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우리 세 명이 순례 길에 함께했다. 첫 목적지는 경남 밀양에 있는 가르멜 여자 수도원(성요셉)으로, 기후는 온화했고 이미 봄이 오기 시작했다. 수녀원에 도착하니 뜰에는 노란 민들레와 보라색 제비꽃이 너무나 예쁘게 피어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서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는데 수녀님께서 문을 열어주셨고 수녀님의 안내로 가르멜 특유의 면회실에 들어가 수녀님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수녀님께서는 당신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니까 대기실에서 편하게 차도 마시고 2층 성당에 들러 조배도 하라며 배려해주셨다. 우리는 대기실에서 간단히 다과를 나눈 다음 성당에 들러 조배를 드리고 수녀원을 둘러보면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오늘의 순례를 시작했다. 본래는 조용하고 편안하고 아늑한 수도원이었을 텐데 도시 사람들이 귀농, 귀촌을 하면서 수도원 인근에 전원주택들이 많이 생겨 조금 아쉬운 생각도 들었지만 세상의 변화를 어찌할 수 없는 일, 수도원 뜰에 핀 꽃구경을 끝으로 돌아나오는 길에 수도원을 위해 기도드렸다.
가르멜 여자 수도원을 나와서 삼랑진에 자리한 오순절 평화의 수녀회로 향했는데 들어가는 입구에 장애인 시설이 있어서 헬레나 형님께서 사탕을 나누어 주시고 수녀원으로 올라갔다. 수녀님께서 우리 일행을 보시고는 오늘이 마침 피정 중이라서 다 보여 줄 수는 없고, 성당으로 안내해 주시겠다고 해서 성당에 들러 조배를 드린 후 천천히 수도원을 돌아나와서 바로 옆에 있는 오순절 요셉 자매회(본원)로 향했다. 오순절 평화의 수녀회 바로 옆에 있는 오순절 요셉 자매회에서 우리는 큰 감동을 받았다. 거기에 근무하시는 수녀님께서 우리를 맞으셨는데 몸이 좀 불편하신 분들이셨다. 그런데도 너무나 반가이 맞아주시고 책도 여러 권을 나누어주시며 가져가라고 하시는 거였다. 게다가 그때가 마침 점심시간이라서 우리들 점심 걱정까지 해 주셔서 도시락을 싸 가지고 왔다고 안심하시라 하고는 그 수녀원을 나오는데 참으로 마음이 따뜻해져왔다. 순간적으로 내 자신이 많이 부끄러웠다. 나보다 더 아름답고 건강하게 살아가시는 수녀님들의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다시 진주에 있는 작은 자매 관상 선교회(한국 본원)로 향하다. 수녀원이 마치 길가 바로 옆에 있는 보통의 가정집처럼 생겼다. 수녀원으로 들어가니 아무도 없는데다가 텃밭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듯했다. 성당이 보이기에 조배를 드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인기척 소리가 들려서 나가보니 수녀님이셨다. 우리를 얼마나 반기시던지! 예전에 우리가 쓴 한국천주교성지순례 완주 기사를 가톨릭신문에서 보았다면서, 그 덕분에 수녀님과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대화 중에 깜짝 놀란 것은 이곳 수녀님들은 매년 10월 7일을 ‘제로(0)의 날’로 정해 놓고, 그 이전까지 가진 것 모두를 다 나누고 써 버리기 때문에 오히려 가진 것이 하나도 없어서 늘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또 매년 2월 11일은 ‘빵의 기적의 날’이라는데, 그건 이 선교회를 창설하신 신부님께서 너무 어려워서 아이들에게 먹을 빵을 나눠 줄 수 없었을 때 그 사실을 안 어느 복지가가 늘 빵이 떨어지지 않게 해 주었다고 한다. 그분이 가신 뒤에는 다른 분이 그것을 계속 이어가고 있어서 지금도 방글라데시에서는 그렇게 한다는 이야기를 해 주셔서 너무 놀랐다. 그래서 그 선교원의 모토는 “기도는 불가능이 없게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실 거라며 신나게 웃으시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눈 뒤 수녀원을 떠나려 하자 수녀님께서 우리들 기념사진을 찍어주시며 언제든 지나가는 길에 찾아오라며 환히 웃으시던 그 모습이 한참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렇게 작은 자매 관상 선교회를 나와 고성군 가르멜 여자 수도원(예수의 성녀 데레사)으로 들어가는 길은 눈에 익숙한 곳으로 옛 기억들이 떠올랐다.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서부터 수선화와 참꽃, 매화 등 갖가지 꽃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는데, 안나 언니와 헬레나 형님은 꽃구경 온 사람들처럼 수도원 순례는 잠시 잊은 채 설레는 마음으로 꽃 사진을 찍느라고 바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수도원 순례이니 만큼 순례를 먼저 하자고 제안하고는 우리 일행은 수도원을 둘러보았다. 나오는 길에 너무나 예쁜 꽃들에 두 분 형님이 반하셔서 사진도 찍고 꽃구경도 즐기면서 내려왔다. 다음으로 역시 고성군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를 찾았다. 가는 길이 너무나 익숙한 길이어서 입구까지는 잘 찾아갈 수 있었다. 수도원으로 향하는 길에는 노란 수선화들이 피어 너무나 아름다웠다. 예전에 이곳 수도원은 키위 농사를 많이 지었는데 키위 맛이 너무나 좋았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그렇게 옛 생각에 잠기면서 수도원 성당에 들러서 조배를 드린 후 조용하기만 한 수도원을 벗어나려고 하는데 수사님 두 분이 걸어오시는 모습이 꼭 시골 할아버지 모습처럼 정겹기만 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진동면에 자리한 삼위일체 수도회로 발길을 옮겼다. 시간은 벌써 저녁 5시 5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올라가는 길이 경사가 심해서 안나 언니더러 차가 올라갈 수 있는지 먼저 올라가 보라고 해 놓고 보니 저녁 시간이 너무 임박한 것 같아서 그냥 차를 몰아서 올라가기로 하고 먼저 올라가는 언니를 태우고 꼬부랑길을 따라가니 수도원이 나왔는데, 맨 처음 소개했던 안동의 카르투시오 수도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무사히 수도원까지 올라가서 신부님을 뵙고 인사도 드리고 나오는데, 이곳 수도복도 카르투시오 수도복과 거의 비슷했다. 사실 우리가 수도원 입구에 갔을 때는 저녁 5시 56분으로 신부님께서 6시에 저녁기도가 있다며 저녁 준비를 하시다가 바삐 손을 씻으시면서 멀리서 온 우리를 맞아주셨던 만큼 더욱 잊히지 않을 감동으로 와 닿았다. 해는 지고 있는데 이제 집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 ‘나의 수도원 순례기’는 이번 호로 끝맺습니다. 그동안 좋은 글 써주신 김윤자 님과 애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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