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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 이종흥 그리산도 몬시뇰
운명적인 만남


김선자(수산나) 본지기자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따가운 햇볕과 무더위가 시작된 날, 여든을 넘긴 연세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교회관련 문서들을 정리, 번역하며 지내시는 이종흥(그리산도, 81세) 몬시뇰을 대구 성서의 한 아파트촌에서 만났다. 20여분 일찍 찾아간 기자를 향해 넉넉한 웃음으로 맞아 주시던 몬시뇰은 1921년 함경북도 경흥군에서 태어나셨다. 부모님은 신앙심이 돈독하였고, 그런 환경속에서 일찍부터 신앙생활을 익혔다. “그때만 해도 사제는 생각도 못했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양사람을 보았는데, 그 분이 원라리보 주교님이었어. 그 분이 ‘너는 신학교 가면 좋겠다.’하셨지. 그 한마디에 내 가슴이 왜 이리 쿵쾅거리던지 주교님 앞이라 떨려서 제대로 대답도 못하고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게 잠재의식 속에 항상 남아 있던거야.”라며 몬시뇰은 말씀하신다.

어수선한 시대정국에 사제가 되신 몬시뇰은 이천, 평강본당 보좌(서울 골롬반지부 대기)를 시작으로 특수사목활동 및 본당사목활동 그리고 유학 생활을 하셨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았던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몬시뇰은 그 중에서도 9년여 동안의 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 사무총장으로 계셨던 일이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었다고 하신다.

 

순수함이 사라진 오늘날 신앙생활의 가장 큰 문제점을 시대의 풍요로움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고 여기고 계신 몬시뇰은 “과거에 비해 현재는 순수함을 많이 잃었지... 주일을 지키는 신자들이 사라져 가고, 물론 고백성사는 두말 할 것 없이... 결국 신자들의 상당수는 냉담자와 또 주일을 지켜도 무늬만 신자인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네.”라며 교회의 안타까운 현실에 대해 말씀하신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행동구조, 그로 인해 발생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 교회 안에서 이루어졌던 신앙의 교육이 제 구실을 못한다는 뜻이다. “금,은, 보화가 있는 곳에 사람들 마음이 있고,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있지.”라며 몬시뇰은 이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꼬집는다.

 

“물고기는 거꾸로 역행하지는 않아. 다만 자기 자리를 지킬 뿐이지. 천주교 신자로 사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거야.”

 

몬시뇰의 하루일과는 오전, 오후 한두 차례에 걸쳐 아파트 주변을 돌며 풀을 뽑거나 쓰레기를 줍는다. 그리고 독서와 기도, 교회 관련 역사 자료를 문서로 정리, 번역하는 일 등으로 이루어진다. “밖에서 쓰레기를 줍거나 풀을 뽑고 있으면 부모와 함께 지나가던 아이가 쓰레기를 버리는 데도 야단칠 생각도 않고 가만히 있는거야. 또 아이가 길을 두고 잔디밭을 가로질러가도 아무 말없이 같이 따라가는 부모가 많아. 부모가 먼저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그런 기본적인 것조차 버리려 해.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뭘 보고 배우겠나?”라며 부모들의 올바른 정신을 강조하시며 자기 중심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사회에 대한 우려를 잊지 않으셨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근원적인 문제를 생각하라고 몬시뇰은 말한다.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고 죽은 후의 삶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미 답은 주어져 있네. 2000년 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14,6-7)’고 하셨지.”

 

하느님과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인해 살아온 삶이라 더 풍족하고 더 행복하시다는 몬시뇰. 하느님과 함께 걸어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사랑에 몬시뇰의 얼굴에는 환한 빛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