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의 현장에서”는 천주교대구대교구 사회복지회에서 주최한 “2019년 대구카리타스, 우리들의 이야기” 공모전에서 수상한 사회복지사들의 수기 그 마지막 편을 소개해드립니다. - 편집자 주(註)
소소하지만 각자의 일상의 의미있는 것들을 공유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타산지석하기도 할 터이기에 카리타스인으로서 살아가는 여정 속에서 다져야 할 것들을 반추해 보았다. 또한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지낸 감동글이 나 스스로와 함께하는 동료들에게 새롭게 나아갈 힘이 되기를 기대하며, 사람과의 관계에서 희망의 씨앗을 느낀 시간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바빠만 가는 세상이다. 핵가족화로 가족단위는 점점 작아지고 친척은 물론이고 부모님, 나아가 나의 아이도 바쁜 일상 속에서 여유있게 마주할 수가 없는 요즘,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희생하며 챙기기란 참 힘이 든다. 내가 맡은 책임을 늘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 늘 새롭게 발생하는 이용자의 욕구상황 속에서 새로운 방법으로 현명하게 적절히 대처해 나간다는 것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루하루 마음도 몸도 건강하게 이끌어 주시며 삶 속에서 작은 나눔의 실천을 할 수 있도록 끌어주고 계시는 주님께 참 감사함을 느낀다. 특히 카리타스의 가치를 내가 속한 곳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끄는 조직과 선후배, 동료에게 그저 감사하다. ‘카리타스’라는 내가 속한 이곳, 또 그 안의 구성원들이 없으면 나 또한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감사함. 그 바쁜 일상 속에서도 세상살이에 힘이 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희망의 씨앗’을 주시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랑을 느끼게 하시고, 사랑을 실천하게 하심에서 ‘희망씨앗’을 주시고 그것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사람과 세상을 이어주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동생들 챙기기를 좋아하고 나의 챙김에 동생들이 웃거나 좋아하는 것을 보면 나 또한 마음이 참으로 기뻤다. 그런 성향을 살리듯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택하게 되었다.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돕고 나의 역할을 통해 작은 희망의 서비스를 만들어 실천하고, 내 역할의 소소함으로 누군가에게 ‘살아가는 힘’을 드리는 것이 좋았다.
# 에피소드 1 : 사람, 그 이면의 ‘마음’을 보고 느끼다. ‘진심’
18여 년 전 1,234세대의 주민 중 반 이상이 국가로부터 생계비를 받아 생활하는 분들이 거주하는 영구임대아파트 복지관에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학교에서는 ‘사회복지사’란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환경 속에서 어려움이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또한 그 사람이 가진 강점을 스스로 강화시켜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라고 했다. 어느 날(완전 초보의 무식한 자신감을 사명감이라 여긴 시기였다.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다 하지 않았던가!) 내가 담당한 아파트 동의 주민 한 분이 술에 취해 방문하셔서 인근 병원에서 약을 타 달라고 하셨다. 충분히 걸을 수 있는 분이기도 했고 아파트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병원까지 스스로 가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담당자랍시고 내가 약을 타다 드리는 것은 이분께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거동이 불편할 때가 아니면 직접 가시도록 약속을 하자고 했다. 그랬더니 이전 담당자는 다 해 주었는데 왜 대신 안 해 주냐며 불만을 표하시고 집으로 가셨고 나는 마음이 조금 불편했지만 ‘스스로 하실 수 있도록 돕는 게 나의 일이야.’라며 그날 업무를 마쳤다.
그런데 다음날 출근해 보니 그날 밤에 그분이 부엌칼을 들고 낮에 있었던 일에 섭섭함을 토로하며 나를 찾으셨다고 했다. 다행히 그날 당직근무자가 남자 직원이어서 손에 칼을 든 그분을 보고 놀라기는 했지만 잘 말씀드려 집으로 무사히 가실 수 있도록 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날 나를 만나지 못해 분이 풀리지 않으셨던 그분은 며칠 뒤 다시 복지관에 오셔서 앉아서 근무 중이던 내 뒤에서 철재의자를 두 손으로 번쩍 들어 내려치려고 하다가 옆에 있던 남자 직원으로부터 저지를 당하셨다.
사회 초년생으로 주민들을 위해 동분서주 열심히 일하던 나는 우황청심환을 먹고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과 놀란 가슴으로 충격적인 하루를 보냈다. 내 뒷머리를 내리치려던 그 순간의 충격으로 가슴이 쿵닥거리고 머리가 쭈뼛 서서 잠시 머리가 띵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그분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분께 자주 연락드리며 안부를 묻곤 했다. 술을 드시지 않은 때는 쑥스러움을 많이 타고 뭐든 열심히 하려는 그분, 내 잦은 전화에 머슥해 하시던 그분을 나는 ‘마음이 여리고 착한 분’이라 생각했다. 주위의 많은 주민들이 그분은 술을 드시면 폭력성이 강하고 교도소에도 여러 번 다녀오셨고 살인까지 저지른 분이라고 거리를 두라고 하셨다. 나도 사실 무섭기는 했으나 편견을 버리자 되뇌이며 술을 드시지 않은 때의 순하고 부끄러움 많은 그분의 모습대로 보고 대하곤 했다. ‘사람을 보는 시선,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상대방은 마음을 열거나 닫는 듯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충격을 받은 사건이 있었지만, 정성을 다하면 상대방의 마음이 움직인다 했던가. 어느 날 일찍 출근해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아직 직원들이 없는 사무실로 그분이 들어와서 부끄러운 기색을 하며 검은 봉지를 내밀고 빠른 걸음으로 돌아가셨다. 봉지 안에는 딸기우유와 단팥빵이 들어 있었다. 그 당시 임신 중인 내게 “임산부는 잘 먹어야 해요.” 하며 얼른 건네고는 서둘러 가시던 그분의 투박한 모습과 손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순박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분은 어느 순간부터 알코올 중독 치료약도 혼자 타러 가시고 폭력성도 보이지 않으셨다. 특히 홀몸어르신 댁 한 곳에 도시락 배달 봉사를 요청드렸더니 쑥스러워 하시면서도 기꺼이 하겠다고 하셔서 정기봉사자가 되셨다.
이렇게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사람관계는 참 다르게 발전할 수 있는 것 같다. 마음과 정성을 다하면 희망의 씨앗에 싹이 튼다는 생각, 딱 맞는 말이다.
사회복지사로서 첫 걸음을 내디뎠던 복지관에서의 좋은 경험으로 인해 나는 ‘사람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과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라는 좌우명에 확신을 가지고 지금까지 쭉 생활해 오고 있다. 사람, 그 이면의 ‘마음’을 보고 느끼고 대하게 되면 이렇듯 관계는 달라진다.
# 에피소드 2 : 사람, ‘그 사람만의 상황’속에서 그럴 수 있겠다. ‘이해’
그로부터 6여 년 뒤 인사이동으로 인해 주거취약 세대의 주거문제를 지원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주거복지사업을 시작하던 초반 학교(교도소를 은어로 ‘학교’라 한다.)를 수도 없이 다녀오신 다리에 의족을 하신 장애인 한 분이 초기상담을 하고 서비스를 요청하셨다. 첫 상담은 서로 웃으며 진행되었고 그분께 맞는 서비스를 찾고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알아보는 것으로 안내해드리고 마무리가 되었다. 그분은 내게 고맙다며 집으로 돌아가셨고 나는 ‘혼자 살아가시는데 힘이 되도록 해야겠다.’는 다짐과 ‘우리 기관과 같은 곳이 있어 다행’이라는 자부심도 생기는 터였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그분은 전화로 다짜고짜 담당자인 나에게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듣는 욕설과 폭력적인 말을 쏟아내셨다. 그 순간 나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사회복지사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폭력적인 표현도 감수해야 하는가? 내가 뭘 잘 못 안내했나?’ 하는 회의감이 들면서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어제와는 너무나 상반된 말과 표현은 내 정신과 육체에 칼날처럼 파고들어 생채기를 내듯 아프게 했다. 그야말로 말이 주는 폭력성을 제대로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 일로 인해 ‘사회복지사로서 앞으로 이런 상황을 계속 이겨낼 수 있을까?’라며 흔들리던 나는 직장 선배의 위로와 격려로 다행히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은 이미 여러 공공·민간기관에서 잦은 민원과 폭력적인 행동으로 유명하신 분이었다. 그분은 내게 그런 행동을 한 후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다시 복지관을 찾으셨다. 그러나 본인도 머쓱하셨는지, 어릴 적 부모로부터 버림받다시피 거리에서 자랐고 그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추운 겨울 차가운 물속에 들어갔다 동상으로 다리를 잃었다며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보이셨다.
위협적인 말투와 행동으로 많은 이를 힘들게 하는 분이었지 만 ‘부모의 보호와 사랑을 한창 받아야 할 시기에 홀로 세상에 버려졌다는 상실감과 삶에 대한 고충으로 선택의 여지없이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태어날 때의 환경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분은 태어나 보니 그런 환경에 있었던 거다. 측은지심과 어린아이가 보호 받지 못하고 자라난 상황과 사회의 보호시스템 부재가 아쉽고 아쉽게 와 닿았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 마음으로 그분을 ‘있는 그대로’ 대했다. 물론 때로는 사회복지서비스와 정성과 노력들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듯 끝이 없어 힘이 빠지기도 했지만 누구나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그리고 그분이 어릴 적 받지 못한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 드리고 싶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그분은 마음을 열었고 ‘위협을 가하는 방법’을 쓰기보다 ‘솔직하게 요청’하고 안 되면 ‘한번 더 요청’하고 그래도 안 되면 ‘한 발짝 물러나는 식’의 타협을 시도하기도 했다.
세상 많은 이들에게 위협적인 그분이 유독 복지관에 오셔서는 부드러운 표정과 말투, 그리고 장난기 있는 모습을 보여주신건 오랜 시간동안 쌓은 정도 있었겠지만 상황 속의 문제만을 보기보다 사람을 우선으로 보는 복지관 사회복지사들의 마음을 읽으셔서가 아닐까?
‘그 사람만의 상황 속에서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사람 간의 ‘이해’를 더하게 하고 관계를 다지게 하는 바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한 시간들. 한번 뵙고도 싶다. 사람의 상황에 대한 이해를 배우게 한 그분을.
# 에피소드 3 : 사람, ‘믿음’이 사람을 살리고 관계를 살리다.
주거복지 업무를 하며 주거박탈 위기의 놓인 많은 주민들을 만났다. 쪽방의 열악한 환경에서 어렵게 사시는 분, 학교(교도소)에 갔다 오셔서 생활 기반이 없어진 분, 주거비를 내지 못해 힘들어 하는 분, 임대아파트에 선정이 되셨으나 보증금 마련이 어려워 입주를 포기해야 하는 분 등… 어려운 상황들은 끝이 없었다. 그러던 중 무이자 대출지원사업을 하게 되어 임대료를 지원하고 일정 기간 후 분할상환하는 사업을 하는데 임대보증금이 부족해 임대주택 입주를 앞두고 곤란을 겪던 한 가정에 70만 원 정도의 무이자 대출을 지원하게 되었다.
지원을 하고나면 한 달에 한 번씩 분할된 금액으로 상환을 해야 하는데 몇 달 뒤 상환을 앞둔 시점에 김장김치를 지원하고 상환 안내도 드리려는데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동안 몇 달째 연락이 끊어지는 여러 케이스에서 경험했듯 대출금을 상환받지 못할 것이라는 주위의 걱정과 예측에도 ‘무슨 일이 있으시겠지. 좀더 기다려 보자.’하며 기다렸다.
상환에 대한 의지가 높으셨던 세대였지만 기다림의 시간이 몇 달 더 흘러가면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신가보다. 상환이 어려울 수 있겠다.’ 하고 생각할 즈음 연락이 왔다. 70만 원의 상환금을 일시불로 송금하겠다고 하시면서 그동안 암투병 중이던 남편이 최근에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고 마음을 추스른 뒤에야 연락을 하게 되었다면서 그동안 연락을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씀을 재차 하셨다. 그 순간 70만 원을 상환하지 못해 마음이 불편하셨을 이용자 분에 대한 죄송함과 늦게나마 약속을 지키시고자 연락을 주신 이용자 분에 대한 감사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물론 믿음이 깨어지는 경우도 많지만 자칫 믿음이 느슨해질 수 있는 순간에 ‘역시 사람에 대한 믿음은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구나.’라는 소중한 가치를 다질 수 있는 체험이었다.
이렇게 일상에서 발생하는 많은 상황 속에서 좌충우돌하면서 상처와 배움을 주고받으며 지내는 사회복지사이고, 내 역할에 최선을 다 해야 하는 빡빡한 직장인이지만, 현장에서 배우는 이런 일들이 주는 매력과 사회복지사로서의 삶 속에서 얻는 사람을 통한 만남과 체험들이 삶의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일상 속에서 사람을 통해 배우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실천, 그것은 사람을 사랑하고자 노력하는 주님이 주신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 같다. 이렇게 주님이 주시는 ‘사람에 대한 사랑’, 즉 ‘희망 씨앗’은 내 삶을 감동으로 채워가는 듯하다.
사람의 마음을 살리는 ‘진심’, 사람의 고유성에 대한 ‘이해’, 사람의 관계를 이어주는 ‘믿음’, 이런 배움을 통해 중심을 잡고 나는 가톨릭사회복지회 카리타스인으로서 오늘도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상을 이어주는 사회복지사로서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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