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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사목과 후원회 이야기
전방에서 만난 최양업 신부님


글 이효인 요셉 신부 | 군종교구 칠성성당 주임

 

찬미 예수님! 저는 현재 강원도 화천에 위치한 육군 보병 제7사단 칠성성당에서 사목하고 있는 이효인(요셉)신부입니다. 2018년 4월에 군종교구로 파견되어 군종 신부로 지낸 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갑니다. 아마도 몇 달이 지나면 정들었던 주임신부로서의 첫 임지를 떠나 군에서 두 번째 본당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교구에서 보좌신부로 사목했던 경산성당과 상동성당을 떠나던 날 정들었던 신자들과 헤어지며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군 사목을 하면서 교구에 있을 때와 가장 다른 점이 뭐냐고 묻는다면, 우선 저는 본당에 있지만 신자들이 떠난다는 것입니다. 정들었던 간부 가족들은 사단에서 소임이 끝나 다른 부대로 이동을 하고, 때로는 동생처럼 또 때로는 친구처럼 친하게 지냈던 용사들은 전역을 하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떠난다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심 섭섭하기도 하지만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고생했던 이곳을 떠나며 기뻐하는 그들의 모습이 이해됩니다.

두 번째로 다른 점은 본당 보다 다른 곳으로 미사를 다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소와 격오지 부대들, 칠성성당과 신교대공소, 그리고 왕자공소가 있고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철책을 수호하고 있는 용사들을 위해 미사를 다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일날 제가 살고 있는 성당에서 거행하는 미사는 단 한 대밖에 없을 정도로 다른 장소에서 하는 미사가 훨씬 많습니다.

 

 

제가 사목하고 있는 제7사단은 우리나라의 중동부 최전선을 수호하는 부대입니다. 전군에서도 험준한 산악지대로 정평이 나 있는 부대입니다. 오죽하면 전생에 일곱 가지 큰 죄를 지으면 다시 태어나 제7사단에 온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말이 있을 정도니 불철주야 최전방을 지키고 있는 감시초소(GOP/GP) 부대들은 그 환경이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어렵습니다. 저와 군종병은 그런 최전방 수호병들의 종교행사를 위해 매주 토요일에 각 소초를 방문합니다. 함께 미사도 하고 간식도 먹고 때로는 힘들어하는 용사들과 상담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합니다.

 

매번 굽이굽이 펼쳐진 능선 사이를 지나 용사들이 생활하는 소초로 가는 데는 평균 한 시간 반 정도의 이동 시간이 소요됩니다. 아침에 공소에서 미사를 하고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고 다시 운전해서 소초에 도착할 때쯤이면 이미 몸은 많이 지쳐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도착할 때 환한 얼굴로 너무나도 반갑게 맞이해주는 장병들을 만나게 됩니다. 비록 험준한 산 고개를 넘어왔음에도 피로는 온데간데 없고 오히려 그 모습에 고마움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신부님,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이 한마디에 저는 더 맛있는 간식을 사올걸 하는 후회도 합니다. 하지만 소초에서 그렇게 저를 기다리고 있는 용사들은 간식보다 미사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소초에 도착해서 자그마한 생활관에 용사 형제들과 삼삼오오 모여 미사를 봉헌하고 있노라면 한 평 남짓한 어두운 골방에서 거룩한 성사에 참여했을 우리의 옛 신앙 선조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부대에 감시초소(GOP/GP) 가 굉장히 많아 열심히 미사를 하러 다닌다 해도 한 소초에 빠르면 3주에 한 번 다시 방문할 수 있습니다.

하루는 신학교 1학년 때 들었던 한국 교회사 수업이 생각났습니다. 한국 교회사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이 바로 최양업 신부님입니다. 땀의 순교자, 방방곡곡 교우촌을 걸어 다니시며 11년간 7000리를 걸으셨다는 최양업 신부님의 발자취를 돌아볼 때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하며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단에 와서 몇 안 되는 신자들이 있는 소초를 찾아다니며 최양업 신부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의지와 힘으로는 부족했을지언정 신자들의 모습을 통해 그분도 더욱 힘을 내셨을 거라 생각해보고, 함께 미사드릴 수 있음에 감사하는 그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봅니다. 육체적인 피곤함을 금방이라도 잊게 해주는 그들의 기쁨에 찬 모습에 한 걸음 한 걸음 더 내딛으셨을 겁니다. 그렇게 전방 소초에서의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면 최양업 신부님의 발자국 하나하나가 아로새겨집니다. 그분이 걸으셨던 그 길이 단순히 신부님 혼자만의 길이 아니었음을… 신부님께서 그렇게 힘을 낼 수 있었던, 당신 마음 안에 울리는 그 기쁨을… 아마 그것이 하느님의 사랑이지 않을까 묵상하게 됩니다.

 

오늘도 전방 소초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주한 최양업 신부님의 미소를 떠올리며 두 손 모아 기도해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느님의 기쁜 말씀을 전하고 장병들에게 소중한 행복을 전할 수 있도록 늘 기도해주시는 우리 교구의 군종후원회 회원들과 교우 분들의 기도와 아낌없는 지원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최양업 신부님을 본받아 오늘도 한 걸음 한 걸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기쁘게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