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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온 편지
부활 방구!


글 심탁 클레멘스 신부 |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교구 선교사목

 

2020년 3월 6일 금요일 성시간. 고해성사와 미사, 부제가 성시간을 주도하고 저는 고해성사 및 미사 주례자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기도에 참석한 한 자매가 그 다음 주간에 코로나 확진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했고, 4월 22일 현재 그 자매는 입퇴원을 반복하며 회복치료 중입니다.)

 

 

3월 8일 사순 제2주일. 평소 알러지로 코와 목의 약점을 가진 저는 코, 목의 심한 건조증으로 침을 삼키기 불편했고 냄새를 맡지 못했으며, 저녁에는 몸살 기운이 느껴지고, 밤에는 오한이 들어 밤새 거의 한숨도 못 잤습니다. 프랑스 시간 월요일 새벽 2~3시경 (한국 시간 오전)에 카톡으로 아는 지인 의사들께 문자로 문의를 했습니다. (진료 시간이라 즉답을 얻지 못해 여러 군데 문의를 한 것입니다.) 증상으로 보아 매우 코로나19 같다는 불편한 느낌…. 그러나 다행히 열은 없었습니다.

 

3월 16일 월요일. 프랑스 국가 차원의 공식 집회 금지령과 통행금지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상주들의 완강한 요청에 따라 한 주 전에 이미 예약된 장례미사를 같은 날 오후 2시 30분에 집전했습니다. 저 혼자 마스크를 끼고 성당 입구에서 손소독제를 사용하였습니다. 그 며칠 후, 서두에 언급한 그 자매가 코로나 중환자로 입원 중이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긴장감을 가지고, 한국에 있는 지인 의사와 약사들의 조언 중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대처를 시작하였습니다. 생강차 마시기, 비타민C 섭취하기, 몸을 따뜻하게 하기, 사용한 일회용 마스크에 (알코올이 없어서) 보드카 뿌리기, 증기에 소독하여 햇볕에 말리기 등등.

 

3월 31일 화요일. 잔기침이 한 주 가까이 지속되어 사제관 근처 주치의(일반의)에게 전화 문의를 통해 열이 없으니 ‘코로나19 음성’이라는 예비 판정 하에 직접 진료를 받았습니다. 주치의는 체온과 혈압을 확인하고 기침용 약 처방을 해 주었습니다. 어린이용 시럽 같이 달달했는데 한 스푼 삼키면 수면제처럼 잠이 쏟아져 마냥 누워 잤습니다. 휴식…. 서울의 저명한 지인 의사와 약사님은 ‘코로나에 감염된 것으로 보고 대처하도록’ 조언을 해 주셨고 직접 비타민C와 기타 영양제 등 먹거리들을 급송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대구에서는 J한의원 J원장께서 여러 구체적 조언들 뿐 아니라 “휴대폰을 통해서 일종의 원격 치료가 가능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실감이 안 나서 그때는 무심히 ‘아, 그런가?’ 싶었습니다.

  

4월 5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기침약으로 비몽사몽 하던 중에 확진자 자매가 중환자실에서 저와의 통화를 원한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습니다. ‘혹시 마지막인가?’ 싶어서 급히 연락을 드렸습니다. 예상과 달리 온 몸과 마음으로 주님 현존을 느끼며 마지막일지 모르는 회개와 보속의 심정을 토로하며 사제의 한마디를 듣고 싶어 하셨습니다. “자매님은 예수님 수난에 동참하는 중이며 자기 죄뿐만 아니라 세상의 죄도 함께 보속하는 것”이라는 말로 격려하며, “부활 신앙을 가진 자는 이미 이긴 전쟁을 치르는 것이니 기도 중에 일치하며 용기를 내자.”고 말했습니다. 오랜 방황과 냉담 끝에 돌아 온 자매는 새로운 신앙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저를 통한 주님 말씀에 더욱 확신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당시 ‘발열 여부’가 감염 가능성 판단의 가장 큰 기준인 것 같았습니다. 서울의 지인 의사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반드시 폐만 공격하는 것이 아니니 우선 적극적으로 기초 면역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대구 J원장님과 같은 지침: 생강-대추-계피-꿀차 열심히 마시기, 비타민C 수시로 먹기…. 그러나 가택 연금으로 운동부족, 스트레스, 지속적 소화불량, 약간의 구역감, 특히 좌측과 하복부 쪽이 풍선에 물을 넣은 듯 출렁거렸습니다. 속말,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런 일도 겪는구나.’ 동시에 대소변 때마다 고통을 느꼈습니다. 매우 고통스럽게 살짝 새끼손가락만큼 배변을 할 경우 그 냄새는 평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배용 풀이 썩는 냄새랄까. 그러다 장 상태는 설사가 터져야 하는데 출구는 완전히 막혀 변비와 치질이 함께 온 것 같았습니다. 출구 주변 360도가 부어서 마치 누렇게 익은 늙은 호박을 엉덩이에 박아 놓은 것 같았습니다. 방구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혈압이 오르고 두통이 심했습니다. 의자나 바닥에 앉을 수는 아예 없었고, 서거나 누워도 아프고… 볼펜을 바닥에 떨어뜨려도 그 동네의 붓기와 고통 때문에 쪼그려 앉아 주울 수도 없었습니다. 산고는 모르지만 통증 10분의 8 정도랄까요? 그렇게 갈수록 심한 사흘 밤낮의 고통을 겪으며 응급상황임을 확신했습니다.

 

4월 8일 성주간 수요일 새벽. SOS! J한의원에 카톡으로 SOS를 쳤습니다. 얼마 후 원장님께서 답을 주셨고, ‘그 황당한 치료법’을 다시 소개해 주셨습니다. J원장님과 8년 넘게 함께 연구하고 계신다는 P선생님의 전화번호를 받아 프랑스에서 서울로 전화 연결을 하였습니다. P선생님은 ‘코로나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서 무선 전송방식의 특별한 치료기계’를 개발하신 분이라는데, 응급상황 하에 초면 인사를 어떻게 나누었는지 기억나지도 않습니다. 우선, 혹시 모를 코로나를 치료하기 위해 숨을 깊이 들이 마시고 입으로 내쉬라고 하셨습니다. 어색하고 이상했지만, 시리아 장군 나아만처럼 저는 무엇이라도 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십여 분 정도가 지났을까요? 좌로 누운 채 30~40분이 지났는지 한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릅니다. 며칠 잠을 설친 탓에 묵주를 들고 살짝 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일단 여기서 멈추고, 몇 번 더 해야 하니 연락을 받으면 즉시 치료에 들어갈 수 있게 대비하십시오. 지금 상당히 많은 독이 빠져 나왔고 훨씬 나을 겁니다.’ 라며 P선생님은 난생처음 이 ‘신비의 치료’를 경험케 해 주셨습니다.

아니 이게 뭔 일이래? 늙은 호박통 좌측 부위에 있던 심각한 통증과 붓기가 상당히 사라지고 풀려 있었습니다. 그 사이로 조금이지만 ‘피식!’ 방구가 나왔습니다. 사흘을 반쯤 죽다 살아난 첫번째 증거, 방구! 그래서 이름 붙였습니다. 2020년 부활절 끌레멘스의 ‘부활 방구!’ 또한 서로 연관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바, 그간의 두통이 사라졌습니다.

같은 날 오전 11시, 프랑스 주치의를 만나 진료를 하였으나 그는 “치질은 아니니 걱정 말라.”고만 하셔서 저는 응급상태의 전문 검진을 원하니 “대장 전문의나 직장항문외과 전문의를 만나게 연결해 달라.”고 말했고, 이에 소견서를 써 주셨습니다. 덧붙이기를 “현재 공식적으로 진료는 불가능할 테니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직접 해결하세요.” (…) 코로나 감염자가 아니면 아무도 응급환자가 되면 안 되는 상황. 저로서는 더 적극적으로 P선생님의 원격치료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적어도 지금까지 여섯 차례 이상 치료를 하였습니다. P선생님이 무슨 기계를 어떤 원리로 코로나19 치료를 하시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전 세계 어디서건 휴대폰이 터지는 곳이면 치료를 할 수 있다니, 믿거나 말거나 신기할 뿐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부위에 미세한 뻐근함만 남아있습니다. 흉터에 잡힌 주름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겠습니다.

 

저는 J원장님과 P선생님께 “이건 노벨상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다만 이렇게 저는 격렬한 성주간을 보내다가 예수님보다 사흘 먼저 부활해 버렸습니다. J원장님과 P선생님, 감사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은혜로운 의료서비스를 널리 보급해 주시기를 빕니다. 코로나로 힘든 모든 이를 위해서 한국뿐 아니라 세계 의료계에서 빨리 공인을 받아 이번 가을에 온다는 ‘또 다른 더 무서운 바이러스’에 대처할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 본문자료사진 : 콜마르(Colmar)에 있는 운터린덴(Unterlinden) 박물관 ‘이쎈하임(Issenheim)’의 제단병풍화로, 마티스 그뤼네발트(1475/80-1528)의 작품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