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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시오 디비나 영성 수련기 ①
베드로처럼…


글 서찬석 제르마노 |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신학생

 

〈빛〉잡지 애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서찬석 제르마노 신학생입니다. 신학교 양성 과정 중에는 대학원 1학년을 마치면(신학교를 7년제 학교로 본다면, 대학원 1학년은 여기서 5학년이라 이해하시면 됩니다.) 약 한 달간 피정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저는 2019년 12월 30일부터 2020년 1월 23일까지 25일간 한티 영성관에서 동기 신학생 9명과 함께 렉시오 디비나(거룩한 독서) 피정을 다녀왔습니다. 그리 대단할 것도 없지만, 또 부족한 글솜씨지만 애독자 여러분께 제가 한 달간 피정을 통해 배우고 느끼게 된 것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것은 본래 피정을 마치며 저에게 바랐던 성소에 대한 태도와 결심을 기도로 적어 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들기 시작하자, ‘주님, 저를 구해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마태 14, 27-31)

 

피정을 시작하기 전 용기를 청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성소에 응답해왔던 시간 안에서 스스로 당당하고 앞으로 닥칠 모든 일을 잘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불러주신 성소의 길이라 믿고, 그 “물 위”를 걸어왔지만 늘 무너졌습니다. 두려웠고, “물 위”로 “오너라.” 하신 주님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성소 여정 가운데 하느님 체험을 종종 해왔지만 그 달콤함을 밑천 삼아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했습니다. 이제는 한계라고 느꼈습니다. 무작정 버티면 언젠가 신부가 될 수 있으려니 하는 마음이 주님께 죄송스러웠기 때문입니다.

피정을 시작하고 일주일 동안 말씀 앞에 놓아 본 저의 지난 시간들은 그저 죄와 허물로 누벼 놓은 비루함, 그 자체였습니다. 주님을 ‘빛’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저는 늘 ‘어둠’이 편하고 좋았습니다. ‘빛’은 저를 구석구석 비추어 못난 부분과 약점까지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살펴보시고, 특히 나를 아시는 주님이심(시편 139,1 참조)을 알면서도 말씀을 대할 때마다 발가벗겨진 듯한 기분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피정을 시작하고 정확히 일주일이 지났을 때 “이제는 그만 내려가고 싶습니다. 피정도 성소도 다 그만두겠습니다.” 하고 동반자 신부님께 청했습니다. 그러나 신부님께서는 “고해성사의 은총을 통해 다시 시작해보자.”고 초대하셨습니다. 사실 저의 죄와 허물이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그분의 사랑을 외면했기에 아팠다기보다 제가 주님의 빛 앞에서 발가벗겨진 것이 수치스러웠기에 아팠습니다. 마치 대단한 결심을 한 것처럼 저 자신을 성찰하고, 동반자 신부님께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씀드린 모양새였지만 결국 저는 교만을 떨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물에 빠져들기 시작했을 때’, ‘주님께서 오라 하셔서 간 건데, 빠졌네. 그냥 헤엄이나 치자.’ 하고 생각했었나봅니다. 그리 잘난 사람은 아니었지만 지금껏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해왔습니다. 그리고 잘 해왔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제 손에 움켜쥔 것들을 놓았을 때 온몸에 잔뜩 주고 있던 힘을 풀었을 때 저를 오라고 부르셨던 주님이 느껴졌습니다. 피정 중 체험하게 된 고해성사의 은총을 통해 ‘베드로처럼’ 주님께 소리 질렀을 때 주님의 강한 손이 저를 붙들어 주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후에도 하느님의 사랑을 고백하면서도 지난 시간의 흔적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습니다. “좁은 문”(루카 13, 24)이나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루카 13, 28)과 같은 구절을 묵상하면서 ‘나도 떨어져 나가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주님께서는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저를 불러주셨습니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거듭 일깨워 주셨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머뭇거렸지만 주님께서 저를 불러주시는 시간이었습니다. “내 사랑이 네 죄보다 더 크다. 그저 믿고 따라와라. ‘너는 사랑하느냐?’(요한 21, 16) 그러면 되었다. 나에게 와라.”

그럼에도 한동안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며 주님께로 다가서기만 하면 되는데 말입니다. 그러면서 피정 중, 한 사람의 모습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성 베드로 사도입니다. 예전에 저는 베드로 사도를 보면서 불편하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뭐만 하면 항상 제일 먼저 나서서 뭐든 다 할 것처럼 저러나.’ 하면서 말입니다. 제 눈에 베드로 사도는 책임지지 못할 일에 먼저 나서지만 항상 두려움에 떠는 겁 많은 단순한 촌뜨기 어부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처절하게 무너지고 비참한 자신을 보더라도 이를 피하지 않고, 끊임없이 주님께 매달리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주님을 위해, 주님을 향해 있었던 사람이었고 주님을 ‘정말’ 사랑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주님 앞에서, 주님 안에서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피정을 시작하기 전 주님께 간절히 청했던 용기를 떠올리며 앞으로의 성소 여정 안에서도 ‘베드로처럼’ 살아가길 희망해 봅니다. “주님, 저를 구해주십시오.”(마태 14, 30ㄴ)

 

한 달간의 피정을 마무리하면서 말씀이신 주님께 순종하고 삶의 모든 순간을 주님과 함께 걸어가길 다짐해 봅니다. ‘예, 주님. 저를 부르셨지요?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이번 피정은 주님을 만나고 그분의 사랑을 고백했던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주님의 그 사랑 때문에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 사랑 안에서 주님과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