄격한 침묵 속에서 기도와 노동 생활을 하며 극도의 청빈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 한 번 식사를 만들어 먹는데, 금요일은 밥과 물만 먹는다고 합니다. 까말돌리회 수녀님들도 엄격한 채식에 저녁식사는 하지 않으며 저녁 7시 30분에 취침하고 자정에 일어납니다. 이분들의 삶을 아주 조금 엿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이분들의 청빈하고 절제된 삶은 끝없는 욕망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 대한 보속(補贖)처럼 느껴집니다.
오늘날에는 ‘먹방(음식을 먹는 방송)’이 모든 미디어를 장악하고, 맛집을 찾아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삶의 큰 행복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더 가지고, 더 높아지고, 더 채우려고만 합니다. 이런 세상에 가장 가난하고, 가장 낮고, 가장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구세주의 성탄을 보내면서 나의 삶은 어떠한지 돌아봅니다. 구세주의 오심을 알아보고 맞이한 이들도 이처럼 가난하고 낮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두 수도원의 삶을 보면서 불가(佛家)의 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점심(點心)’입니다. 아침과 저녁 사이에 먹는 점심이라는 말은 원래 불가 선승들이 수도를 하다가 시장기가 돌 때 ‘마음에 점 하나 찍듯’ 먹는 간단한 음식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하루에 세 끼의 식사를 하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아침, 저녁 하루 두 끼를 먹는 게 일상이었지요. 점심(點心)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나라에 덕산 선감이라는 유명한 스님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금강경에 능통해 『금강경청룡소초』라는 유명한 주석서를 쓴 저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남방에서 선종(禪宗)이라는 새로운 교풍이 생겨 책은 읽지 않고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주장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의 책을 등에 짊어지고 남쪽의 유명하다는 선종 스님을 찾아가 담판을 짓기로 했습니다. 절에 다다를 무렵 배가 너무 고파졌습니다. 마침 길가에서 떡을 파는 할머니를 만나 점심으로 떡 한 조각만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스님 등에 짊어진 게 무엇인지 물었고, 덕산 스님은 뿌듯하게 여기며 금강경을 주석한 책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질문을 하나 할 테니 질문에 답을 하면 떡을 주겠다고 했지요.
“금강경에 보면,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했는데, 그래, 스님은 지금 어느 마음(心)에 점(點)을 찍으려고 하시오?”1)
점심(點心)이라는 말이 ‘마음에 점을 찍다.’라는 말이니 점심을 달라는 스님의 말을 받아 마음의 본질을 물은 것입니다. 할머니의 내공이 보통이 아니지요. 덕산 스님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나도 점심으로 떡을 줄 수가 없소.” 결국 스님은 점심을 얻어먹지 못하고 길을 떠나야만 했지요.
오늘날의 점심은 마음에 점 하나 찍듯 간단히 먹는 식사가 아닙니다. 점 하나가 아니라 배가 터질 만큼 많이 먹고, 맛있는 것을 찾아서 먹습니다. 욕망이라는 것은 채우려고 하면 할수록 커지는 요술 주머니 같습니다. 반면에 절제(節制)를 통해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욕망을 조절해 나갈 수만 있다면 나는 욕망의 노예가 아니라 내 몸, 내 마음의 온전한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곧 사순시기가 다가옵니다. 마음이 욕망에 끌려가도록 내버려두지 말고, 마음에 점 하나 찍으면서 잘 다스려 마음의 주인이 되어야겠습니다. 욕망을 이길 수 있는 힘은 바로 절제에 있습니다. 나의 욕망을 낮추고 줄여, 그 힘으로 가난하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돌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루카 6,45)
1) 『선학의 황금시대』, 도서출판 천지, 217쪽. “金剛經道, ‘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 未審上座點那個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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