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불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이 몇 가지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수업 중에 갑자기 “진혁아, 저기 너희 집 아니야?” 라고 하시길래 선생님의 손가락을 따라 창밖을 보니 길 건너 위치한 2층 건물, 딱 저희 집 목욕탕이 있는 위치에서 검은 연기가 높이 솟구치고 있었습니다. “어…아닌 것 같은데요.”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저는 그렇게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설마 우리집일까 싶기도 했고, 사실 그것보다는 순간 부끄러운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정말로 집에 불이 난 것이라면 반 친구들이 모두 우리집이 불타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상황인데, 당시의 어렸던 저로서는 그것이 더 싫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아니라고 대답은 했지만 수업 시간 내내 울리는 소방차 사이렌 소리는 저를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마도 저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는지 쉬는 시간이 아니라 아예 하교 시간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갔는데, 아닐 거라고 굳게 믿었던 일이 실제였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지요. 당시 큰 나무로 불을 지펴 대형 보일러를 돌리던 시절, 2층 건물 높이의 목욕탕 보일러실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제가 갔을 때는 이미 전소된 상황이었습니다. 인명피해는 없었던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습니다. 부모님은 불이 난 건물을 수리하는 대신 그날로 목욕탕을 폐업했습니다.
그로부터 3년 뒤 제가 중학생이었던 어느 날 밤, 침대 머리맡에 있던 전기등이 합선되어 제 방에 불이 난 적이 있습니다. 순간 잠에서 깬 저는 벌떡 일어나서 “불이야!” 라고 소리쳤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큰불은 아니었지만 자다 깨서 그랬는지 몰라도 당황한 나머지 저는 다른 어떤 생각도, 행동도 할 수가 없었 습니다. 자식이 내지르는 소리에 급히 건넛방에서 달려오신 어머니께서 전등에 연결된 전기 코드를 뽑으면서 상황은 손쉽게 종료되었지만 저는 마치 얼어붙은 사람마냥 그 앞에 꼼짝없이 서 있기만 했습니다.
지난 2월 말 대선 운동이 한참일 때 강원도에 산불이 크게 났다는 뉴스를 듣고 저는 어릴 적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화재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들이 떠오르는걸 보면, 불에 대한 트라우마가 여전히 저에게 남아 있나 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불 자체에 대한 트라우마라기보다는 그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무기력했던 저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그런지 전국을 덮친 대형 산불 소식에도 고작 ‘어서 빨리 불이 꺼져야 할 텐데….(누군가는 그 불을 꺼 주겠지.)’ 라는 생각이 전부였습니다. 이번 산불 소식에도 그랬습니다. 매년 겨울철 일어나는 연례행사처럼 생각했습니다. 어느 누군가는 그 불을 꺼야 하고 때로는 목숨까지 걸고서 그 일을 하는데도 너무나 무심하게 말이지요. 그런데 다음 날, 또 그다음 날에도 산불은 여전히 꺼지지 않았고 계속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피해 규모는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창에도 산불이 났다는 소식에 교구 사회복지국에서 일하는 어느 직원 분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이럴 때 우리 카리타스자원봉사센터가 함께 움직이면 참 좋겠어요. 지금 현장에선 얼마나 많은 도움이 필요할까요?” 그 순간 저는 ‘어? 그러네? 우리가 있네?’ 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연재해 앞에서 무기력하게 늘 안타까워만 했던 소시민적(?) 관성이 교구 사회복지국에서 일하는 지금도 여전히 제 안에서 작동했던 것이지요. 그 누구보다도 먼저, 항상, 즉각적으로 자신을 내어 주고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많은 사람이 우리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직도 ‘우리가 가진 힘’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카리타스자원봉사센터의 봉사자들과 담당 직원들은 곧바로 산불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긴급재난상황이라 여러 가지 부족한 것이 많았는데 우리는 소방관과 자원봉사자들의 하루 세끼 식사 지원을 위한 밥차 봉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꼬박 4일간 새벽 5시에 일어나 음식 재료를 준비하고 하루 300명분의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아침에 산에 올라가면 저녁까지 못 내려오니 점심은 주먹밥을 준비했는데 일손이 부족해 주먹밥을 싸는 일은 다른 관청의 봉사 단원들이 도와주셨습니다. 코앞의 산자락에서는 폭격을 맞은 듯 여기저기 연기가 솟아올랐고, 머 리 위로는 소방 헬기들이 쉴 새 없이 날아다녔습니다. 미군들까지 와서 진화작업을 도와주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첫날에는 부군수님과 시장님도 다녀가셨습니다. 특히 면장님과 소방관 분들께서 “세상에 이런 분들이 있냐.”며 얼마나 고마워했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면장님은 “앞으로 종교를 가진다면 꼭 천주교로 하겠습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차가운 날씨 속 에서 갑자기 진행된 강행군이라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어느 봉사자께서 코피까지 흘리시는 것을 보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관할 구역에 위치한 교구 카리타스 시설인 달성군종합사회복지관 직원들과 인근에 위치한 상동성당 사회복지위원 분들께 도움을 요청했고 모두들 한 걸음에 달려와 주셨습니다.

이런 진행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제가 한가지 깨달은 것은 우리 카리타스 네트워크는 제가 알고 있는 그 이상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무실에서만 보던 카리타스 구성 조직을 제 눈으로 직 접 본 것이지요. 카리타스는 단지 행정적인 조직도 안에 갇혀 있는 글자들이 아니라 사랑으로 함께하는 바로 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모인 사람이 없었습니다. 자연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지역 주민을 위해서, 소방관을 위해서… 제각각의 사람들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으로 봉사를 한 셈입니다. 카리타스자원봉사자와 직원, 본당 신자, 지역 주민, 군인들과 소방 공무원,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도록 후원해 주신 밀알회 후원자들까지. 모두 사랑의 이름으로 서로에게 다리를 놓으며 하나가 된 4일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불에 대한 좋지 않았던 과거의 기억을 떨쳐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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