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일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생명 주일) : 요한 10,1-10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요한복음 10장 1-10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2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3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4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5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10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은 누구라고 말씀하십니까? (1절)
- 양들이 어떻게 목자를 따라갑니까?(4절)
- 양들이 왜 낯선 사람은 피해 달아납니까?(5절)
- 문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들어가면 어떻게 됩니까?(9절)
- 예수님이 오신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10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살면서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은 오해를 받아보신 적이 있습니까?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도덕적 윤리적 기준에 어긋나지도 않았으며,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얄팍한 속임수를 부리거나 아부하지도 않았고, 그저 소신껏 주어진 일에 성실히 임했을 뿐인데, 주변인들의 모함과 비난과 거짓으로 누명을 쓰거나 오해를 받아 억울했던 적이 있습니까?
많은 경우 오해는 사실 확인도 없이 ‘합리적 의심’이란 말로 포장된 ‘루머’에서 비롯됩니다. 한쪽의 이야기만 듣고, 좋아하는 사람의 말만 듣고, 듣기 좋은 소리만 듣고, 편파적인 판단을 해 버릴 때 우리는 쉽게 누군가를 오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누구의 말을 먼저 듣느냐? 무슨 이야기를 먼저 듣느냐? 어떤 처지에서 듣게 되느냐에 따라 오해하게 될 여지가 많습니다. 그러니 이런 오해를 줄이기 위해 객관적인 입장에서 양쪽 모두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귀를 기울여 들어보면 모든 일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 있으며, 그래야만 했던 상황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의 비유 말씀에서 양 우리에 들어오는 사람이 도둑이며 강도인지, 아니면 목자인지 알아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구별 방법은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느냐? 아니면 문으로 들어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이지만,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입니다. 아마 거의 모든 문지기, 대부분의 사람은 ‘어디로 들어오느냐?’에 따라 진짜 목자인지, 아니면 도둑이며 강도인지를 구별해 낼 것입니다. ‘어디로 들어오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판단 기준입니다.
두 번째 구별 방법은 ‘목소리를 알아듣는 것’입니다. 양들은 그 사람이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왔든, 담을 넘어 몰래 들어왔든 양들은 그 목소리를 알아듣고, 목자인지 아닌지를 구별해 냅니다. 그래서 목자의 소리가 들리면 그를 따라가지만,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면 따라가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납니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입니다.
내가 반듯이 중심을 잡고, 귀에 들리는 소리가 목자의 목소리인지 아닌지를 정확히 판단하고 찾아낼 수 있을 때, 누군가가 문으로 들어오든 담을 넘어서 들어오든 흔들리지 않고 목자를 따르고 낯선 이를 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소리가 ‘어디로 들어왔느냐?’가 아니라 ‘내가 정확히 알아듣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들리는 이야기 중에서 무엇이 정의롭고 올바른 진실인지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들을 때 한쪽의 이야기만 자신의 입장에서 듣지 말고, 양쪽의 이야기를 그들의 입장에서 들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걸러지지 않고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이며, 복음적 선택이 무엇인지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성경에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을 자주 읽고 묵상하며,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려는 연습을 꾸준히 해나가야 합니다. 결국 올바른 판단, 정확한 선택을 하는 이는 목소리를 정확히 알아듣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참된 정의와 올바른 진실이 실현되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간구하며,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신앙인으로서 하느님의 뜻과 복음적 선택을 어떻게 식별할 것인지 생각해보고 함께 나누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55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5월 10일 부활 제5주일 : 요한 14,1-12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요한복음 14장 1-12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4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5 그러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아버지 집은 어떠하다고 합니까?(2절)
- 아버지께 가기 위해서는 누구를 통해야 합니까?(6절)
- 필립보는 예수님께 무엇을 청합니까?(8절)
- 예수님은 누구의 일을 하십니까?(10절)
-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떻게 된다고 합니까?(12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우리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하고, 삶의 많은 것들을 변화시킨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찾아내지 못한 치료 약, 쉽게 드러나지 않는 증상과 빠른 전파력 때문에 우리는 아무 데도 갈 수 없고, 아무도 만날 수 없고, 아무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으로 감염을 예방하고,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며 거리를 두는 등 스스로 격리하고 차단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야말로 나의 청결한 위생관리만을 믿을 뿐, 그 외에 모든 것은 믿을 수가 없는 상태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막막한 길을 걷는 것만 같았습니다. 믿지 못하고, 언제 끝날지 몰라 두려운 마음을 ‘어수선하고 뒤숭숭하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수선하고 뒤숭숭함! 바로 ‘마음이 산란하다’라는 겁니다.
왜 마음이 산란할까? 언제 마음이 산란해질까? 바로 ‘믿을 구석이 없을 때’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이는 아무런 대책 없이 던지는 허세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우리에게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라고 하시고, 내가 머물 만한 자리가 있을지 불안한 우리에게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라고 하시고, 누구와 함께 있어야 안전할지 모르는 우리에게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라고 하십니다.
비단 코로나19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바이러스, 아니 새로운 바이러스가 우리를 찾아올지 모릅니다. 그리고 바이러스가 아니라도 우리의 마음을 어수선하고 뒤숭숭하게 만드는 일들은 늘 우리 주위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때 ‘믿을 구석이 있는 사람’과 ‘믿을 구석이 없는 사람’의 삶은 완전히 다릅니다.
각자 자신의 신앙을 다시 점검하고 되돌아 보아야 할 때입니다.
하느님의 존재와 예수님의 말씀과 성령의 활동에 대한 믿음 없이 미사에 참례하며 성당을 오고 갔다면, 작은 위기 속에서도 마음이 산란하겠지만, 자신의 삶이 단단한 신앙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으며 어떤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믿을 구석이 있습니다.
친히 부활하시어 우리와 함께 살아계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최근 우리 각자의 마음을 산란하게 만들었던 일은 무엇인지 나누어 보며, 예수님의 말씀과 공동체 안에서 우리의 믿음을 더욱 굳건히 다짐하도록 노력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34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5월 17일 부활 제6주일 : 요한 14,15-21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요한복음 14장 15-21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16 그리고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17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머무르시고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18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19 이제 조금만 있으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 그날,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21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15절)
-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보호자를 보내 주십니까?(16-17절)
- 세상은 예수님을 보지 못하겠지만 제자들은 어떻게(어째서) 예수님을 보게 된다고 합니까?(19절)
- 그날이 되면 제자들은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20절)
-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에게 사랑을 받게 된다고 합니까?(21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선생님이 계신 수업시간에 바른 자세로 수업에 임하며 공부도 곧잘 하면서도 친구들끼리 있을 때는 험악한 말과 행동으로 돌변하는 학생이 있고, 부모님 앞에서는 착하게 고분고분 말을 잘 듣다가도 부모님이 외출하면 제멋대로 하는 아이가 있고, 상사 앞에서는 웃는 인상과 듣기 좋은 말로 호감을 사면서도 돌아서서 동료들끼리 모이면 상사 험담을 제일 많이 하며 비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함께 있을 때, 그래서 눈으로 보고 있을 때의 모습은 그야말로 보여주기 위해 조작된 겉모습이고, 함께 없을 때, 그래서 눈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의 모습이 속마음을 드러내는 진짜 모습일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자기만 알고 있는 자신의 진실된 속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을 때 더 잘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수난과 죽음을 앞둔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자신의 모습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 그래서 더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없을 때, 일어날 일들을 미리 제자들에게 알려주십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지금 예수님과 함께하는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을 잘 따르고 계명을 잘 지키며 모두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진실은 예수님이 눈에서 사라졌을 때 드러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계명을 잘 지키기 때문입니다. 또 눈에서 사라진 예수님을 세상은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보호자가 함께 계시기에 이제는 우리 안에 함께 살아계신 예수님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눈에 보이지 않을 때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삶으로,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드러납니다.
지금 우리 눈에 예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진실이 드러나는 때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을 보고 계십니까?
우리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께서는 이미 우리의 진짜 속마음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그분을 향한 나의 사랑을 증명하고,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하면 좋겠습니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함께 있을 때와 함께 없을 때 누군가에 대한 나의 말과 행동이 달랐던 적은 없었는지 묵상해보며, 예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이 드러날 수 있도록 삶 안에서 작은 계명을 한 가지씩 정해서 실천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414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5월 24일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 마태오 28,16-20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오복음 28장 16-20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17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열한 제자는 어디로 떠났습니까?(16절)
- 예수님을 뵌 제자들은 무엇을 하였습니까?(17절)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누구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십니까?(18-19절)
-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20절)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언제까지 함께 있겠다고 하십니까? (20절)
- 예수님의 말씀을 큰소리로 함께 읽어 보십시오. (18-20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가서 그분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지상에서 바라본 제자들의 눈에, 예수님은 눈 위에 펼쳐진 높디 높은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더이상 이 땅에 계시지 않는 분, 우리와 달리 높은 하늘에 계시는 분’이라는 생각에 주님과의 분리를 느끼며, 서서히 시야에서 사라지는 예수님을 보며 ‘떠남과 이별’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지상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누구나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같은 주님의 승천을 하늘에 살아계신 하느님의 입장에서 보면 어땠을까요?
분리가 아니라 결합이며, 떠남이 아니라 만남이고, 또 올라감이 아니라 다가옴이며, 따로 있음이 아니라 함께 있음이 됩니다.
지금, 여러분의 입장에서 승천은 과연 무엇입니까?
승천이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먼저 들고, 어떤 마음이 먼저 일어납니까?
어쩌면 승천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분리와 떠남, 이별과 따로 있음이 아닙니다. 입장을 바꾸어보면 달라집니다. 관점을 바꾸고, 시선을 달리하면 변화됩니다.
땅에 발을 붙이고 꼿꼿이 서 있는 사람에게 하늘은 머리 위에 있는 ‘높은 곳’이지만, 땅에 등을 대고 편안하게 누워있는 사람에게 하늘은 바로 앞에 있는 ‘건너편’이 됩니다. 그러니 우리의 자세만 바꾸면, 승천은 떠남이 아니라 건너감이고, 올라감이 아니라 넘어감이며, 위로 올라감이 아니라 마주 봄이 됩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 따라 승천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아 하느님과 완전히 하나가 되신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이 땅에 있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상태”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앞에 마주 계시는 상태!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 옆에 계시는 상태! 거룩한 성령님께서 나와 함께 머무르시는 상태가 바로 승천입니다. 그렇게 승천으로 하늘과 땅은 분리가 아니라 하나가 되었고, 하느님과 우리가 따로 있지 않고 함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 땅에서 하느님과 함께 살며,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살게 되었습니다.
이런 승천을 직접 느끼고 체험하기 위해서는 입장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의 시선이 수직상하가 아니라 수평좌우로, 사고의 관점이 꼿꼿이 서 있기에서 편안히 누워있기로, 우리의 관계가 분리와 떠남이 아니라 일치와 만남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부활이고, 그로써 하느님을 앞에서 마주 보며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승천입니다. 세상의 입장에서 하늘 위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을 보며 이별의 슬픔에 잠기지 말고, 하늘나라의 입장에서 앞에서 마주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기쁨에 잠겨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 이곳이 바로 하느님 나라가 됩니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예수님의 승천을 직접 느끼고 체험하기 위해 바꾸어야 할 나의 입장과 관점은 무엇인지 돌아보며, 우리가 사는 지금 이곳이 하느님 나라가 될 수 있도록 함께 주모경을 바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137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5월 31일 성령 강림 대축일(청소년 주일) : 요한 20,19-23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요한복음 20장 19-23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제자들은 왜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습니까?(19절)
- 예수님께서 오시어 첫 번째로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19절)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엇을 보여 주십니까? 또한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20절)
- 예수님께서 하신 두 번째 말씀은 무엇입니까?(21절)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 넣으시며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22-23절)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오늘 복음은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두 단락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는 말씀을 전후로,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잠가 놓고 있던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분의 두 번째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는 말씀에서는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파견 명령과 성령을 불어넣어 주시며 용서에 대한 가르침이 전해질 뿐, 제자들의 반응이나 응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만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곧바로 문을 열고 나가 용서를 베풀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지만, 아쉽게도 이어지는 성경인 요한복음 20장 24절 이하에는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토마스의 이야기와 함께 여드레 뒤에도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만큼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뵙는 기쁨은 크지만, 두려움을 깨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며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는 말은 아닐까요?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나타나신 예수님과 제자들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성령을 받은 우리가 사람들과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주님께서는 말로만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손수 그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분명하게 뚫려 있는 양손의 못자국과 선명하게 남아있는 옆구리의 창자국은 예수님에게는 죽음의 흉터이고, 도망쳐 숨어있던 제자들에게는 두려움과 절망의 흔적이었습니다. 비록 아픔이고 상처이고 두려움이고 부끄러움이지만, 이것을 당당하게 들어내 보여주고, 이것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모든 것이 용서되고 더욱 새롭고 진실된 관계가 맺어지게 됩니다. 나아가 모든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진심으로 용서할 때, 죽음의 흉터와 절망의 흔적은 ‘지금 눈 앞에 있는 분이 진짜 예수님이 맞다.’라는 생명의 상징이자 희망의 증거가 됩니다.
자신의 상처를 들추어 보여주는 것!
다른 사람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과감히 바라보는 것!
이것이 용서의 과정이고, 진실된 관계를 맺기 위한 과정입니다. 숨기고 감추면서 찾아갈 수 없고, 회피하고 외면하면서 만날 수 없습니다. ‘이미 알겠지.’ 하며 보여주지 않고, ‘아마 아니겠지.’하며 바라보지 않는다면,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참된 용서를 위해 내가 받은 상처를 보여주고, 남이 받은 상처를 바라봐 주어야 합니다. 부끄럽고 아프다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오늘 성령으로 힘을 얻은 우리가 두려움에서 벗어나, 과감히 내 손과 옆구리를 보여준다면 사람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할 것입니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내가 받은 상처를 보여 주거나 남이 받은 상처를 바라봐 주었던 용서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보고, 성령 안에서 두려움을 넘어 예수님의 참된 평화를 체험하는 한주간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142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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