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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치유의 해’
치유와 회복의 사이


글 이영승 아우구스티노 신부 | 통합의료진흥원 전인병원 원목 담당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낯선 천장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는 깨닫죠. ‘아! 나는 아직도 여기에 누워있구나.’하고 말이죠.”

내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아침에 눈을 뜨는 것만으로도 다시금 깨닫는다는 한 환우 분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매일 밤, 잠들 때에는 내가 완전히 나아 있기를, 내 손길이 서려 있는 집으로 돌아와 있기를 꿈꾸지만 현실은 늘 낯선 천장 아래에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가장 아프게 한다는 그 분의 말씀이 병실 천장을 바라볼 때마다 생각이 납니다. 그러면서 매일 아침마다 내 체취가 서려 있는 잠자리에서 눈을 뜨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환우 분들을 만나 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또 그분들이 가장 바라는 것을 듣다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회복, 그리고 자신의 자리로의 복귀입니다. 왜 이런 병을 앓게 되었을까 하는 누군가를 향한 공허한 원망은 오랜 병원 생활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회복과 복귀에 대한 갈망이 더 유익하다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며 깨닫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회복될 수 있을까?’ 다시 내 삶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받고 살아갑니다. 그럴 때면 말 많은 저도 말문이 막혀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까요? 어떻게 위로하고 지지해 드려야 할까요?

가장 좋은 것은 함께 있어주고, 함께 기도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늘 마음 한편은 허전하기 짝이 없습니다. 진정한 치유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고, 우리 육체의 회복을 돕는 것은 최신 의술을 가진 의료진들이겠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는 것이 언제나 원목 신부로 살아가는 저의 몫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 분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서 저도 분명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그런 생각 말이지요.

그런 생각에서 출발하고 또 시작된 것이 바로 전인병원에서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마다 진행하고 있는 ‘치유와 회복을 위한 기도회’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힘내세요.”라고 말씀드리고 돌아서는 것보다 실제로 함께 모여 기도하고 치유의 은총을 청하는 자리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말이지요.

무더웠던 2018년 7월, 처음으로 기도실에 모인 환자 분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무엇을 하는 모임인지도 모르고 단순히 ‘기도회’라는 소리만 듣고 오셔서 뭔가 기적 같은 치유의 은사가 펼쳐질 것이라는 그런 기대에 부푼 표정들이셨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첫 ‘치유와 회복을 위한 기도회’는 말 그대로 치유에 관한 복음을 듣고 묵상을 하고 다함께 아픈 이들을 위해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는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미사 중에 저는 기도회의 의미와 이유를 말씀드리고, 한 분 한 분 안수를 드렸는데, 불현듯 이 기도회는 하느님께서 더 의미 있는 방향으로 이끌어 주시리라는 믿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오신 분들에게 다시 한 번 말씀드렸습니다. 이 기도회가 여러분에게 치유와 회복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이지요.

그렇게 한 달 두 달, 돌이켜 보면 회를 거듭하면서 지금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기도회’로 자리를 잡기까지 인도자로 함께해주셨던 많은 신부님들의 도움과 기도회에 함께하셨던 분들의 선한 지향이 큰 바탕이 되어온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내가 가장 아프고, 내가 제일 불쌍하고, 내가 가장 먼저 은총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참석했던 환우 분들과 보호자 분들은 매달 인도자로 함께해주시는 신부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 나도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수 있구나! 나도 누군가의 회복을 위해 은총을 청할 수 있구나!’를 깨달아 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실제로도 ‘치유와 회복을 위한 기도회’는 그런 기도의 교환을 목격하게 됩니다.

기도회에 참석하신 분들은 자신들처럼 아픔의 시간을 겪으셨던 신부님을 위해서 기도하고, 이어지는 미사 중에는 신부님들이 그 분들을 위해 다시 하느님의 은총을 청하며 미사를 봉헌하고 안수를 드림으로써 서로가 서로에게 기도를 드리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은총의 자리가 된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 기도회가 치유와 회복 그 사이에 있는 무언가라고 생각합니다. 은총을 받으러 왔다가 은총을 청하는 사람이 되어 돌아가는 그 분들의 모습은 분명 내일은 익숙한 천장 아래에서 눈을 뜰 수 있으리란 희망을 품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희망이 어떻게 보면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치유와 회복의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굳었던 팔다리가 기적처럼 움직이고, 구부정했던 허리가 펴지는 기적이 아닌, 마음의 아픔과 영혼의 상처를 낫게 하는 자리로 이 기도회가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라봅니다. 더 이상은 외롭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진정한 기도’로 이 시간들이 채워지길 희망합니다.

저는 오늘도 치유와 회복 사이에서 고민하고 또 기도드립니다. 혼자서는 더 이상 어떤 기도도 드릴 수 없다고 느껴질 때 이렇게라도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리면서 말이지요. 제가 환우 분들에게 자주 드리는 말씀을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들에게도 드리고 싶습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도 하느님과 함께하면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무슨 일이든 하느님께 청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마찬가지로 나 자신만을 위해 기도하려는 마음이 들 때 지향을 ‘우리’라고 바꾸어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 기도의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여러분, 같이, 함께 기도합시다. 혼자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