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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용서와 화해의 해’ 선교신앙수기 공모 우수작 ②
하느님 곁으로 데리고 올 수 있다는 믿음


글 이경희 율리아 | 성동성당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천년의 수도 경주입니다. 경주에는 10개의 성당이 있는데 저는 경주-포항지역의 모태이며 약 93여 년의 역사를 지닌 성동성당에 다니고 있습니다. 저희 본당에는 50사단 예비군대대의 병사들이 종교 활동을 위해 주일마다 방문합니다. 저 또한 젊은 시절 여군에 입대하여 군 생활을 한 경험이 있어 군인들과 공감하면서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넵니다. 그리하여 군종후원회도 알게 되었고 군종후원회에서 군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2016년에는 아들이 입대하여 저도 군인 아들을 둔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 계기로 후원회 활동을 하게 되었고 얼마 후 군종후원회 경주지역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저희 본당에는 매달 첫째 주 월요일 11시에 군종후원회 미사를 봉헌합니다. 군종후원회 회원들이 미사 전례를 담당하고 현역 군종 신부님이 멀리서 오셔서 미사를 집전하십니다. 전에는 미사가 끝난 다음 군종후원회 회원들이 신부님과 함께 간단한 다과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미사에 오시는 신자 대부분이 연세가 높은 어르신들이고 미사를 마치면 바로 점심시간이어서 멀리서 오신 신부님과 어르신들이 미사 후 점심을 함께 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제가 군종후원회 경주지역장을 맡고 나서부터는 매달 후원회에서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카레라이스, 소고기 국밥, 떡국 등을 만들어 3년 동안 계속 대접하고 있습니다.

또 군종후원회 경주지역장이 된 후 성당에 오는 병사들을 관심 있게 살펴보니 그 중에는 신자가 아닌 병사들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때로는 대표 병사가 일이 있어 미사에 함께 오지 못하면 비신자 병사들만 성당에 오는데 그들이 어색한 태도로 미사만 참석하고 간식만 먹고 복귀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렵게 시간을 내어 온 병사들이 정신적으로 무엇이라도 얻어 갈 수 있게 선물을 마련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군인들이 어떻게 교리를 받는지, 어떤 교리책을 사용하는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런 것들을 여기저기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일을 위해 군종 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대구군종후원회 사무장님께도 물어보며 많은 분들께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신자 병사 한 명이 미사시간에 엉뚱한 행동을 해 본당 신자에게 혼이 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 병사는 평소에는 바른 태도로 미사에 참례했는데 아마도 미사의 의미나 예식을 이해하지 못해서 실수를 저지른 것 같았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지금까지 고민만 해 오던 비신자 병사들의 교리 공부와 세례 준비를 직접 추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려니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데다 여건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첫째는 군인들의 교리와 일반 신자들의 교리 과정이 달랐습니다. 훈련소 특성상 병사들은 교리교육을 오랜 기간 받을 수 없어 4주간 약식 교리를 수료하고 세례를 받아야 하지만 자대에 배치되면 약 3개월의 교리를 수료하고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3개월 동안 병사들을 가르칠 교리교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군인교리를 담당할 교리교사를 수소문한 끝에 인근 포항 포병부대 요셉공소의 포항지역선교사들이 군인교리를 담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즉시 그곳에 연락하여 부탁을 하니 흔쾌히 수락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담당 신부님의 허락을 받고 교리교사 한 분이 매주 일요일 아침에 포항에서 경주 성동성당까지 오셔서 교리를 해 주셨습니다.

교리교사가 정해지고 난 다음에는 병사들을 설득하는 일이 남았습니다. 무의미하게 성당을 다녀가지 말고 교리를 듣고 세례를 받도록 권장했습니다. 그래서 세 명의 비신자와 유아세례를 받고 계속 냉담하여 교리를 모르는 한 명의 병사까지 모두 네 명이 예비신자 교리반에 등록했습니다. 제가 매주일 아침마다 성당 차량을 몰고 부대에 가서 병사들을 성당으로 데려오면 세례 받은 병사들은 미사에 참례하고 세례를 받지 않은 병사들은 예비신자 교리교육을 받았습니다. 다른 부대원들은 모두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일요일에 이들 네 명은 훈련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꼬박꼬박 예비신자 교리반에 출석했습니다. 그들의 열성 때문에 교리교사도 한 번도 궐하지 않고 먼 길을 달려와 주셨습니다.

입교한 지 3개월 정도 되었을 때 본당에 세례식이 있어서 본당 예비신자들과 함께 두 명의 병사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병사들이 세례 받는 모습을 보니 마치 30년 전 제가 세례를 받았을 때처럼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병사들의 세례 받는 모습을 보고 본당의 모든 신자들도 기뻐하며 축하해 주었습니다. 이제 우리 본당에도 군인들이 교리를 받고 있다고 알리게 되었고 군종후원회도 홍보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밭에 떨어진 씨앗처럼 그때부터 세례를 받은 병사가 자기 후임들을 교리반에 추천하여 병사들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선임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해서, 혹은 호기심으로 왔지만 그러한 태도와 마음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세례 받은 선임 병사들의 노력과 기도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그 중 한 명은 군 생활이 힘에 겨워 군대를 벗어나려는 정신적 불안 증세를 보였습니다. 주일마다 성당에 착실히 나오던 병사였기에 마음속으로는 걱정이 많이 됐지만 겉으로는 그저 가톨릭 교리를 한 번 들어보라고 한참을 권유했는데 처음에는 주저하더니 결국에는 받아들였습니다. 교리반에 나오면서부터 종교 활동을 하는 친구들과 사귀고 친해지더니 교리에 귀기울이고 마음의 위안을 얻으면서 그 병사의 얼굴이 점점 밝아졌습니다. 그 결과 세례도 받았고 지금은 대대에서 천주교를 안내하는 군종병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올 10월에 전역을 앞둔 그 병사는 벌써부터 제대 후 집 근처에서 다닐 성당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아들을 대하듯이 한두 마디 건네며 다가간 것이 이렇게 좋은 결실로 이어질 줄 몰랐습니다. 생각할수록 병사들이 기특했고, 또 하느님께서 항상 함께해 주셨음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병사들에게 선교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다지게 되었고 이제는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병사들에게 다른 부대원들도 성당에 데려 오라고 독려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병사들을 데리고 오면 그들에게 세례 받기를 적극 권유합니다.

이제는 평탄한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할 즈음 뜻밖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교리를 받을 병사들의 수는 자꾸 늘어나는데 담당 교리교사가 본당 일 때문에 더 이상 교리반을 맡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도와 고민 끝에 얻은 해답은 군인교리나 일반예비 신자교리의 내용이 다르지 않다고 판단하고 본당의 교리교사에게 부탁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본당에서 맡은 봉사가 많아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병사들에게 교리를 지도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찾아다니며 부탁한 결과 다행히 한 분이 승낙을 해 주셨습니다.

두 번째 예비신자 교리반은 다섯 명의 예비신자와 유아 세례를 받은 후 첫영성체를 하지 못한 한 명의 병사를 포함하여 모두 여섯 명으로 시작됐습니다. 지난번 교육은 군인이라는 특수한 사정에 의해 3개월의 짧은 교리였지만 이제는 본당의 예비신자 교리책을 가지고 일반예비신자와 똑같은 교육을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제대를 하더라도 사회에서 냉담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교리교사의 제안이 있었기에 병사들을 설득해 6개월 동안의 교리를 시작했습니다.

새로 교리반이 시작된 후 저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매주일 아침마다 부대에서 예비신자 병사들을 데리고 오면서 한 주 동안 특별한 일은 없었는지, 부대 생활은 괜찮은지 아들을 대하듯이 세심하게 관심을 가지며 묻고 보살폈습니다. 교리교육과 미사가 끝나고 친교의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 간의 유대를 더욱 돈독히 했습니다. 이런 제 마음과 정성이 통하였는지 병사들은 자신들의 고민이나 힘든 점을 털어 놓았고 훈련이나 근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석하기도 했지만 모두들 성실하게 교리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군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힘들어 하던 친구도 열심히 교리를 들으면서 이제는 군 생활을 끝까지 하겠다는 마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의 변화와 열정에 담당 교리교사도 주일 아침 교리를 위해 다른 일정을 마치고 서둘러 돌아옵니다. 모두들 열심히 교리를 듣고 하나하나 체험하면서 같이 기도문을 외우기도 하고 서로 물어보면서 병사들의 신앙과 친교가 깊어졌습니다.

이 모든 노력과 인내 끝에 2019년 부활을 맞이하여 다섯 명 중 근무와 훈련으로 교리반에 제대로 참석하지 못한 한 명을 제외한 네 명이 세례를 받았고 첫영성체를 하지 못한 병사 한 명도 첫영성체를 했습니다. 네 명의 세례자 중 한 명의 어머니가 신자인데 오랜 권유에도 응하지 않아 포기를 하고 있었는데 군대에서 세례를 받을 줄 몰랐다고 기뻐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습니다. 감사의 인사를 받고 나서 우리가 최선을 다하여 앞만 보고 선교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하느님 곁으로 오게 된다는 확신과 믿음이 더욱 굳게 생겨났습니다.

세례를 받은 후 그들은 더 열심히 성당을 다니고 있으며 새로운 후임이 올 때마다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세례 받은 선임의 권유로 입대하기 전 사회에서 한동안 냉담 중에 있었던 병사가 성당에 오게 되어 정말 기뻤습니다. 그 병사에게 저는 매주 성당을 나오다보면 전역 날짜가 어느새 뚝딱 눈앞에 와 있을 거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며 회두를 권면하니 고해성사를 보고 영성체를 한 후 지금은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세 번째 교리를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올 성탄 때 세례를 받을 예비신자들입니다. 이번에는 지난번에 근무와 부대 사정으로 세례를 받지 못한 병사와 신입 병사 두 명까지 모두 세 명인데 그들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며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따뜻한 부모님 품을 떠나 낯선 곳에서 떨며 고단한 군 생활을 하는 병사들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하느님의 사랑을 받으며 기쁨에 찬 생활로 변화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군종후원회 봉사의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이 기쁨과 보람이 바로 하느님이 주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은총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면서 남들은 쉬는 일요일이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 성당으로 달려오는 병사들의 발걸음 하나하나에 주님께서 특별한 건강과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내려주시고 이들을 어려움에서 지켜주시기를 늘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