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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살이와 말씀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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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여한준 롯젤로 신부 | 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4월 5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 마태오 27,11-54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오복음 27장 11-54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11 예수님께서 총독 앞에 서셨다.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하고 총독이 묻자, 예수님께서 “네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12 그러나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당신을 고소하는 말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13 그때에 빌라도가 예수님께, “저들이 갖가지로 당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 들리지 않소?” 하고 물었으나,

14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고소의 말에도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총독은 매우 이상하게 여겼다.

15 축제 때마다 군중이 원하는 죄수 하나를 총독이 풀어 주는 관례가 있었다.

16 마침 그때에 예수 바라빠라는 이름난 죄수가 있었다.

17 사람들이 모여들자 빌라도가 그들에게, “내가 누구를 풀어 주기를 원하오? 예수 바라빠요 아니면 메시아라고 하는 예수요?” 하고 물었다.

18 그는 그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자기에게 넘겼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19 빌라도가 재판석에 앉아 있는데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당신은 그 의인의 일에 관여하지 마세요. 지난밤 꿈에 내가 그 사람 때문에 큰 괴로움을 당했어요.” 하고 말하였다.

20 그동안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은 군중을 구슬려 바라빠를 풀어 주도록 요청하고 예수님은 없애 버리자고 하였다.

21 총독이 그들에게 “두 사람 가운데에서 누구를 풀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오?” 하고 물었다. 그들은 “바라빠요.”하고 대답하였다.

22 빌라도가 그들에게 “그러면 메시아라고 하는 이 예수는 어떻게 하라는 말이오?” 하니, 그들은 모두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였다.

23 빌라도가 다시 “도대체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하였다는 말이오?” 하자,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외쳤다.

24 빌라도는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폭동이 일어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받아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말하였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책임이 없소. 이것은 여러분의 일이오.”

25 그러자 온 백성이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질 것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26 그래서 빌라도는 바라빠를 풀어 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주었다.

27 그때에 총독의 군사들이 예수님을 총독 관저로 데리고 가서 그분 둘레에 온 부대를 집합시킨 다음,

28 그분의 옷을 벗기고 진홍색 외투를 입혔다.

29 그리고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분 머리에 씌우고 오른손에 갈대를 들리고서는,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 하며 조롱하였다.

30 또 그분께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분의 머리를 때렸다.

31 그렇게 예수님을 조롱하고 나서 외투를 벗기고 그분의 겉옷을 입혔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러 끌고 나갔다.

32 그들은 나가다가 시몬이라는 키레네 사람을 보고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하였다.

33 이윽고 골고타 곧 ‘해골 터’라는 곳에 이르렀다.

34 그들이 쓸개즙을 섞은 포도주를 예수님께 마시라고 건넸지만, 그분께서는 맛을 보시고서는 마시려고 하지 않으셨다.

35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 제비를 뽑아 그 분의 겉옷을 나누어 가진 다음,

36 거기에 앉아 예수님을 지켰다.

37 그들은 또 그분의 머리 위에 죄명을 붙여 놓았다. 거기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 예수다.’라고 쓰여 있었다.

38 그때에 강도 두 사람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하나는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못 박혔다.

39 지나가던 자들이 머리를 흔들어 대며 예수님을 모독하면서

40 이렇게 말하였다. “성전을 허물고 사흘 안에 다시 짓겠다는 자야, 너 자신이나 구해 보아라.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41 수석 사제들도 이런 식으로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과 함께 조롱하며 말하였다.

42 “다른 이들은 구원하였으면서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군.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시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믿을 터인데.

43 하느님을 신뢰한다고 하니, 하느님께서 저자가 마음에 드시면 지금 구해 내 보시라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으니 말이야.”

44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마찬가지로 그분께 비아냥거렸다.

45 낮 열두 시부터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46 오후 세 시쯤에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하고 부르짖으셨다. 이는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이다.

47 그곳에 서 있던 자들 가운데 몇이 이 말씀을 듣고, “이자가 엘리야를 부르네.” 하고 말하였다.

48 그러자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와 신 포도주에 듬뿍 적신 다음, 갈대에 꽂아 그분께 마시게 하였다.

49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가만,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해주나 봅시다.” 하고 말하였다.

50 예수님께서는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나서 숨을 거두셨다.

51 그러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 땅이 흔들리고 바위들이 갈라졌다.

52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되살아났다.

53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다음, 그들은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에 들어가 많은 이들에게 나타났다.

54 백인대장과 또 그와 함께 예수님을 지키던 이들이 지진과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을 보고 몹시 두려워하며,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하고 말하였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11절-14절)

- 군중은 예수님을 어떻게 하기를 원합니까? (22절-23절)

- 소리치는 군중에게 빌라도가 한 말과 행동은 무엇입니까? (24절)

- 예수님은 군사들에게 어떤 모욕을 당하십니까? (27절-31절)

- 예수님의 머리 위에 붙여놓은 죄명의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37절)

-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무엇입니까? (46절)

-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각 사람의 반응을 살펴봅시다. (47절, 49절, 54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선택의 기회’를 마주합니다. 이른 아침에 울리는 시계의 알람 소리를 듣고 ‘곧장 일어날지, 아니면 5분만 더 누워있을지를 선택하고, 일기 예보를 들으며 ‘카디건 하나를 챙길지, 말지를 선택하고, 점심 식사로 ‘한 상 차려진 정식을 먹을지, 아니면 분식이나 패스트푸드로 간단히 먹을지를 선택합니다. 이런 소소한 선택만이 아닙니다.

‘이사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직장을 옮겨야 할지, 계속 다녀야 할지?’ ‘이과를 가야 할지, 문과를 가야 할지?’ ‘지금 만나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할지, 좀 더 신중히 생각해 봐야 할지?’ 등등…….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를 두고 깊은 고민과 함께, 지인들의 조언도 구하며 신중하게 선택을 하는 일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우리 앞에 새로운 ‘선택의 기회’가 놓여있습니다.

“두 사람 가운데에서 누구를 풀어주기를 바라는 것이오?”

한 사람은 ‘이름난 죄수인 예수 바라빠’이고, 다른 사람은 ‘메시아라고 하는 예수’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죄수 하나를 총독은 반드시 풀어주어야 하는 관례가 있기 때문에, 지금 나의 선택으로 한 사람은 자유로운 몸이 되어 세상으로 나갈 수 있지만, 나에게 선택받지 못한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신중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고민이 깊어지고 있을 때,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바라빠를 풀어주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생각”이라며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도와 달라.’며 요청합니다.

사실 우리는 매일 이런 ‘선택의 기회’와 마주합니다.

내가 ‘좋은 것과 싫은 것’,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 ‘재미있는 것과 재미없는 것.’ 좋은 것, 하고 싶은 것, 재미있는 것만 선택하며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살아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옳은 것과 그른 것’에 대한 선택의 문제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것’과 ‘옳은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만약 ‘하지 말아야 할 것’, ‘그른 것’을 선택한다면, 잡혀 있어야 할 진짜 죄인 바라빠를 풀어주고, 풀려나야 할 진짜 구원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는 잘못된 선택으로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양자택일의 문제!

‘예수 바라빠라는 이름난 죄수냐?’ 아니면 ‘메시아라고 하는 예수냐?’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서 ‘나에게 죄지을 기회를 허용하느냐?’ 아니면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단호히 거부하느냐?’ 하는 문제이며, ‘몸에 밴 악습 앞에 무너지느냐?’ 아니면 ‘악습을 끊어버리고 덕행을 길러 가느냐?’의 문제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유혹이 우리가 죄를 지어 악의 세력에 굴복하도록, 마치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처럼 우리를 구슬립니다.

이런 선택의 기회 앞에 어떠한 ‘구슬림과 요청’에도 굴하지 않고, 예수님을 풀어주라고 소리칠 수 있는 단호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죄인을 묶어두고, 예수님을 살릴 수 있습니다.

“두 사람 가운데에서 누구를 풀어주기를 바라는 것이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삶 안에서 우리 각자에게 주어지는 크고 작은 선택의 기회 앞에서 어렵지만 예수님을 위한 선택을 했던 경험을 묵상해 보며 함께 나누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122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 니다.

 

 

 

4월 12일 주님 부활 대축일 : 요한 20,1-9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요한복음 20장 1-9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9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마리아 막달레나는 언제 무덤으로 갔고, 무덤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1절)

-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달려가서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2절)

- 시몬 베드로는 무덤 안에 들어가 무엇을 보았습니까? (6절-7절)

- 제자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9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무덤은 ‘죽은 사람을 위한 공간’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관점으로 생각해 볼 때, 임종한 시점을 기준으로 현재의 모든 것이 멈추어버린 ‘과거가 묻혀 있는 공간’이기도합니다. 묘비에 적혀있는 수많은 경력과 화려한 업적들은 분명 과거일 뿐이요, 지금부터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채워 넣을 수 없으니, 분명 그곳은 ‘과거의 공간’입니다. 그래서 현재를 살아가는 살아있는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며,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 추억하고 기억하기 위해 무덤을 찾습니다.

과거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며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의 무덤을 찾아간 여인이 있으니,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 막달레나입니다. 그런데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습니다.

작은 빛조차 파고 들어갈 수 없도록 무덤 입구를 단단히 막아 놓았던 큰 돌은 ‘현재와 과거를 분리시키고 있는 경계’요, ‘삶과 죽음을 구분 지어 놓은 경계’이며, ‘지금의 나와 과거의 너를 단절시키는 경계’입니다. 무덤을 막았던 이 돌 때문에 무덤 안에 있는 것은 밖으로 나올 수 없으며, 세상에 있는 것은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돌로 인해 경계가 구분되어 더 이상 서로 넘나들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다는 것!

이것은 현재와 과거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 나와 너의 경계가 사라졌다는 증거입니다.

이제 무덤 안에 있어야 할 돌아가셨던 예수님은 살아나 무덤 밖, 세상으로 나와 계시고, 살아있던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는 무덤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로 경계가 허물어지고, 단절이 극복되고, 분리와 구분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이하는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정치적 성향의 차이로 편이 갈라진 친구, 층간 소음으로 보이지 않는 벽을 쌓아 버린 이웃, 원하는 대로 따라주지 않는다고 등을 돌린 교우, 유산상속문제로 미움과 갈등 속에 있는 부모와 형제, 단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과 비방을 일삼는 수많은 사람들.

과거와 현재, 죽음과 삶의 경계가 무너진 지금!

나만의 무덤을 만들어 혼자 들어가 큰 돌로 입구를 막고 있거나, 다른 사람들을 집어넣고 큰 돌로 막아버리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이지만 무덤을 막았던 돌은 이미 치워져 있습니다.

우리도 내가 막았던 돌을 치우고, 새로운 삶으로 주님의 부활에 동참해야 합니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우리 자신이 아직도 극복하고 있지 못하는 경계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생각해보고, 그 경계를 허문 자리에서 주님과 이웃들과 함께 부활의 기쁨을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129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4월 19일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 요한 20,19-31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요한복음 20장 19-31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 주십시오.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28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30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31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제자들 가운데 오시어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19절)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 넣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22절)

-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을 본 것을 토마스는 왜 믿지 못했습니까? (25절)

- 예수님께서는 믿지 못했던 토마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27절)

- 토마스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어떻게 대답합니까? (28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밥을 먹을 때, 물을 먼저 마시고 첫술을 뜨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밥그릇을 다 비운 다음, 물로 입을 헹구는 사람도 있습니다. 샤워할 때, 머리부터 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몸을 다 씻은 다음에 머리를 감고 온몸의 물기를 닦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엇부터 먹든, 어디부터 씻든, 서로의 방식이 다를 뿐, 그렇다고 틀린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가 선호하는 방식이 있고, 익숙한 과정이 있고, 더 편한 순서가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믿을 때’, 의심을 풀어주고 믿음을 더해 주는 최고의 방식은 직접 ‘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당신을 제자들이 믿게 하려고, 그들 가운데 서시어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십니다.’ 보여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드레 뒤, 주님께서는 다시 나타나시어 토마스에게 이르십니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역시 이번에도 예수님께서는 눈으로 보는 것, 손으로 만져보는 것이 ‘믿기 위한’ 가장 쉽고 정확한 방법임을 아시고 친히 그 방식을 선택하십니다. 이렇게 믿기 위해서 ‘보고 만지는 것’이 당연하고 쉬운, 그래서 제일 선호하는 ‘세상의 방식’입니다. 제자들이 의심을 버리고 믿게 하려고 주님께서는 친히 ‘세상의 방식’을 선택하셨습니다.

아직은 세상의 방식에 더 익숙한 제자들을 위한 배려가 아닐까요?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은 믿음에 대한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방식’을 가르쳐 주십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보지 않고도 믿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 세상의 방식에 익숙해진 사람은 ‘보지 않고도 믿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합니다. 보는 것이 믿기 위해 제일 쉽고 빠른 방식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보고서야 믿는 세상의 방식’이 당연하고 합리적이며, 익숙하고 편합니다.

하지만 하느님 나라의 방식을 더 선호하는 사람은 ‘보지 않고도 믿는 것’이 낯설고 불편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방식을 더 선호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어, ‘하느님 나라의 방식’을 알려주십니다. 이제 우리가 하느님 나라의 방식으로 주님께 다가가야 할 차례입니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예수님처럼 상대방을 위한 배려로 나의 방식을 내려놓았던 적이 있었는지 묵상해보고,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참된 믿음의 은총을 예수님께 청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135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4월 26일 부활 제3주일 : 루카 24,13-35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24장 13-35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 주십시오.

주간 첫날 바로 그날 예수님의

13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14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15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16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 받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

18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 하시자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20 그런데 우리의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21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22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23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 주더랍니다.

24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26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28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29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30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31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32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33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34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하고 말하고 있었다.

35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제자들이 가고 있던 마을은 어디였습니까? (13절)

- 그들은 예수님을 왜 알아보지 못합니까? (16절)

- 그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묘사합니까? (19절)

- 제자들은 예수님을 어떤 분이라고 기대했습니까? (21절)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신 말씀과 설명은 무엇입니까? (25절-27절)

-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본 것은 언제였습니까? (30절-31절)

-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들은 어디로 돌아갑니까? (33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대로변에 있는 카페의 큰 창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본 적이 있습니까?

요즘은 그냥 걷기만 하는 사람보다 ‘무언가를 하면서 걷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금세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음악을 들으며 걷는 사람, 문자를 보내며 걷는 사람, 통화하면서 걷는 사람, 음식을 손에 들고 먹으면서 걷는 사람, 꽤 많은 사람이 걷는 시간에도 무언가를 하지 않을 수 없는 바쁜 일상을 살고 있음을 자랑이라도 하듯, 분주하게 무언가를 하며 걷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사이로 손을 꼭 잡고 뭐가 그리 좋은지 작은 말 한마디에도 깔깔거리며 웃는 연인, 엄마의 팔짱을 꼭 붙들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걷는 딸아이도 보입니다.

조금 전 가게에서 입어보았던 옷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지, 이제 곧 먹게 될 음식에 관해 이야기하는지, 방금 보았던 영화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지….

도대체 서로 무엇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에 저렇게 즐거울까? 어떤 말로 서로를 기쁘게 해주고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예수님의 제자 둘이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걸어가며,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시며,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고 물으십니다. 제자 중 하나가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그러니까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에 대해 이야기하며 걷고 있었다고 대답을 합니다.

두 제자가 길을 걸으며 서로 주고받은 이야기는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 바로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걸어가시며,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주십니다. 나자렛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걷던 두 제자는 이제 나자렛 예수님에 관해 기록된 성경의 이야기를 들으며 주님과 함께 걷습니다.

두 제자가 서로 나자렛 예수님에 관한 일을 이야기하며 걷는 것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며 걷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먼저 다가와 함께 걸으십니다. 예수님에 관하여 이야기 하는 사람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친히 당신에 관하여 기록된 성경의 말씀을 설명해주십니다.

우리는 걸으면서 많은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걸으면서 정보를 검색할 수도, 전화 통화를 할 수도, 음악을 들을 수도, 음식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걸으면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한 주간 동안 나의 일상 안에서 더 많이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며, 내가 만난 예수님을 이웃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 생각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130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