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열기
갓 태어난 아기의 행동 하나, 옹알이 하나는 부모에게 큰 기쁨이 됩니다. 누워서 바둥거리기만 하던 아기가 어느새 뒤집기에 성공하고, 슬금슬금 기어다니기 시작하더니, 금세 앉아서 놀고, 붙잡고 서는가 싶더니 금세 걸어다니는 것을 보면서 부모는 큰 기쁨을 얻습니다.
그러나 방긋방긋 웃으며 덩실덩실 엉덩이춤까지 출 정도로 자란 아기가 어느날 아프기 시작하면 그것은 곧바로 부모의 아픔이 되고 맙니다. 밤새 기침을 하다 토하고 우는 아기를 보면서 부모는 한없는 슬픔을 체험합니다. 해맑게 웃던 아이가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이렇게 아이의 고통이 곧 부모의 고통이고 보니 부모는 ‘건강하게만 자라다오!’하고 기도 드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성장하고 학교생활을 하기 시작하면, 아이에 대한 부모의 소망이 바뀌어 갑니다. 다른 아이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피아노 학원도 보내고 미술 학원도 보내고, 그밖에도 여러 학원에서 지내는 시간들로 아이들의 시간표가 채워집니다. 우리 나라의 교육제도가 바뀔 때까지는 이런 어려움을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대부분의 생각인 것 같습니다. 심지어 학원 시간 때문에 어린이 미사나 학생 미사에 나오지 못한다는 아이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는 소망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부모의 욕심이 아이들의 건강을 해치기 일쑤입니다. 육체적인 건강, 현세적인 건강을 돌보는 것만으로는 자녀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우리는 손톱 밑에 작은 가시가 하나 박혀도 생활 중에 적지 않은 불편함을 체험합니다. 때로는 작은 상처가 덧나서 큰 수술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 삶을 건강과 행복으로 채우기 위해서는 작지만 없어서는 안될 부분들도 채워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참으로 건강한 사람이란 ‘충분히 기능하는 인간’(fully functioning person)이라는 어느 심리학자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손가락은 손가락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심장은 심장대로 우리 육체의 기능이 제각각 충분히 기능할 때 그 사람은 참으로 건강하다는 주장입니다. 지극히 이론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참으로 적절한 표현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참모습은 영혼과 육신이 조화를 이루는 삶입니다.(마태 10, 28참조) 그러므로 영혼의 건강관리를 등한시하고서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녀들이 육체적으로 건강하도록 어머니가 돌봐야 할 의무가 있듯이 영혼의 건강관리에도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하겠습니다. ‘충분히 기능하는 인간’으로서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육신의 건강과 아울러 영혼의 건강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수많은 스트레스로 힘겹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재충전을 위한 휴식이 반드시 필요하듯이, 그리스도교 가정의 자녀들이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맞이 하는 주일은 참으로 중요한 시간입니다. 육체의 피곤은 일을 중단하고 쉬면 풀리지만, 엿새 동안에 지은 죄와 마음의 상처는 하느님과의 만남 없이는 그 무엇으로도 풀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인의 기본생활은 어린 시절부터 습관처럼 생활화 되어야겠습니다.
생각하기
요즈음처럼 무더운 여름철에 우리는 건강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30도가 넘는 무더위에서는 사람이 정상적인 활동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더울 때는 에너지 소비가 많아서 쉽게 짜증이 나기도 하고, 의욕과 식욕이 떨어지면서 신경이 곤두서기도 합니다. 무더위를 이기려면 기운이 있어야 합니다. 또 기운을 얻으려면 영양분이 충분히 공급되어야 하기 때문에 여름철이면 특별한 영양식들을 찾기도 합니다.
특별히 우리 나라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한 여름철 영양식을 찾습니다. 삼계탕에서부터 보신탕, 뱀탕, 흑염소탕, 토룡탕, 곰탕 등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심지어 ‘보신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나라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사람들이 뉴스 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또다시 식생활을 통한 건강한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충분히 기능하는 인간’으로서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영혼과 육신의 조화가 필요하듯이, 우리의 식생활에서도 영혼과 육신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인삼을 넣고 끓인 삼계탕을 먹으면 인삼처럼 기운이 세진다고 생각합니다. 또 보신탕을 먹으면 개처럼 잘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다고 믿고 먹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내 몸이 그 영양식을 통해서 ‘인삼’이 되고, ‘힘센’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영양식을 통해 그 기운을 우리 몸에 받아들일 수 있다면,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느님을 먹으면 우리도 하느님의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육신의 기운을 북돋우는 영양식뿐 아니라, 영혼의 양식인 하느님을 먹음으로써 영·육간의 조화로운 식생활을 이루어 가자는 말입니다. 인간의 존재는 영혼과 육신이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서 안에서 인간의 존재적 구성에 대한 가르침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우선 창세기를 통해서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을 지니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 또 집짐승과 모든 들짐승과 땅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 내셨다.”(창세 1, 26-27a)
이밖에도 성서는 사람이 육신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증언합니다.
“그리고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과 육신을 아울러 지옥에 던져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태 10, 28)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온전히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빕니다. 또 여러분의 심령과 영혼과 육체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완전하고 흠없게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1데살 5, 23)
야훼 하느님께서는 굶주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먹여 주셨고, 예수님께서는 배고픈 군중들에게 빵의 기적을 베푸시고, 장정만도 수천 명이나 되는 군중들을 모두 배불리 먹이심으로써 육신의 허기를 채워 주셨습니다. 또한 2000년 전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치유의 기적, 빵의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께서는 오늘날까지도 당신의 몸을 우리의 ‘양식’으로, 영원한 ‘영양식’으로 내어놓고 계십니다. 우리는 매일 미사 중에 성체로 먹히시는 하느님을 받아 모십니다. 우리가 영양식을 통해서 새로운 기운을 얻을 수 있듯이, 하느님을 먹는 우리는 ‘하느님의 기운’을 얻어 ‘하느님처럼’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영양의 힘으로, 하느님의 기운으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만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을 간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요한 6,53-55)
그런데 이렇게 생명과 직결되는 양식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까? 또 이렇게 소중한 생명의 양식을 자녀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도록 버려 두는 것은 누구의 책임입니까?
실천하기
“엄마, 배 아파.” 하며 달려오는 아이에게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엄마손은 약손”이라는 주문(?)을 외며 배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엄마의 따뜻한 손길이 닿는 동안 아픔은 슬쩍 사라지고 아이는 편안해지는 신기한 현상을 체험합니다. 이럴 때 소아과의사는 화장실에 보내라고 권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치료의 이면에는 아픔을 함께 함으로써 서로 일치하고 사랑을 나누는 힘이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빵의 형태로 쪼개어져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지는 예수님의 몸! 이것이 바로 하느님을 먹고 하느님의 기운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닮아야 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미사 때마다 영성체 때 우리에게 먹히기 위해 다가오시는 예수님처럼 우리 또한 이웃을 위한 양식으로, 먹히는 인생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영·육간에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참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위해 주일을 거룩히 지내는 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느님 안에서 휴식함으로써 삶의 생기를 되찾을 수 있도록 부모는 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주일마다 아이가 영성체를 빠뜨리지는 않는지 체크해 보십시오. 그리고 한 달에 한번 가족들이 다함께 아이들의 미사에 참여하는 것도 좋겠지요.
“사람이 겸손하여 야훼를 경외하면 재산과 영예와 건강을 누린다.”(잠언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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