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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온 편지
장례미사


글 심탁 클레멘스 신부 |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교구 선교사목

 

신부 입장에서 볼 때 프랑스의 알자스 교회와 한국 교회의 크게 다른 점 중 하나는 장례미사의 준비 절차입니다. (프랑스 내에서도 교구와 지역 혹은 본당 상황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저의 경험만을 말씀드립니다.)

 

에피소드 하나

첫째, 장례미사 전에 주례할 신부가 상주들과 만나서 장례미사를 함께 준비합니다. 먼저 유가족은 장의사에 연락하고, 장의사는 본당 사무실에 연락해서 장례미사 날짜와 시간을 정하고 신부와 만남 일정을 조율합니다. 신부는 상주들과 최대한 신속하게 만나서 먼저 애도의 마음을 전하고 난 다음, 한두 시간 정도 시간을 할애하여 망자의 약력 소개, 독서, 응송, 복음, 성가(입당부터 퇴장까지), 고별식 때 유가족의 고별사, 문상객들에 대한 감사 말씀 등의 순서에 따라 가족들의 역할을 분담합니다. 이 내용이 망자에 대한 기념집으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주례 신부는 상주가 결정하는 독서와 복음을 받아적고, 망자의 생애에 관한 유가족들의 증언들을 경청하고, 여기에 준해서 그야말로 ‘맞춤형 강론’을 준비합니다. 이 대목이 참 힘들고 기쁨도 큽니다. 추억담을 넘어서 부활 신앙을 중심으로 유가족에게 위로와 희망을 선포하고 형제들 간의 사랑을 강론합니다. 저에게는 각 가정의 분위기와 지역 문화의 이해뿐 아니라 불어 받아쓰기 훈련과 작문 실력이 최고로 발휘되어야 하는 순간입니다.

 

둘째, 이곳에는 연도가 없습니다. 신부로서 특별한 친분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상가 방문도 없습니다. 과거 파리에서 한 가정에 가봤을 때 평소처럼 시신을 침대에 모셔놓고, 그 앞에서 가족들이 애도하며 기도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병풍도 없이 그냥 침대에 주무시듯이 모셔진 상태로 말입니다.

 

셋째, 제 입장에서는 장례미사가 너무 자주 있다는 것이며, 어떤 때는 한 주간에 8대의 장례미사가 있은 적도 있습니다. 주로 오전에 있는 평일미사를 그대로 유지하고 오후 2시 30분에 장례미사 혹은 예식을 합니다. 현재 오베르네 본당에서는 주임과 은퇴 사제 한 분, 그리고 저 세 사람이 역할을 나눕니다. 어쨌든 고령화 사회의 교회라는 점을 실감합니다.

이곳 장례미사를 통해 몸으로 배운 것 중 하나는 ‘현대의 사목은 최대한 신자 개인의 상황에 맞갖게 목자가 유연하게 변신하는 맞춤형 서비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피소드 둘

삼년 전 콜마르(Colmar)의 성요셉 성당에서의 장례미사 관련 추억이 있습니다. 장례 준비 면담을 위해 장남의 가정에 불려갔습니다. 서민적 가톨릭 가정 분위기의 냉담신자 오빠 두 명과 열심한 개신교 막내 여동생으로 구성된 남매들과 며느리들이 저를 맞아 주었습니다. 면담 도중 개신교 막내딸의 가톨릭에 대한 노골적인 거부감과 오빠들에 대한 비판적 말들에 두 오빠는 평소에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저 쩔쩔매며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반응은 하지 않았지만 저는 약간의 모욕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아무도 변호해주지 않았습니다. 막내 상주는 완전 갑이었습니다. 큰 오빠는 저와 여동생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말을 더듬었습니다.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으면 개신교식 장례를 했을 것이라는 둥 성가가 생기가 없다는 둥 신부들의 설교에 카리스마가 없다는 둥…. 개신교 승리였습니다. 인종 차별은 아니고, 종교사적인 감정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예의라고는 조금도 없었고, 개신교식 복음 이해와 카리스마적 설교와 뜨거운 감동의 찬양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과격한 모습이 은근히 안타까웠습니다. 속으로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만 반복했습니다. 이런 불쾌한 장례 준비는 처음이었습니다.

 

드디어 장례미사 당일, 진정 하느님의 현존과 능력과 위로가 상주들뿐 아니라 저에게도 필요했습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당신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소서.’ 천천히 무겁게 시작한 성호경을 긋는 순간, 제 몸이 뜨거워졌습니다. 정성껏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를 의식적으로 진행했습니다. 마치 동작을 하느님 아버지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는 느낌으로 몰입했습니다. 순간순간 ‘제발, 당신이 채워주시고 이끌어 주세요!’ 하며 빌었습니다. 저의 마이크 음성이 저를 다시 울리고, 그것이 감동이 되었습니다. 들리는 것은 분명 제 말이 아닌 것 같아서…. 강론의 첫 번째 청자는 설교자 자신이라고 했던가요?

 

그런데 그 독설가 막내딸이 미사 초반부터 어찌나 울던지…. 그 날카로운 눈빛은 어디가고 거기에는 오직 엄마 잃은 막내딸의 설움에 사무친 흐느낌과 눈물만이 있었습니다. 그 자체로 그녀의 상처를 엿보는 것 같아 만남의 불편함보다는 차라리 연민을 느꼈습니다.

미사 끝에 성당 출구 쪽에서 상주들과 문상객들이 관에 성수를 뿌리는 순간, 그녀는 뚱뚱한 아기 천사의 모습으로 제게 다가와 ‘너무 은혜로운 미사였다.’고 말했습니다. 또 감동! 주님 만세! 날카롭고 직설적인 막내딸의 그 인사말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오빠들의 무덤덤한 그것보다 더 좋았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용기를 내서 선교사로 살면서도 항상 조심스럽고 어려움을 느끼는 저에게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몰입하고 당신께 온전히 맡기고 일치하라.’고 가르쳐 주신 거 맞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