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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사목과 후원회 이야기
덕분에!


글 김상현 바오로 신부 | 군종신부 전역

  

이등병을 달고 군생활을 시작할 때였습니다. 강원도 철원 GOP(전방 초소)는 긴장감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북쪽에서 들려오는 대남방송은 신기하기도 했고, 새로운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의 생활은 그야말로 눈치작전이었습니다. 그렇게 선임병과 간부들의 눈치를 보며 나름 적응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중대행정보급관이 제가 잘 생활하고 있는지 한참을 붙잡아놓고 면담했습니다. 물론 당연히 문제가 없다고 대답했지만 끊임없이 대답을 요구하기에 아무 생각 없이 “GOP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니 허리와 무릎에 약간의 통증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중대장에게 지휘관과 부대원들의 무관심으로 ‘김상현 이병’이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한 것입니다. 사실 그는 중대장과의 사이가 매우 좋지 못했습니다. 그는 마치 ‘배려’인 것처럼 말을 했지만 자기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이기적인 배려’를 한 것입니다.

그날 새벽 출동을 마치고 하산했을 때는 소초 분위기가 평소와 달랐으며 이미 소초장과 부대원이 화가 나있었습니다. 실탄과 수류탄을 반납하자마자 화가 나있던 소초장은 저를 자신의 옆에 세워두고 부대원 전체에게 한 시간 가량 얼차려를 주었습니다. 앞으로 굴러, 뒤로 굴러 등등 먼지와 땀으로 온 몸이 더럽혀졌습니다. 차라리 같이 얼차려를 받았다면 속이라도 편했을 텐데 그것을 지켜보게만 하는 것은 오히려 고문이고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황당함과 두려움, 그리고 분노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덕분에’ 결국 소초에서 왕따가 되었습니다. 신학교 4학년을 마치고 입대했기에 이미 소초에서 나이가 제일 많았지만 동생 나이의 선임병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가만히 있는 저의 뒤통수를 때리고 지나거나 군화발로 차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선임병들이 같이 근무하기를 기피하는 후임병 1순위였고, 근무를 할 때마다 갖은 잔소리가 가득했습니다. 소초 옆에서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곤 했고, 언뜻 나쁜 생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오래지 않아 왕따에서는 벗어났습니다. 부대원들은 그 행정보급관의 평소 모습이 좋지 못한 것을 잘 알고 있었고, 피하지 않고 적극적인 도움을 요청한 저의 억울한 처지를 곧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 기억이 악몽이 아니라 추억이 되었고, 군종장교로서 장병들을 위한 인성 교육에 좋은 교보재로 그 추억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행정보급관을 다시 본다면 한소리하고 싶지만 용서는 했습니다. 용서는 악몽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이 코로나19로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예전처럼 돌아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큰 위기를 넘어야 할지도 미지수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극복할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조금 더 나 자신에서 벗어나 이웃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이기적인 배려가 아니라 진정 주님께서 보여주셨던 사랑의 배려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것은 법과 규칙을 뛰어넘는 상식이 되어야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사태로 위험에 처한 대구·경북을 위해 달려간 의료진과 119 구급대원 및 자원봉사자, 그리고 헌신으로 무장하고 현명하게 대처한 질병관리본부 ‘덕분에’ 이 어려운 과정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또한 자발적인 격리를 택한 모든 국민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덕분에 부활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부활의 삶은 희망이며 사랑입니다. 지금 어려움을 이겨내며 당당히 살 수 있는 근거입니다. 누군가 “당신 덕분에 행복하다.”고 한다면 우리 역시 이런 예수님을 이미 닮아 있다는 증거겠죠.

  

여러분들 ‘덕분에’ 저는 무사히 전역했습니다. 13년이라는 군 생활은 즐거움과 원하지 않는 갈등 속에서 하루하루 채워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났던 모든 분들의 기도와 사랑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라는 고마움이 있습니다.

한국인 신부로는 처음으로 성경에 등장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레바논이라는 나라에 파병되어 예수님의 발자취를 느껴보았고, 지금은 교통이 좋아진 강원도 인제 산골짜기에서의 운치있는 삶도 좋았습니다. 행정에는 문외한인 제게 인생의 쓴맛을 보게 한 행정부대에서의 삶도 새로운 체험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났던 모든 군인들과의 만남은 참으로 끊기 어려운 인연이 되었습니다.

 

 

 

이제 고향인 대구로 돌아갑니다. 항상 관심을 쏟아주시고 격려해 주신 대주교님과 보좌 주교님, 인자하신 모습으로 응원과 지도를 아낌없이 베푸신 군종교구 주교님, 어려운 사정을 듣고 기꺼이 도와주신 신부님들, 인연도 없지만 군 장병들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군종후원회 여러분 덕분입니다. 정말 여러분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