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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치유의 해’
희망가


글 이영승 아우구스티노 신부 | 통합의료진흥원 전인병원 원목 담당

“하느님, 이건 아니잖아요. 이건 정말 아니잖아요!”

여러분은 이렇게 기도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 이게 어떻게 기도냐구요? 이것도 아주 훌륭한 기도입니다. 아니 이렇게라도 기도해 보시길 권해봅니다. 그만큼 하느님과 여러분의 거리가 가깝다는 뜻일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지난 3월 초에 이렇게 기도 같지 않은 기도를 바쳤습니다. 아니 울부짖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엉엉 울면서 하느님께 기도 드렸거든요. 괜찮으시다면 잠시 눈을 다시 올려, 저의 이 기도를 여러분도 소리 내어서 (하실 수 있다면 감정을 실어서) 같이 한 번 바쳐보셔도 좋습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조금이나마 그날의 제 마음을 헤아리실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저 기도를 바친 날은 코로나19로 인해 3n번째 사망자가 나온 날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몹시 마음이 아프고 괴롭지만, 그래도 여러분과 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렇습니다. “3n번째 사망자”, 연일 뉴스에는 그렇게 호칭했습니다. 실명을 거론하지 않는 것이 언론보도의 준칙이나 그렇다고 해서 ‘3n번째 사망자’라는 단어만으로 그분의 삶을 마무리 짓는 것은 너무도 가혹한 일이었습니다.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굳이 꺼낼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렇게 기억될 인생이 아니셨지요. 오로지 따님을 살리기 위해 지옥과도 같은 고통을 겪어내야만 했고, 결국 하느님의 자비로 죽음으로부터 돌아온 따님을 다시 품에 안은 그날부터 줄곧 따님을 돌보시다가 결국 이 지독한 바이러스에 그만 무너져 버리고 마셨던, 그런 안타까운 인생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기에, ‘3n번째 사망자’라는 단어는 오히려 더 차가운 단어일 뿐이었고, 더욱 더 눈물 나게 하는 대명사일 뿐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이토록 허무할 수도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마음을 때리는 그런 말이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 왔습니다. 물리적인 거리를 둠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지켜내는 이 아이러니함은 확산을 막는 데에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의 거리는 멀리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멀리 있어도 마음만 곁에 있다면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지 않습니까? 한번도 두 눈으로 뵌 적은 없지만 내 마음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까?

3월 초, 이렇게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그 많은 안타까운 죽음은 저에게 있어 그저 거리가 있는 사람들일 뿐이었음을 고백합니다. 하루하루 전해지는 안타까운 소식의 하나일 뿐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일면식도 없었기에 그랬고, 그보다는 그저 우리의 삶을 망쳐버린 바이러스에 대한 생각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소식들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n번째 사망자’라는 단어 뒤에 숨겨진 인생의 굽이굽이들이 더 다양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굳이 우리 모두가 그 많은 사연을 기억하고 간직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안타까움을 위해서 하느님의 자비를 청할 줄 아는 그런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이 저처럼 “하느님, 이건 아니잖아요. 정말 이건 아니잖아요!” 하고 기도하는 일이 없길 바랄 뿐입니다. 이 기도가 하느님과 나와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바칠 수 있는 기도임에는 분명하나 이런 슬픈 기도는 부디 여러분들이 직접 바치는 일은 없길 바랍니다. 오히려 하루하루 주어지는 일상에 감사하는 기도가 여러분들의 가정에 넘쳐나길 바랍니다.

점점 더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요즘, 저는 <희망가>라는 노래로 위로를 받습니다. 모든 인간적 노력으로도 해낼 수 없다면 우리의 희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 희망을 두고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 세상을 지켜주시길 기도해야 하겠지요. 그러기에 이 노래는 우리의 희망에 대해 더 생각하게 합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졌다 하더라도 희망이 족하지 않음을 되새겨 주는 이 노래의 가사는 이러합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같도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담소화락(談笑和樂)에 엄벙덤벙 주색잡기(酒色雜技)에 침몰하니

세상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까

 

여러분의 희망은 무엇입니까? 아니 우리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무엇입니까?

오늘은 잠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많은 분들과의 거리를 가깝게 해보시면 어떠실런지요? 그분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가 돌고 돌아 언젠가 우리들에게도 다시 전해질 것을 믿으며 오늘은 그분들을 위해 기도드리면 어떨까요?

 

끝으로 위의 <희망가>를 QR코드를 통해서 감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눈물도 때로는 좋은 약입니다.

 

※ 가지고 계신 스마트폰을 이용해 오른쪽 QR코드를 찍으면, <희망가>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