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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온 편지
청소년들의 루르드 성지 순례, 신앙 체험 현장


글 심탁 클레멘스 신부 |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교구 선교사목

 

 

스트라스부르교구에서는 매년 여름 600여 명의 중·고등부 학생이 부모 곁을 떠나 루르드 성모 성지 순례에 참여하여 더욱 현장감 있는 환경에서 기도와 교리를 배우고 익히며 성모님의 메시지와 베르나데트의 생애를 공부합니다. 그곳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신앙 안에서 찾고,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을 대면하며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거나 재발견하는 소중한 시간을 갖습니다. 프로그램은 미사, 성시간, 성체 행렬, 성체 강복, 성체 거동, 묵주의 기도 촛불 행렬, 침수, 가족과 본당을 위한 중보기도, 개인기도 초 봉헌, 베르나데트에 대한 공부와 순례 등으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우선 동반하는 신부로서 가장 새로운 체험은 알자스의 각 지역에서 모인 중·고등부 청소년들과 자원봉사 교리교사들, 신부와 수녀들이 대형버스에 나누어 타고 대략 17시간(콜마르부터 루르드까지) 동안 이동을 합니다. 침대형 의자와 화장실이 겸비된 2층 대형버스들이 라인강을 따라 북쪽에서 남서쪽으로, 아라비아 대상들 혹은 유목민들이 초목을 찾아 대이동을 하듯 차량 행렬이 이어집니다. 참고로 라인강 북쪽이 하류 Bas Rhin, 남쪽이 상류 Haut Rhin입니다. 두 시간마다 휴식을 취하면서 여덟 시간이 되면 버스 기사님이 바뀝니다. 청소년들끼리의 새로운 첫 만남은 첫 번째 휴게소에서 발생합니다. 대형버스들이 순서대로 도착하면 어색한 첫 대면으로부터 시작하여 활발한 남자 아이들은 그새 지역 색을 드러내는 구호를 외치며 주변의 관심을 끌어당깁니다. 존재감 과시인 셈이죠. 마치 ‘나는 당신의 관심이 필요해요.’라고 외치는 것 같이 느껴지는 것은 그 나이 때 제가 했던 모습들과 교차해서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잠시의 휴식시간이 끝나고 다시 출발하기 위한 인원 확인 과정은 매우 엄격합니다. 버스 내에서는 아침·저녁기도, 묵주기도, 베르나데트의 생애에 관한 비디오 상영, 교황님 이야기 등의 교회와 성인전, 성경 인물과 역사에 관한 영화를 상영하기도 합니다.

아침 7시경에 루르드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호텔 방을 배정받은 뒤 아침식사를 하고 곧바로 프로그램이 시작됩니다. 우선 매년 새롭게 준비되는 생활성가 프로급 밴드팀이 미니 환영 음악회로 팡파르를 울리면서 차내에서 쌓인 피로감과 수면 부족 상태의 사춘기 청소년들을 흥분시킵니다. 두 시간마다 휴식을 하며 깨는 바람에 토끼잠을 자서 피곤해 있을 법한 비몽사몽 상태의 무거운 아침 시간임에도 음악적 자극과 가사에 담긴 메시지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일으켜세우는 듯 했습니다.

이어서 뤽 라벨(Luc RAVEL) 대주교님의 환영 말씀을 시작으로, 그룹 작업을 통해서 각자 자신의 처지에서 또 공동체 차원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여정을 교리봉사자가 인도합니다. 개괄적으로 말씀 드리자면 루르드에 있는 중요한 시설들을 방문하며 각 시설의 존재 목적과 의미를 학습하고 위기의 청소년 시기를 극복하고 있는 젊은 회심자들의 신앙 증언들을 듣기도 하며 신부와 수녀들, 대주교님의 성소 이야기를 경청하기도 합니다. 가장 많은 감동은 바로 이들의 개인적인 신앙 증언들을 들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리고 세족례, 고해성사, 십자가의 길, 촛불 행렬을 하며 묵주기도와 순례 오신 병자들을 위한 자원봉사, 마지막 밤의 생활성가 음악 축제와 함께 마지막 날 출발 전의 야외 파견미사로 모든 일정이 마무리됩니다.

 

에피소드 하나.

어느 팀의 그룹 작업 시간, 저는 제가 속한 지역 각 그룹들의 기록 사진을 찍다가 어느 한 그룹에 끼게 되었습니다. 그 그룹에 유머와 총기 넘치는 인기 짱인 14세 소년이 있었는데 그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고 팀원들 역시 전체 분위기가 매우 침울해 보였습니다. 경청을 하다 보니 그는 자신이 난치병을 갖고 있는데다 부모의 문제 때문에 크게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듣던 친구들과 교리 봉사자가 공감과 동정의 눈물을 머금은 채 점차 표정들이 어두워져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급 유머 소년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가정의 어려움, 아니 정확하게는 어른들의 문제를 자신의 걱정거리로 이야기하며 이 순례의 기도 제목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짠한 고통을 느끼며 ‘이 아이의 속은 아이가 아니구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 교리교사도 펑펑, 모두 줄줄 따라 울고 말았습니다. 8월의 여름 오전 햇살 아래에서 루르드 성지의 그 푸른 잔디밭에 앉아서, 한 소년 개그맨이 그 푸른 풀밭에 모여 앉은 사람들을 스프링클러 대신 고통과 사랑의 눈물로 적시고 있었던 것입니다.

    

각자는 자기 사연을 말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이야기하면서 서로서로 내면의 아픔 한 조각을 공유합니다. 사춘기 소년·소녀들의 꿈과 걱정을 함께 나누며 서로를 축복하며 기도하였습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내면과 영혼까지 마냥 어린 것이 아님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청소년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사연과, 무섭기도 하고 막연하기도 하고 고독하기도 한 개인의 고민을 또래들과 함께 나누기도 하고 서로 경청하고 기도해주면서 더불어 성장해가는 모습을 그날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프랑스의 미래 세대들은 ‘베르나데트와 함께 루르드의 성모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서 회심을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어김없이 성모님의 메시지가 가슴에 메아리쳤습니다. “기도하고 보속하고 회개하여라!” 이 회심의 현장에서 어찌 저 혼자 무심히 구경꾼으로 남을 수 있을까요? 저는 저 자신을 위해 순서를 정했습니다. ‘보속하고 기도하며, 매일 매순간 회심의 여정을 걸어라!’ 이 결심의 잦은 실패들을 보고 세상 사람들은 비웃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패배하지 않기 위해 저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 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능력으로 충만한 축복을 쏟아주시어 저에게는 보속과 기도를 통해서 참 회심의 길을 걷도록 허락해 주시고, 저의 죄뿐 아니라 세상의 죄에 대한 보속에 저를 참여시켜 주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