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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이야기 - 화선야학 교사들
어둠을 밝히는 사람들


이은영 (데레사)·본지기자

고 학력 시대라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네 부모님들 가운데는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분들이 많이 있다. 가난했던 어린시절, 형제는 왜 그리 많은지. 이런 저런 이유로 배움의 기회를 놓친 후, 다른 이들이 알까 마음 졸이며 살아온 지난 세월. 답답하고 자신감 없던 그 세월은 어둠과도 같았을 게다. 이런 분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들이 있어 찾아 가 보았다. 그들은 바로 범어동성당(주임신부 : 원유술 야고보) 화선야학에서 공휴일도 없이 밤 11시에 이르도록 늦깎이 만학도들을 가르치고 있는 젊은 교사들이다. 어학연수, 아르바이트, 각종 자격증 학원에 다니느라 바쁜 요즘 대학생들 이야기만 듣고 살아 온 나로서는 이들의 모습이 생경스럽기까지 하다.

어둠이 내려앉은 범어동성당 한켠에 하얀 형광등 불빛이 새어나오는 곳이 바로 화선야학이다. 창문 너머로 설핏 보이는 교실은, 나이 지긋한 학생들이 앉아 있다는 것 외에는 여느 중·고등학교의 야간 자율학습 시간과 다를 바 없었다.

 

기말고사 기간이라 시험지 뭉치를 들고 복도를 분주히 다니는 젊은 교사들 사이로 나이가 좀 더 들어보이는(?) 이곳의 맏형 김영환(요셉)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새얼야학 교사를 시작으로 야학과 인연을 맺어온 그는 대학생이었던 옛날부터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까지도 야학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 화선야학으로 옮긴 후로는 평교사로 봉사해오다 10년 전부터는 교감을 맡고 있다. 학생들을 사랑하기에, 또 젊은 교사들과 함께 호흡하기 위하여 일주일에 두 번은 꼭 야학을 찾아 중학교 과정 수학을 가르친단다.

 

한의사인 그는 화선야학의 모든이에게 물질적, 정신적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일에 그저 허허 웃어 넘길 것 같은 서글서글한 외모이지만, 젊은 교사들이 자칫 나태해지기라도 하면 바로 불호령이 떨어진다. “가끔 선생님들이 지각하거나 수업준비를 제대로 해오지 않을 때가 있어요. 또 당직을 빠지거나 교무실 정리를 안 해 놓으면 화가 나요. 봉사라고는 하지만 교사로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서로 지켜야지요.”라고 말하는 김영환 씨. 한때 불로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장을 맡고 있을 때, 그는 토요일 오후에 있는 초등부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한의원 문을 앞당겨 닫기도 했단다. 매사에 열정적인 마음과 전투적인(?) 자세로 임한다는 주위의 소문이 맞는 듯했다.

 

야학교사를 하며 가장 보람된 때를 묻자, “우리가 가르친 학생들이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대학에 입학할 때입니다. 반대로 우수한 학생이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대학의 꿈을 접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정말 감동스러울 때는 졸업식이에요. 그때는 학생들도 교사들도 눈물바다를 이루죠.”라고 대답했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자식뻘 되는 선생님들과의 만남으로 새 삶을 찾은 학생들은 졸업식이 되면 그 감회가 정말 남다르다고 한다. 교사들 또한 졸업생들을 보면 가슴 가득 뿌듯함을 느낀다.

 

그러나 교사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김영환 교감과 함께 시골성당으로 의료봉사를 가기도 한다. 교사들은 이 의료봉사 안에서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과 만나며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값진 경험을 얻는다고 한다. 김영환 씨는 이 모든 것이 신앙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주는 즐거움과 기쁨이 무엇인지 이제서야 알 것 같다며 환하게 웃는다.

 

한때 경제적인 이유로 화선야학이 사라질 뻔한 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학생과 교사들이 보여준 화선야학에 대한 열정과 사랑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2년 동안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김홍덕 씨는 하양여고 국어교사이며 한 가정의 가장이다. 어려운 일들이 겹쳐 야학을 그만 두어야 할 상황도 있었지만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이런 점들이 동료 후배 교사들에겐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야학교사 가운데 막내인 장미(영남대 영어교육학과 2학년에 재학)씨는 학교에 붙은 전단지를 보고 스스로 화선야학의 문을 두드렸다. 몇 달 전 스승의 날에는 졸업생이 찾아와서 정말 기쁘고 보람되었다며 살짝 웃는 앳된 모습이 참 예쁘다.

 

화선야학 학생들 대부분이 30-40대 늦깎이 만학도이다. 근로 청소년들이 사라지고 있는 야학에서 교사들은 부모님뻘 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처음엔 낯설고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배움을 갈망하는 학생들의 눈빛과 동료들의 격려로 교단에 설 용기를 얻었고 오래토록 봉사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더구나 늦깎이 학생들을 보며 적절한 시기에 무사히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부모님께도 고마운 마음이 든다고 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곳 교사들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학창시절에 대한 보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학창시절은 소중한 추억이지만 화선야학의 학생들에겐 이런 학창시절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느 학교와 마찬가지로 소풍, 학예회 등 다양한 행사 개최는 물론이고, 미술, 한문, 생활법률 등의 특강을 통해 특별활동도 이루어진단다. 다음 학기부터는 컴퓨터 강의도 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배우지 못한 사람들의 상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그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고 있는 화선야학 교사들. 다른 이들을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봉사하는 그들을 보며, 월드컵에서 보고 느꼈던 역동적이고 의식있던 젊은이들의 모습이 새삼 생각이 났다. 한편으로는 예의없고 이기적인 젊은이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요즘이기에 이들의 봉사가 소중하고 더 빛나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