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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가르쳐 주는 교리
준짱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전재현(베네딕도)|신부, 대구대교구청 사목국 청소년담당

 

생각하기

 

지난 여름은 제게 특별한 체험을 가져다 준 여름이었습니다. 캐나다에서 있었던 제 17차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에 참여했고, 일본에서 이루어진 제 8차 한일 청년 교류모임에도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대회는 성직자인 제게도 신앙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특별히 두 대회의 주제는 저의 개인적인 체험과 어우러져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먼저 「함께」(Solidarity)라는 주제로 열린 제 8차 한·일 청년 교류모임에서의 특별한 만남을 하나 이야기 해 드릴까 합니다. 준짱이라는 애칭을 가진 나오꼬는 무척이나 쾌활한 아가씨였습니다. 아토피성 피부염으로 연신 몸의 이곳 저곳을 긁고 다니는 모습은 마치 예쁜 일본 원숭이를 보는 듯 했습니다.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다가와 장난치는 원숭이와도 같이 준짱은 우리 한국 청년들과 어떤 식으로든 대화하고 무엇이든지 나누고 싶어했습니다. 우리가 보는 앞에서도 목덜미며 배, 팔뚝, 이곳 저곳을 긁으며 활짝 웃고 있는 준짱의 모습이 저로 하여금 장난 끼 가득한 일본 원숭이를 연상케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도 활달하고 재미있게만 보이던 준짱은 우리에게 폭탄선언을 하고 먼저 떠나갔습니다. 마지막 날 밤, 밤새 술잔을 부딪히며 우정을 나누었던 이들이 하나 둘씩 자기 방으로 들어가고 열 명 남짓한 한·일 청년들이 뒷정리를 끝내자 준짱은 직장에서 받은 휴가기간이 끝나서 가야한다고 했습니다. 가방을 들쳐 메고 문밖으로 나온 준짱은 한국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저는 원래 쾌활한 성격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여러분과 함께 있는 동안 저는 너무나 즐거웠고, 그래서 쾌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별히 먼저 세상을 떠난 절친한 친구를 생각하...” 통역을 해 주시던 한국인 수사님이 말을 잇지 못하고 그만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습니다. 여전히 미소지으며 이야기하고 있는 준짱과 눈물 때문에 말을 잇지 못하는 수사님의 모습이 너무나 대조적이라 당황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힌 수사님이 이렇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준짱에게는 절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얼마전 자살을 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친구를 잃은 것은 그 친구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한 자신의 책임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모임을 통해서 우리는 말도 문화도 서로 다르지만, 함께 하고자 서로 노력하였고, 짧은 영어로나마 말을 걸어주는 한국 친구들이 고마웠으며, 그래서 자신은 쾌활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떠나는 준짱의 뒷모습을 보며 수사님이 제게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일본에는 자살하는 청년들이 많아요. 그저 사는 것이 답답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 자살하는 것이지요.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자살하는 일본 청년들을 보면 제 마음까지 갑갑해집니다.”

 

미키 마우스 파라파라(Dance의 일종)를 가르쳐 주겠다며 제게 다가와 그렇게도 밝게 웃던 준짱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한국의 아이들도 많은 것을 배우지만, 정작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인지 깨닫지 못한다면 신념이 뚜렷하지 않은 일본 청년들의 현실과 과연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생각하기 

대체로 초기 청소년기에는 자존감도 낮고, 흔히 혼돈과 공허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종류의 생각과 사건을 겪는 것이 보통의 일입니다.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

‘요즘 들어 친구들이나 가족이 간섭하는 것 때문에 사소한 다툼을 많이 한다.’

‘내가 보잘것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지만 이런 상태가 지속되어 성인기에까지 이르면 직업도 제대로 선택하지 못하고, 자기가 해야 할 일도 모르는 채 허송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면 그만큼 현실에 충실하기도 힘이 듭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자녀가 그렇지 못한 자녀보다 공부도 더 충실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해 아는 사람만이 현재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얼마나 삶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과연 누구인지 묵상해 볼 수 있는 성서구절들을 찾아보았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마태 5,13a)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4a)

“너희는 내 교훈을 받아 이미 잘 가꾸어진 가지들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요한 15,3-5a)

“그러나 우리 하느님은 인자하시고 진실하시고 참을성이 많으셔서 만물을 자비로 다스리신다. 우리는 죄를 지을 때에도 하느님의 힘을 인정하기 때문에, 여전히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임을 알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는다.”(지혜 15,2)

“그래도 야훼여, 당신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진흙, 당신은 우리를 빚으신 이, 우리는 모두 당신의 작품입니다.”(이사 64,7)

“우리는 하느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2고린 2,15a)

“우리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입니다.”(2고린 6,16a)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곧 하느님께서 미리 마련하신 대로 선한 생활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창조하신 작품입니다.”(에페 2,10)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우리는 거기에서 오실 구세주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하고 있습니다.”(필립 3,20)

 

신앙생활의 핵심은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내가 믿는 “하느님은 어떤 분인가?”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위와 같은 성서의 다양한 표상들은 나 자신과 하느님에 대해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특별히 지난 세계 청년대회에서 교황님께서 미래의 교회를 이끌어 갈 젊은이들에게 던져주신 주제가 “너희는 이 땅의 소금 … 이 세상의 빛이다.”(마태 5,13-14)였습니다. 소금이 그 짠맛을 통해 음식의 맛을 내듯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살맛 나는 세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아울러 우리 마음에 새겨진 그리스도의 빛을 잘 가꾸어 이웃에게 하나씩 나누어줌으로써 더욱 밝은 세상을 이루어 가는 것이 바로 우리의 소명임을 가르쳐주는 주제였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의 빛은 아직 미약하고 불안해서 이 세상을 환히 밝히기에는 역부족이라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빛을 잘 가꾸어 이웃에게 하나씩만 나누어 줄 수 있다면,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빛을 밝힐 수 있다면, 이 세상은 그만큼 환히 밝아질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 자녀들이 깨달을 수 있을 때 진정한 삶을 살아갈 수 있고, 그들의 삶에 생명력이 흘러 넘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천하기

삶은 사랑의 이야기이며,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만큼 살아간다고 합니다. 70년, 80년이라는 ‘세월’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삶’이 참 삶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께서는 삶을 완성하시고 사랑을 완성하신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33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다 가셨지만,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자녀들과 참 삶이 어떤 것인지 대화해 보십시오. 우리는 언제 참으로 행복한지 가족이 함께 모여 대화를 나누어 보는 것은 자녀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될 수 있습니다. ‘생각하기’에서 제시된 성서의 표상에 대해 자녀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부모의 생각을 전해주는 것도 좋겠지요. 자녀들이 참 그리스도인으로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부모가 먼저 이런 표상들에 대해 공부하고 묵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Mt 5,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