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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 | 월간. 빛.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국장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1997년 독일에서 개봉한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데, 영화 안에서 소개되는 아랍 속담이라고 합니다. 동명의 노래를 김윤아라는 가수가 불러 우리에게 익숙하기도 한 말입니다.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전염병은 역사적으로 많은 비극을 낳았습니다. 14세기에 발병한 페스트(흑사병)는 유럽 인구의 30% 정도를 죽음으로 몰고 갔습니다. 천연두나 콜레라 같은 병도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 갔고, 치료법이 개발된 것은 현대에 이르러서였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병은 인류에게 말 그대로 공포였고 하늘이 내리는 벌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서 전 세계가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구, 경북 지역에 확진자가 많이 나와 지역 사회에 사는 많은 이들이 마음을 졸이면서 어서 빨리 이 사태가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믿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저 사람은 확진자가 아닐까?’, ‘혹시 잠복기여서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나에게 바이러스를 옮기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들은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불안이 서서히 영혼을 잠식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숙주인 사람을 옮겨다니며 병을 퍼뜨리기에 주변 사람의 존재 자체가 공포가 되고 피해야 할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더 서글퍼집니다. 『논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으로서 믿음이 없으면, 그(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가능함을 알지 못한다. 큰 수레에 예(?)가 없고 작은 수레에 월(?)이 없다면, 무엇으로 그 수레를 가게 하겠는가?”1)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사람 사이에 믿음이 없다면 그 사회는 제대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믿음(信)’이라는 연결 고리가 있어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되고, 비로소 사회가 형성될 것입니다. 예(?)와 월(?)이라는 것은 소와 수레를 연결시켜 주는 멍에 같은 것입니다. 큰 수레의 예(?)와 작은 수레의 월(?)이 있어야 소와 수레를 연결할 수 있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믿음(信)’이라는 연결 고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회를 이루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서로 믿을 수 없어 주변 사람들을 불안의 눈길로 본다면 그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지고 결국 우리 삶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제 교회는 전례력으로 가장 중요한 시기인 성주간과 파스카 성삼일, 그리고 부활을 맞게 됩니다. 절망을 딛고 희망으로, 죽음의 세력을 이기고 부활의 기쁨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그분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도 이루어질 것이라 희망합니다. 부활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베드로 사도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주셨습니다.”(1베드 1,3)

 

이 희망은 믿음을 전제로 합니다. 내가 무언가에 희망을 둘 수 있으려면 그 희망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전적으로 믿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믿기에 그분을 희망할 수 있으며, 사람들을 믿기에 사람에게 희망을 둘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주변의 사람들을 믿지 못하게 하면 할수록 우리는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고, 하느님을 향한 희망을 가져 이 시기를 이겨 나가야 할 것입니다. 불안이 내 영혼을 잠식하지 못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봄이 오고 꽃이 피듯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은 반드시 옵니다.

 

“희망 속에 기뻐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며 기도에 전념하십시오.”(로마 12,12)

 

1) 『논어(論語)』, 「위정(爲政)」편, 22장. 子曰, “人而無信, 不知其可也. 大車無?, 小車無?, 其何以行之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