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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현장에서 - ‘우수상’ 수상작 ④
사회복지현장은 희로애락(喜怒哀樂)


글 곽영철 이냐시오 | 대구가톨릭사회복지회 법인사무국 주임

 

“사회복지의 현장에서”는 천주교대구대교구 사회복지회에서 주최한 “2019년 대구카리타스, 우리들의 이야기” 공모전에서 수상한 사회복지사들의 수기를 한 편씩 소개해드립니다. - 편집자 주(註)

 

‘희로애락(喜怒哀樂)’은 사전적으로 사람의 여러 가지 감정을 이르는 말로서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이라는 뜻이다. 다양한 일들이 벌어진 지난 사회복지현장에서 내가 겪은 일들을 네 가지 감정으로 나누어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배움의 기쁨이다.(喜)

새내기 시절에 지역조직사업을 담당하면서 지역 화폐에 관심이 생겼다. ‘지역 화폐’는 물품이나 서비스를 공동체 이웃들과 필요한 것들을 서로 교환하여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지역품앗이 운동이다. 그러나 이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많이 부족했던 나는 그해 여름 휴가 동안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을 안고 대전을 거쳐 서울까지 무작정 복지여행을 떠났다. 지역 화폐가 최초로 설립된 대전의 ‘한밭레츠’를 시작으로 ‘서울시 복지재단’, ‘하자센터’, ‘방화 11복지관’ 등 지역 화폐와 관련된 여러 단체를 방문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방문하기 불과 며칠 전에 연락하고 찾아가는 것이 얼마나 결례이고 잘못된 일인지 충분히 알지만 그때는 무슨 자신감이 넘쳤는지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일단 부딪혔다. 그렇게 며칠 동안 방문하면서 새로운 것에 대한 배움과 지식, 그리고 경험을 채워나가는 하루하루가 기쁨과 자부심으로 가득해졌다. 복지여행을 마치면서 나는 지역 화폐는 지역마다 활용이 다르고 운영방법에 따라 다양하게 확장해 나갈 수 있음을 배웠다. 이렇게 좋아하는 분야에서 직접 부딪히며 배우고 알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두 번째로 스스로의 부족함에 대한 노여움이다.(怒)

사례관리 업무를 맡고 있을 때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매주 금요일 오후에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내에 거주하고 계신 홀몸 어르신에게 밑반찬 배달을 했다. 그분들 중 평소에 말씀은 별로 없으셨지만 항상 “수고가 많아요.”라고 인사해주시던 어르신과 잠깐씩 안부를 나누곤 했다. 어느 날 바쁜 업무로 인해 오후 6시를 넘겨 방문했는데 초인종을 여러 번 누른 후에야 문을 열어주신 어르신께서는 평소대로 일주일치 밑반찬을 전달하는 내게 “고마워요. 매번…. 이제 안 가져다줘도 돼요.” 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어디 멀리 이사 가세요?”라고 여쭈었고, 어르신이 “아. 네…. 하며 말끝을 흘리셨지만 워낙 말씀이 없으신 분이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돌아왔다. 하지만 며칠 후 사무실 전화가 숨가쁘게 울리고 경찰차와 소방차가 내가 금요일에 방문한 어르신 댁 근처로 줄지어 찾아가더니 곧 어르신이 자살하셨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상황은 이랬다. 평소에 지병이 있던 어르신은 최근에 상태가 악화되면서 고통이 점점 심해졌고 담당의사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 그때… “이제 안 가져다줘도 되요.”라고 하셨을 때 내가 조금만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상담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와 함께 나 자신의 부족함에 화가 났다. 그리고 그 마음을 아직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세 번째로 이룰 수 없는 슬픔이다.(哀)

어느 날 라디오 담당자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내에 도움이 필요한 세대가 있는지, 있다면 라디오에 사연을 소개해서 후원금을 모아 전달하자고 제안했다. 기관의 동의 후 가장 적합한 세대를 추천해서 동의를 받은 후 아나운서와 함께 방문 일자를 잡았다.

내가 방문한 세대는 시각장애인 부부와 5세 아들이 있었다. 어머니는 시각장애 1급으로 앞을 전혀 볼 수 없고, 아버지는 시각장애 2급이지만 점점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했다. 매일 아침 부부는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아내는 대학교로, 남편은 일터로 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천천히 걸어간다고 했다. 아내는 시각장애인이지만 배움과 미래를 위해 대학교에서 ‘사회복지’에 대해 공부 중이고 남편은 안마사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놀라운 일이 몇 번 있었다. 하나는 비록 지금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수급비를 받아 생활하고 있지만 반드시 경제력을 갖추어 아들에게는 ‘수급자’라는 낙인을 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회복지 현장에 있다보면 대다수가 기초생활수급의 혜택을 받고 싶어하고, 혹시라도 탈락되어 생계가 위험해질까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혜택을 받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시각장애인 부부의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은 먹먹해졌고 이는 한참 동안 내게 큰 경종을 울렸다. 적지 않은 나이에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아가고 계시는 그 부부에게 경외감이 들었고,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또 다른 하나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아나운서가 “끝으로 소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라고 아내에게 물었더니 “이룰 수는 없지만… 우리 아들 모습을 단 한 번이라도 제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저의 간절한 소원이에요.”라고 대답했다. 인터뷰를 하면서 순간순간 눈물이 날 뻔한 고비를 겨우 넘겼는데 아내의 아주 소박한 소원에 그동안 가까스로 참아왔던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 나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비장애인으로 늘 당연하게 생각하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큰 소원이었다는 것을 사회복지사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반성하게 됐다.

 

네 번째로 함께함의 즐거움이다.(樂)

사회복지의 현장에는 기업체, 봉사자, 이용자, 지역주민 등 많은 이들이 찾아온다. 특히 봉사자는 사회복지 기관을 운영하는 데 꼭 필요한 협력자들이다. 사회초년생이 갓 사회로 나왔을 때 여러 가지의 장점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새로운 시각의 아이디어일 것이다.

 

첫 발령을 받고 나에게 주어진 업무 중 하나는 ‘온라인 모금 활성화’였다. 경험도 없고 너무 생소한 분야라서 처음에는 무척 당황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할지 며칠을 고민하면서도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본다는 생각에 어느새 과업이 아닌 이 과정을 즐기고 있었다. 더욱 즐거운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닌 직원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협력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지금 생각해보면 관장님, 부장님의 관심도 한몫했으리라 생각된다.) 즐거웠다. 온라인 모금함의 숫자가 올라갈수록 도움 받을 주민들의 기뻐하는 모습이 상상되면서 그 즐거움은 배가 됐다. 그러나 온라인 모금 아이템과 작성방법에 대해 혼자서 고민하다 보니 아이디어가 점점 고갈되어 갔다. 그동안의 경험을 비추어 여러 방법을 찾던 나는 성당에서 5년 동안 교리교사를 하면서 경험했던 대학생 봉사단이 떠올랐다. 그렇게 복지관에 개별적으로 봉사오던 학생들과 함께 대학생 봉사단 모임을 시작했다. 대학생들과 매주 토요일마다 토론모임을 가지면서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더욱 재미있었다. 그해 1년 동안 온라인 모금만으로 2천만 원을 모금해서 그들과 함께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들과 아이들에게 필요한 도움과 물품을 전달했다.

그때 나는 확신했다. 혼자서 하는 것보다 같이하는 것이 훨씬 더 즐거운 일이란 걸!

 

 

나는 사회복지의 현장에서 ‘지역 내 이웃들과 공동체를 만들어 소외된 이웃이 없도록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구축해 나가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복지의 현장에서 만들어 낸 다양한 일들이 지역 내 관심과 물적 자원, 그리고 사람들을 모이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이지만 결코 쉽지는 않다. 기쁜 일도 있지만 화나는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지만 즐거운 일도 가득한 이곳이 바로 사회복지의 현장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태 5, 3-4)

 

지금도 다양한 사회복지의 현장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 대구가톨릭사회복지회 직원들과 사회복지를 실천하고 계신 분들에게 나의 글이 작은 위로와 힘이 되길 바라며 더욱 힘찬 내일을 맞이하길 기도한다.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마음에 담아둔 채 떨쳐내지 못한 가슴 아프고 부끄럽게 여기던 일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조금씩 치유를 받고 성숙해 나가는 기회가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