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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어린이날의 단상(斷想)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 | 월간〈빛〉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국장

 

『빛』 6월호 원고를 준비하며 달력을 보니 오늘은 5월 5일, 어린이날입니다. ‘어린이날’ 하면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어서 나눠 봅니다.

 

이야기 하나. 제가 어린이로 보낸 어린이날에 관한 기억은 유일하게 하나 있습니다. 즐겁게 보낸 어린이날도 많았겠지만 그런 기억은 하나도 나지 않고 슬프고 강렬했던 기억 하나만 남은 것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의 어린이날이었습니다. 가족 모두 어린이대공원에 갔습니다. 그날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밀려다닐 정도였습니다. 엄마 손을 잡고 형, 누나와 같이 구경을 하며 다녔는데, 어느 순간 엄마 손을 놓치고 돌아보니 수많은 사람들 속에 엄마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판단력도 흐려지고 그 자리에서 그냥 울기만 했습니다. 세상이 내 눈앞에서 끝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저를 누군가가 미아보호소에 데려갔고, 거기서 한참 넋을 놓고 울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가 와락 제 손을 잡는 것이었습니다. 엄마였습니다. 엄마도 혼비백산해서 저를 찾다가 미아보호소의 방송을 듣고 온 것입니다. 둘이 부둥켜안고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 기억은 여기까지입니다. 그 뒤에 맛있는 것도 먹고 위로를 받고 재미있게 보냈겠지만, 그런 건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린 마음에 겪은 엄마 없는 세상은 제게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엄마를 다시 찾아 만난 순간, 세상이 다시 내 눈앞에 돌아왔고 비로소 의미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 둘. 오늘 故 김수환 추기경님의 어린 시절을 다룬 영화 “저 산 너머”를 봤습니다. 가난한 옹기장이의 막내였던 추기경님은 어린 시절 자신의 마음밭에 뿌려진 하느님의 특별한 씨앗을 찾아 키워 나갔습니다. 많이 편찮으셨던 추기경님 아버지의 대사가 기억납니다. 어린이는 하느님께서 우리(부모)에게 맡겨 주신 것이니, 하느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잘 클 수 있도록 돌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린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어린 시절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 아이의 마음밭에는 하느님께서 직접 뿌려 주신 씨앗이 막 자라나고 있으니까요.

 

이야기 셋. 어린이날은 나약하고 힘없는 어린이를 존중하고 아끼고 사랑하도록 가르치신 소파 방정환 선생을 주축으로 한 ‘색동회’가 처음 제정했습니다. 원래 5월 1일이었다가 1927년 5월 첫 일요일로 변경했고, 광복 후에 5월 5일로 정해졌습니다. 방정환 선생은 동학(천도교)의 제3대 교주였던 손병희 선생의 사위였고, 본인도 동학사상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님이다.)”이라는 교리로 집약되는 동학사상은 모든 사람을 하늘님으로 보고 섬겨야 한다는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시천주(侍天主, 사람 몸 안에 하늘님을 모시고 있다.)” 사상을 설파합니다. 즉 모든 사람 안에는 하늘님이 계시니 하늘님을 섬기듯이 사람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찮은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그 아이 안에 하늘님이 계시니 하늘님 대하듯이 어린이를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해월 최시형 선생도 이야기했습니다. “사람이 오거든 ‘하늘님이 온다.’고 하여라. 어린 아이를 때리지 말라. 이는 하늘님을 때리는 것이다.” 그러니 어린이를 존중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지요.

 

코로나19로 중단되었던 미사가 다시 시작되고, 우리의 신앙생활도 조금씩 일상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주님을 가까이 하기 힘들었던 시간을 보낸 우리의 모습이 마치 엄마 잃은 어린아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어린이 날 엄마를 잃고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두려움에 떨다가 엄마를 다시 찾고는 말할 수 없는 기쁨에 쌓인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 다시 성당에서 미사가 봉헌됩니다. 일상적이고 평범했던 신앙생활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은 시간이었습니다. 잃었던 엄마를 다시 찾은 어린이 같은 마음으로 주님을 향한 나의 신앙을 되돌아봐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린이 처럼 마냥 기뻐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엄마 잃은 아이보다 더 큰 상처와 고통을 입은 이는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일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깝고 아프셨을지, 예수 성심(聖心)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6월, 예수 성심 성월입니다. 먼저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을 헤아려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상처 입은 마음을 보듬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루카 1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